평소 흔히 쓰는 인간들의 말.그리고 욕. 이거말고 나에겐 제3의 언어가
필요했다.쓸데없이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고 할말만 간략하게 딱 끊어칠
수 있는 언어. 그게 바로 야구에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tv를 켰다.
프로야구가 나오고 있었다. 포수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투수는 곧바로
알아듣고 글러브안에서 그립 (원하는 구종을 던지기위해 볼을 잡는 방
식)을 바꾸었다. 상황은 우투좌타( 오른손 투수와 왼손타자), 케스터가
그걸보고 설명에 들어갔다.
"네 포수한테서 직구싸인이 나오자 투수가 그립을 변화구에서 바로 직
구로 바꾸죠?"
옆에 앉은 장내 아나운서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습니다.이 병기선수 정도되면 베테랑중의 베테랑이죠.이런 경험많
은 베테랑선수한테 변화구는 자칫 큰거 한방을 허락할 수 있겠죠."
"만약에말이죠 왼손타자한테 변화구로 계속 승부하고 싶다면 어떤 구질
을 택해야하는 겁니까? 지금 이상황에서라면. "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설자가 입에 침을 튀기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제가 보기엔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젊은 투수가 큰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직구가 낫겠는데요. 투수가 굳이 변화구를 고집한다면 타자가
잡아당기는 타격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봤을때 안쪽을
노려볼만 하다고 봅니다.타자 몸쪽으로 붙이란 얘기죠."
"그건 또 왜 그런가요?"
"지금같이 주자가 1루에 있을때 바깥쪽 변화구는 매우 위험합니다.왜냐
면 지금 병살을 노리고 1,2루 수비수들이 베이스에 바짝 붙어 있단 말
이죠.그런데 투수가 바깥쪽 변화구를 던져 타자가 잡아당겨서 쳐버리게
되면 공이 공간이 넓은 1루와 2루 사이를 통과하게 됩니다. 안타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죠."
(그렇지.투수가 만약 변화구를 던진다면 안쪽 낮은 변화구로 타자를 유
인할 것이다. 타자는 공이 눈에 확들어오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본능
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게 될것이다. 이걸 잡아당겨 쳐봐야 안쪽 공을
무리하게 잡아당기는 꼴이되어 파울이 될것이고 밀어쳐봐야 겨우 내야
땅볼. 더군다나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러서 100% 맞춘다는 보장도 없다.
행여나 투수가 던진 몸쪽 변화구가 제대로 맞아 2루와 3루 사이로 간다
하더라도 유격수가 땅볼을 받아 2루에서 아웃, 다시 1루로 공을 던져
병살타. 투수에게는절대적으로 안쪽 변화구가 유리한 순간이잖아. 어라
이거 재미있네.)
아나운서가 예리한 눈으로 투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따라서 안쪽의 낮은 변화구이거나 그게 아니면 낙차큰 커브가 좋겠죠.
문제는 제구력이에요. 조금이라도 실투가 나오게되면 크게 한방 얻어
맞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9 회초 3:2 상황에서 승부가 갈리게 됩니다.
그래서 아마 벤치에서도 투수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직구를 주문한 걸
겁니다."
(야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네. 아주 오묘한 세상이야. 내가 왜 진작 이
재미있는걸 모르고 살았을까.)
"아 그렇군요.네 드디어 투수 던졌습니다. 헛스윙!"
"직구였죠?"
"네 맞습니다 직구였습니다."
해설자는 직구에 여러가지 살을 보탰다.
"타자는 말이죠 공이 빠른 투수를 아마 마음속에 염두에 두고 타석에
들어섰을 겁니다.빠른직구가 주 무기인 투수가 자신한테 변화구를 던
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타자는 아마 직구를 노리고 들어섰을텐데
저렇게 높은 직구에 어이없이 헛스윙이 나오네요. 저거 보세요 지금
헤드업이 나오잖아요."
해설자의 말대로 타자는 머리높이로 날아오는 빠른 직구에 속아 헛스
위을 하고는 고개가 크게 돌아가면서 헬멧까지 벗겨졌다.캐스터가 안
스러운듯 쳐다보았다.
"부담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무래도 그렇죠.팀이 지금 3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어떻
게 해서든 고참선수로서 팀을 연패에서 구해 내고자 너무 열정적으로
덤벼든것이 이런 결과를 낳게 된겁니다."
"자 이제 2스트라잌 3볼. 다음공은 어떻게 보시나요?"
갑작스런 케스터의 질문에 해설자는 물을 먹다가 사래가 걸렸다.
(당신이나 나나 참 먹고 살기 힘들구나. 이거 야구해설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벼.)
"컥컥..죄송합니다. 쟤가 보기엔 다음볼 보다도 이제 투수의 폭투를 조
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2스트라잌 3볼로 풀카운트란 말이죠.주자 1루에 있는 가운데 지
금 타자가 포볼로 나가면 주자 1,2로에요. 만약에 여기서 다음 타자가
큰거 한방 날리거나 안타 한방만 나와도 동점이거나 역전이에요. 투수
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볼카운트에요 이건. 이런 부담스런 상황에서 신
인급 투수가 얼마나 침착하게 볼을 던지느냐가 중요 관전포인트입니다."
"그럼 지금이 오늘경기의 분수령이 되겠군요."
"오늘 경기 뿐만 아니라 지는 팀은 내일경기에까지 영향을 받아요. 애
초부터 투수는 이상황까지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너무 피해다녔어요."
"획, 철퍼덕..떼구르르르."
해설자의 말대로 공은 포수의 글러브를 어이없게 벗어나 관중석을 보호
하는 그물에 맞고 튀어 나왔다. 포볼로 주자는 1,2루가 되었다.역전 찬
스가 온 것이다.
잠깐 봤는데 아는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다. 그래도 재미있다. 특히
포수와 투수가 주고받는 무언의 대화가 제일 맘에 들었다. 나는 방바닥
에서 일어나 공을 잡고 던지는 시늉을 내어 보았다. 공은 빛의 속도로
날아가 포수글러브에 꽂혔고 타자는 한참 후에야 휫스윙을 했다. 관중
속에서 엄청난 함성소리가 들여왔다. 와...와... 최 삼락 화이팅..우리
의 영웅!
나는 어느새 수많은 관중들과 세상과 하나되어 소통하고 있었다.
김사장 놈의 새끼를 까러 공인중계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 인간은 다
방여종업원에게 커피를 주문해놓고 입으로 가슴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마치 발정난 미친개처럼 구멍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개쓰래기였다.
"살림을 차려."
"어 왔냐? 어젠 말야.."
김 사장의 더러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가 않아서 책상
을 발로 걷어 차버렸다. 조그만 책상은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커먼 커피가 실내 여기저기를 검게 물들여 놓았다. 유리로
만든 커피잔은 완전 개박살이 나서 가루가 되어 바닥에 깔려 별처럼 반
짝반짝 빛났다. 다방 여종업원의 눈에서도 별처럼 반짝이는 액체가 쏟아
져 나왔다. 나는 그 별을 향해 말했다.
"꺼져 씹알년아."
그녀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신발짝도 벗어던지며 총알처럼 튀어나갔
다. 나는 대갈통에 총알이 박혀서 겁대가리를 상실한 김사장을 향해 항
생제처럼 매콤한 주먹을 한방날렸다.
"어리다고 얕봐? 퍽!"
"크헉..아냐아냐 최사장 그런거 아냐.."
"아니긴 다알어 퍽..퍼벅.."
몇대갈기자 축늘어진 김사장은 필사적으로 내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늘어
졌다.
"안 그럴게, 다신 안 그럴테니 제발 살려줘."
사실 주류세가 조금 오르긴 했다. 그래서 원래는 김사장에게 돈을 좀 더
얹어주는게 맞는데 버릇될까봐서 이렇게 하는것이다. 이렇게 한번 제대
로 조져놓으면 다음부터는 알아서 기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세금이며
인테리어며 지가 다 알아서 해결한다. 이게 내가 사용하는 언어다. 폭력..
그것은 참 편리한 언어였다.그런데 사실 야구의 언어처럼 재미있지는 않
았다. 나는 문득 야구부감독이 생각났다.
"시발 자,잘해. 퉤!"
바닥에다가 욕보다 더 못되먹은 가래침을 뱉은후 감독을 만나러 학교 운
동장으로 향했다.
"왔냐? 내가 요놈 다시 올줄 알았지.헤헤."
오늘은 야구부 연습이 없는지 운동장이 텅텅비어 있었다. 감독은 야구운
동화와 송진 그리고 스피드건까지 준비해 왔다.
"손가락 싸인..갈켜줘."
"알았어 인마.넌 이미 그동안 뛴 노가다로 기초 체력훈련은 끝났고 일단
야구신발 신고 송진 발라봐."
시키는대로 했다. 그리고 하라는 대로 했다.
"휙~펑!"
밑창에 스파이크가 달린 야구화를 신으니까 공의 속도가 휠씬더 빨라졌
다. 던질때도 공에 체중을 제대로 실을 수가 있었다.
"와 160.. 중3이 160km. 괴물이네.."
설레발이를 치는 감독을 향해 뚱땡이 포수는 또 돌맹이 타령을 했다.
"감독님 공이 정말 무거워요.바위덩어리를 받는 것 같아요."
포수놈은 따가운 손바닥을 후후 불며 호들갑을 떨었다.
"한번 더 던져봐."
160..158..160..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근데 나의 관심은 점점 더 공에서 떨어지고 있었
다.
"손가락 싸인.."
감독은 소주인지 물인지 의심이 가는 액체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혀를 찼다.
"캬 그새끼 집요하네.넌 마무리가 좋겠다.그런 근성이라면."
"마무리?"
(그거 우리세계에서는 맘에 안드는 상대를 시마이 시킬 때 쓰는 용어인데.
야구에서도 그런게 있나.
"야 이번엔 너 편한 자세로 아무렇게나 한번 던져봐."
편한대로?내가 가장 편하게 공을 던질 수 있는 자세는 똥퍼올리는 자세였
다.그 자세로 3년내내 트럭에 똥을 퍼올렸기 때문에 그 각도에서는 내 근
육들이 잘 단련이 되어 있어 누구보다도 더 큰힘을 발휘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마치 언더핸드가 던지듯 공을 던지고 있었다. 일명 잠수
함 투구로써 타자가 보기엔 공이 밑에서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서
언더핸드로 불린다.만약 이 공이 제구만 제대로 된다면 메이져리그의 강
타자, 뉴욕양키즈의 간판스타인 데릭지터가 와도 절대 못친다. 데릭 지털
이 아니라 걔 할아버지가 와도 털끝하나 못 건드린다.겨우 맞혀봐야 뜬공
이다.
"에라 휙..펑.."
"와 언더핸드가 165가 나와. 감독님 이거 기계고장 아니에요?"
뚱땡이 포수가 속도계를 흔들며 묻자 감독은 찢어진 입으로 겨우 대답했다.
"아냐 새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