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허허 이녀석 뼈가 야무네.이담에 크면 장군감이다."
"아이 아버님도 참 요즘세상에 누가 힘으로 먹고살아요.머리써서 편하
게 먹고살아야지요."
"허허허 아가 그래도 남자는 힘이 있어야 자신감도 생기는거란다.허허."
내가 7살때였던가 도망간 우리 엄마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주고 받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 할아버지는 내손에 야구공을 쥐어주며 한번 던져
보라고 했었다.어쩐지 야구공이 낯설지가 않더라니.
"요놈 통뼈녀석아. 자 이렇게 공을 잡고 한번 던져보거라."
"일캐여?"
어린것이 다른 것엔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더니 야구공엔 유달리 관
심을 나타냈다. 할아버지는 그걸 알고 내손에 야구공을 쥐어준 것이다.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구공을 잡았다.
"녀석 아귀힘 좋은거 봐라. 자 이제 앞으로 힘껏 던져보거라."
"이쌰..휙.."
야구공은 수영장 한복판까지 날아가서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뽁, 하며
다시 떠올랐다. 나는 그 광경이 너무 재미있어서 할아버지에게 계속해
서 야구공을 달라며 땡깡을 부렸었다. 할아버지는 야구공을 내손에 쥐
어 주셨고 나는 수영장을 향해 공을 힘껏 던졌다. 내가 전에 얘기했듯
이 우리집은 전엔 아주 잘 살았었다. 7살짜리 어린아이치고는 꽤 멀리
던지는 편이었다. 오래전 잊혀졌던 기억의 실타레가 갑자기 빗장없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쁜 내새끼. 쪽쪽."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물고 빨며 이뻐해 주셨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어릴적 미국 선교사로 부터 야구라는것을 한국인으
로서는 처음 접한분이셨다. 해방후 6. 25를 치르면서도 할아버지는 한
국의 야구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다.야구가 미래 스포츠의 중심
이 될 것을 미리 간파한 할아버지는 투수가 던지는 공과 관련된 효율
적인 투구 동작과 볼의 운동역학에 대해 공부를 하셔서 기록으로 남기
셨다.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조차도 생각치 못한 선구자적 업적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한국야구연구회'를 발족시켜 본격적으로 야구
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유명세를 타자 정치인들이 먼저 달
라 붙었다.
할아버지를 입당시켜 지역구를 관리하는데 이용했을 뿐만아니라 전면
에 내세워 당선전에 이용했다. 할아버지는 끝까지 정치보다는 야구에
대한 입장을 표방하다가 정치세력과 마찰을 일으켰다.할아버지가 정치
세력과의 불편한 동침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다음날 변을 당하셨다. 지
금도 정치는 족같지만 그때만해도 깡패새끼들이 정치를 하는 시대였다.
하루일과를 마치시고 도로를 가로질러 나를 향해 걸어오시던 할아버지
는 측면에서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자동차를 인식하지 못했다.어,어,
어.. 어린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머리를 웅켜잡고 절규했다.
할아버지는 결국 사고를 당하셨다. 무서운 속도로 할아버지를 향해 달
려오던 자동차는 오히려 속도를 더 가속시켜 할아버지를 치고 달아났
다. 차에 치어 붕 떠오른 할아버지는 뒤로 한바퀴 돌아 머리부터 바닥
에 떨어졌다.온몸의 뼈가 모두 으스러지고 폐에는 부러진 갈비뼈가 파
고 들어 재기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쿨럭..
바닥에 엎드려 누운 할아버지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의식을 간신히 부
여 잡은채 어린 나를 바라 보셨다. 기억력이 남달리 좋은 나는 그때
할아버지 얼굴에 꽃처럼 핀 미소를 보았다. 화려한 봄꽃보다 더 깊은
향기로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사람의 향기였다. 할아버지는 얼굴이
아닌 향기로 내 기억의 서랍속에 수랍되어 있었던 것이다.내가 첫눈에
할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때 만약 할아버지가 변
을 당하지 않으셨다면 한국의 프로야구는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닌 순
수 스포츠로써 출범하였을 것이고 메이저리그는 미국인 아닌 한국에서
열리는 경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전장군은 자신의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반대세력들,즉 민중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떼어 놓기 위해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산업을 집
중적으로 키우고 육성시켰다.그 일환으로 1981년 프로야구가 공식 출
범하였다.
결국 할아버지가 설립한 '한국야구연구회'는 연구성과가 모두 불태워
지고 재단자체가 소멸되어 버렸다.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재단은 정
치인들의 손에 의해 정치적으로 암살 당한 것이다. 그 당시 여당 대표
가 바로 심보삼.. 그는 전장군의 후계자이며 심샘물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어쩌면 내 할아버지의 빛나는 연구성과가 심가네 쪽으로 새어나
가 심 샘물을 천하무적의 괴물로 만든건지도 모른다. 얼마전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던 영문모를 영상
이 이제서야 모두 해석의 범주에 들어왔다. 분노와 공포가 삼락을 휘
감았다.
내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내가 나만의
세상을 갈구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
의 빛나는 정신 유산을 물려받았다.추억과 갈망이 버무려져 지금 나는
이곳에 서 있는 것이었다. 추상과 실질적인 기억이 버무려져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회화적인 공감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야.구.하.자
죽을때까지
아직 변화구에 대한 완성도는 만족할 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투구
폼,피칭속도 다 이상이 없는데 뭔가가 하나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양
아치 감독 말마따나 영혼이 실린 듯한 충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말이
안 된다는건 알지만 하여튼 분명뭔가가 부족했다.
손가락의 위치도 바꿔보고 팔꿈치 각도도 조절해보고 허리도 약간 틀
어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더운날씨에 오
른쪽으로 축 쳐져있는 좆대가리를 왼쪽으로 돌려놓아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글러브를 칵 그냥 집어 던져 버리고 시원한 소주나 한
잔 빨러가고 싶었다. 에히 시발..
더위에 감독도 지쳤는지 헥헥 대며 물만 마셔댔다.
"꿀꺽꿀꺽.. 삼락아,주위에 자꾸 신경을 쓰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세가
흐트러지는 거란말야.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니 공에만 집중하란 말야.
공에 영혼을 담아서 던지란 말야."
(영혼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시발. 말이 되냐고 시발.. 귀를 닫고 눈
을 감고 어떻게 공을 던지냐고. 공은 뭐 지혼자 다 알아서 날아가는줄
아나.알만이 사람이 대체 왜 저지랄인지 몰라 당최..)
며칠동안 특훈에 들어갔다. 감독은 나를 온갖 변태적인 방법으로 괴롭
혔다. 물속에서 공을 던지게 하는가하면 손가락 하나로 피칭을 시켰다.
나중엔 내몸을 나무에 거꾸로 메달아 놓고 허공에서 포수에게 공을 던
지게했다. 그리고 야구할때를 빼고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안대를 하고
다녔다. 쫄따구가 내옆에서 수발을 들어주었다.덕분에 낮에는 해가 하
늘위를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밤엔 달님이 방긋 웃는 소리
를 들을 수 있었다. 미친거 나도 안다. 감독이 미친놈인데 선수가 안
미치고 배기겠니?
이런 미친짓을 하고 나서 다시 마운드에 섰다. 눈을 감고 포수가 있는
곳을 느껴보았다. 포수의 심장소리는 커녕 내 심장소리도 들리지 않았
다.내 심장이 멎었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적막했다. 눈치 존나게 빠
른 감독, 그의 뻘소리가 침묵을 깨며 막막한 오후를 조롱했다.
"삼락이 넌 야구에 소질이 없나부다.아직 안 늦었으니 발레나 해."
"빨어 시발."
나는 눈을 꼭 감은채 '빨어'와 함께 자폐의 바다속으로 점점 더 깊숙
이 침잠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여전히 나는 죽은듯 마운드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며 시야가 둥근 원모양으로 좁혀져 있었
다. 마치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눈앞이 동그랗게 열려 있었
다. 저 앞에 포수가 보였다. 내가 던져야 할 포크볼의 2차 곡선이 눈
에 들어왔다.손가락을 그 궤도에 맞추어 그립을 바꾸어 잡았다. 바람
의 방향과 온도 ,습도, 기압, 그리고 달의 인력이 정확히 계산되어
곡선으로 나타난 것이다.와인드업을 한 후 공을 던졌다.공은 마치 열
추적 미사일처럼 정확히 내가 예상한 변곡점을 타고 난 후 포수의 미
트속으로 부드럽게 빨려들어갔다.이제서야 변화구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160km인 직구보다 30km나 느린 변화구는 거의 공이 휠수있는 극한까
지 휘어져 들어갔다. 다시 던져 보았다. 포크볼은 포수 바로 앞 홈플
레이트에서 거의 수직으로 폭포수처럼 떨어졌다.옳지 바로 이거야.임
의적이고 자의적인 자폐의 세상에서 나는 완벽한 모습으로 거기 서
있었다.세상 모든걸 가진것 같은 풍만감과 황홀감이 물밀듯이 몰려왔
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올라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었다.그러나 인격
적으로는 난 아직 완벽하지 못했다.
(심 샘물 씨발새끼, 넌 뒤졌어 이제..)
투구동작을 더욱 크게 해 보았다.이런 투구폼은 타석에 선 타자의 눈
을 현혹시킬수 있기 때문에 때론 예상치 않게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
기 때문이다. 나비처럼 양손을 크게 벌렸다가 오른발 보폭을 넓게 디
딘 후 왼손으로 볼을 휘감아 던지려는데..
감독이 내 바로 옆에서 똥을 싸갈기고 있었다. 뿌직..뿌지직..설사똥
소리에 순간적으로 투구폼이 흐트러지며 왼손에서 공을 놓치 못하고
오른쪽으로 나동그라졌다. 하마터면 큰 부상을 가져 올 뻔한 위험한
순간이었다.
"와놔 시발, 뭐저런 똘아이가 있냐."
감독은 휴지로 밑구녕을 닦으며 낄낄거렸다.
"야구시합장에 가면 별의 별놈이 다 있다.이런걸 극복해야 4대 고교
야구에 설 수있는 진정한 야구선수가 되는거야.낄낄."
이상하게 개쓰레기 같은 감독의 말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절
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그럴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에서
엄청난 함성과 소란에도 영향받지 않고 제대로 볼을 던지려면 살인
적인 집중력이 필요할텐데 똥이 뭐 대수인가..감독의 족같은 변태행
각에 내가 덜커덩 낚인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킥킥..웃기기도했고 처절하기도 했다.
(어쩌면 저 또라이 감독은 나의 집중력 향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건지도 몰라. 아니면 개 썅놈의 변태새끼
이거나..)
삼락은 아직도 똥을 생산해 내고 있는 감독의 하얀 엉덩이를 향해
공을 던졌다. 휘잉..
-4대 고교야구: 청룡기, 황금사자기,화랑기, 대통령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