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다-8편

cis19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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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위에 놓여 있는 고등어의 살점은 마치 모자이크 처리된 것처럼 부위별로
나뉘어져 있었다.탐욕스럽게 배를 불리던 위장과 몸을 수직 상승시키기 위
해 힘차게 움직이던 가슴살 그리고 미래를 위해 앞으로 휘젓던 꼬리살. 역
동적이고 활기찼던 고등어의 삶은 1차원적으로 편집되어 회감이 되었다.나
는 마치 초식동물처럼 1차원적인 고등어를 먹고 1차원적인 생각을 하며 단
순해질 것이다. 친구라는 말도 잊은 채 배신이라는 말도 잊은 채 단순하게
먹고 싸고 숨쉬는 일만 하는 간략하게 편집된 삶을 다시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다.

"오물오물.."

희연이는 고추장도 찍지않고 회를 먹었다.왜냐면 고추장 따윈 옆에 없었으
니까. 살아있는 바다를 먹는데 양념 따위는 필요없으니까.

먹다남긴 회는 저리 치워버리고 희연이는 지구를 닮은 사과를 깎았다.사각
사각. 빨간 껍질이 벗겨지자 노란 속살이 드러났다. 서걱서걱.

그녀는 한번도 끊어지지 않게 껍질을 까나갔다. 사과아래로 동그란 원모양
으로 축 늘어진 사과껍질이 보였다. 지구가 탐욕스런 이유는 돌고 있기 때
문이다.음란한 원주율 속에 탐욕스러운 속살을 감추기 위해 미친듯이 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그마처럼 뜨거운 욕망을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할거 없이 탐욕스러운 거였다. 이
건 숙명이었다. 따라서 탐욕은 절대로 질병이 아닌것이다.탐욕스런 세상과
차단하는 것,자폐 또한 병이 아니었다.

"오빠 지금도 마음이 아파?"

"아니 안졸려."

"와자작,와자작."

희연이는 사과를 먹고 있었다. 속살이 아닌 껍질을 먹고 있었다.빨갛고 거
친 껍데기를 씹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탐욕의 속살을 거부하고 사과의
본질을 씹고 있는 것이었다.맘에 들었다.그전엔 둘만 같이 있을 시간이 거
의 없어서 잘 몰랐는데 그녀도 나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고 나와 같은 생
각을 하며 같은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같았다.

"오빠도 사과같이 먹을래?"

"응 오늘은 바람 안 불어."

와작와작..사과껍질이 이빨 사이에 껴 입천장을 자극했지만 괜찮았다.희연
이가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란걸 알았으니 그걸로 OK였다.

그녀는 옷을 모두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몸을 뒤로 눕히고 하늘
을 바라보았다. 양손으로 몸이 가라앉지 않게 천천히 헤엄을 쳤다.나도 다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어느새 달이 떠올라 온세상을 회색빛으로 덮고 있
었다.

"첨벙첨벙.."

그녀와 나는 갓태어난 물고기처럼 어색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헤엄을 치
고 있다라기 보다는 물속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희연이의 머
리카락은 물에 젖어 하얗게 반짝였다. 곱슬곱슬한 그녀의 머리카락은 파
도를 닮아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힘껏 끌어 안았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한참동안 입을 맞추고 있는데 멀리서 통통배 지나가는 소리가 들
렸다. 그 소리를 신호로 그녀가 날 밀쳐내며 히죽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
다. 바닷물은 마치 영양액처럼 슬픈 우리를 까르르 웃게 만들었다.몸과 마
음이 치유되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콕콕 쑤시며 쓰라렸다.

배가 지나가면서 작은 파고가 만들어졌다. 여러겹으로 몰려오는 파고는 가
슴을 간지럽혔다. 희연이도 가슴이 간지러웠는지 봉긋하게 솟아 있는 가슴
을 양손으로 수줍게 가리며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둥실둥실."

동그랗고 하얀 물체가 내옆에 동동떠 있었다.딱 주먹만했다.손으로 잡아보
니 야구공이었다. 희연이는 그런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녀는 손가락으
로 달을 가리켰다.

나는 있는 힘껏 달을 향해 공을 던졌다. 공은 달을 향해 힘차게 솟아 올랐
다. 그러다가 힘이 떨어지자 그대로 정지해 버렸다. 순간적으로 달이 두개
가 되어버렸고 세상이 한결 더 환해졌다.우리도 환하게 웃었다. 날아간 공
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다시한번 환하게 웃었다.

도대체 야구가 뭔지 알아보고 싶었다.야구에 대해 무뇌한인 내가 잘 할 수
는 있을까. 대충 알아보니 야구는 말이 필요없다고 했다. 다른경기 보다도
더 말이 필요없는 이유는 바로 손으로 싸인을 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 볼만 했다.

중학교 야구부가 연습하고 있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20여명이 구령을 붙여
가며 이러저리 뛰고 있었다.잘 들어보니 학교이름에다가 기합을 넣고 있었
다.

"북일..화이팅!"

한참을 그러다가 휴식시간인지 운동장 벤치에 줄을 맞춰 앉았다.화장실 갈
사람은 가고 각자 볼일을 보았고 나머지 할일 없는 사람들은 줄을 맞춰 앉
아 물을 마시며 잡담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운동장으로 내려가 야구부애들이 마시는 물 주전자를 발로 차버렸다.
쿠당탕탕.. 주전자는 마른 흙바닥에 검은 물자국을 내며 죽은듯 엎어졌다.

"뭐야 저새끼. 뒈질라고 환장을 했나 씨발."

운동장 한가운데에 흰우유를 뿌리는 나를 보고 야구부 주장으로 보이는 놈
이 인상을 구기며 쌍욕을 퍼부었다.야구는 말이 필요없다던데 다 구라인가.
왠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야구부에게 다가가 주전자를 발로 차 엎어
뜨리고 왼발 뒷꿈치로 착착이겨서 납작하게 뭉게 버렸다. 야구부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정적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씨바아알."

더 이상 얘기했다가는 또 말을 더듬으며 뜻하지 않게 뻘소리가 나올것 같
아 용건만 간단히 말했다.

"야구 씨발."

"쿨럭, 저새끼 뭐야.쿨럭쿨럭"

포수를 맡고 있는 덩치 큰 놈 하나가 퍼 쳐먹는 요구르트를 존나게 퍼쳐먹
다가 나를 보곤 어이가 없어 사레가 걸렸다.야구부중 날 아는 놈이 있는것
같았다.

"야 쟤몰라? 쟤 울학교 짱이야.최삼락이란말야.걸리면 죽어."

"정말? 쟤가 진짜 최삼락이야?우린 다 죽었다 시발.이럴때 감독님은 어디
간거야. 짱나게."

속닥거리는 소리가 다 들린다. 날 아직 모르다니.중학교 뿐만 아니라 고등
학교 찌질이 새끼들까지 평정한 나를 아직도 모르는 새끼들이 있다니.특히
이 야구부 새끼들은 대부분 내 얼굴을 모르는것 같았다. 하긴뭐 맨날 훈
련이다 시합이다 해서 수업을 빠지고 전지훈련간다고 몇달씩 학교를 비우
니 날 알아볼리 없지. 이새끼들도 데려다가 포장마차 장사나 시킬까..

내가 앉은 자세로 검지와 중지손가락을 쩍 벌렸다.여기에 담배가 와서 꽂
힌다면 내가 바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누군가가 총알같이 달려와 내 손가락사이에 담배를 꽂았다. 아까 그 포수
새끼였다. 그새 내 이야길 듣고 크게 반성한 모양이었다. 내가 담배를 입
에 가져다 물자 라이터를 켜서 불까지 붙여주었다. 그리고 인사를 꾸벅하
고 사라졌다. 새끼들이 보기와는 다르게 영 개차반은 아닌것 같았다.조금
만 조지면 꽤 쓸만한 좆밥들이 될것 같았다.

나는 담배 한까치를 다 피우고 나서 주장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장한 표정으로 내앞에 섰다.나는 다짜고짜 놈의 뺨
을 후려 갈겼다. 찰싹.이건 나를 보고도 인사 안 한 벌이고.찰싹.이건 나
한테 시원한 물 한잔 안 갖다바친 벌이고.찰싹.이건 담배 늦게 가져온 벌
이고..

온갖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물어 때리고 또 때렸다.야구부 주장의 뺨이 벌
겋게 부어올랐고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그러나 나한테는 놈의 고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감성은 고무피복에 싸여 있는 구리선 같았
다. 상대방이 느끼는 고통으로 인해 마음이 합선되지 않고 무한폭력을 휘
두를 수 있을 만큼 피폐해져 있었다. 아니 고도로 타락해 있었다.

"돌려."

나는 야구부 주장의 다른쪽 뺨을 갈기기 시작했다. 기분나쁘게 손에 놈의
피가 엉겨붙는 바람에 좀 깔끔하게 작업하고 싶어서였다.철썩철썩..

철썩? 뺨을 때리는데 파도소리가 나네.인간의 광폭한 폭력도 파도를 닮았
는가. 피식,하며 헛웃음이 났다.철썩철썩..

야구부 놈들은 쫄아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달려와서 자
신들을 이 공포의 도가니에서 구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다.그러나
놈들을 구해 줄 구세주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설령 반듯한 도덕선생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 손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야구부 감독이와도
교장이 와도..

선생들이 학교에서의 내행동을 몰라서 그냥내버려 두는것이 아니다.만약
나를 지들 맘대로 퇴학시켰다간 무시무시한 보복이 가해진다. 내 스스로
학교를 걸어나가기 전까진 그 누구도 날 학교에서 내보내지 못한다.경찰
마저도 날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나는 이미 학교에서 뿐만아니라 지역
사회에서도 언터쳐블한 존재였다.

야구부 놈들은 아예 울상을 하고 있었다. 매는 주장이 맞는데 지들이 왜
울상인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에이 재미없다. 그만 두려는데 어떤놈이
일어서서 마치 구세주라도 본듯 환호했다.

"감독님 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