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은 할매가 건네준 물건을 손바닥에서 조심스럽게 펴 보았다.
"...!"
놀랍게도 손바닥위엔 누런 십원짜리 동전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이걸두고
여태 지랄발광을 해온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오입에 미친 여편네 말에 속아
이런 개십원짜리 동전을 금화로 믿고 몸속의 정액을 쪽빨리고 그것도 모자
라 미친할매 집에까지 쭐쭐 찾아와 쌩쑈를 하고 앉아 있으니 한땐 머리좀 굴
리며 살았었던 자신이 어쩌다 10원짜리 인생이 되었는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누가 알면 정말 쪽팔려서 코박고 죽을 것만 같았다.소문내지마라. 너
만 알고 있어라.
실망한 성윤은 이제 지칠대로 지쳐서 숟가락을 땅바닥에 내던져버리고 앉았
던 평상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갈께."
간다는 말에 놀란 할매가 성윤의 소매를 잡아 당기며 다급하게 말했다.
"또 어디가?우리아들 가지마."
"누가 당신아들이야 꺼져 썅!"
"용돈 줄게 가지마라 응?"
할매가 애원하듯 붙잡고 늘어지자 성윤이 짱돌을 주워 위협을 가했다.
"저리 안 꺼져!"
할매는 잠시 움찔하는가 싶더니 다시 성윤에게 달려들어 필사적으로 바지가
랭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가지마 쉰둥아. 엄마가 해달라는 거 다해 줄게."
"어우썅 미쳐 증말. 놀아줄 시간 없다고 미친 할망구야."
그는 가차없이 발을 휘둘러 할머니를 내동댕이 친 후 오두막집을 추벅추벅
걸어 나와버렸다. 호로새끼.
-잠시후
울릉도와 포항을 오가는 저동 여객선터미널에 성윤과 할매가 마주 서 있었
다. 둘은 헤어지기 못내 아쉬운 듯 두손을 꼭잡고 있었다.
"뿌웅~"
뱃고동소리가 울리며 배가 곧 떠난다는 신호를 알렸다. 성윤은 이제 울릉도
를 떠나야만했다.이젠 돈도 다 떨어지고 보물에 대한 정보도 거의 전무한 가
운데 더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섬을 다시 염탐하고
불쌍한 할매한테도 맛있는거 사주려면 다시 자금도 모아야만 했다.무엇보다
진주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도저히 이곳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성윤은 전에 할매에게 했던일이 미안해서 사과하는 의미로 동철네 슈퍼에서
산 사탕봉지를 꺼내주었다. 부시럭.
"입 궁금할 때 잡수셔. 츄파춥쓰는 담에 사올게."
할매는 어쩐일인지 좋아하는 사탕은 관심밖이고 성윤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미쳐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손주를 대하는듯한 그런 태도였다.
"아들아 정말 가야겄니?"
"당신아들 죽었다니까 자꾸그러네."
할매는 사탕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주머니를 뒤져 손바닥만한 꼬마불상을
꺼냈다. 기도할때 쓰던 바로 그 불상이었는데 손때가 묻어 표면이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 할매는 성윤의 손에 불상을 꼭 쥐어주며 말했다.
"가져가서 어려울때 써.여기에서 밥이 나와."
성윤은 마지못해 불상을 건네 받았다. 그리곤 사탕봉지를 할매 가슴에 억지
로 떠넘긴 후 다람쥐처럼 폴짝 뛰어 배에 올라탔다.배는 곧 출발하고 할매가
그뒤를 따라 가다가 발을 잘못 딛어 넘어졌다.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성윤
은 움찔했다.
(노인네가 조심좀 하지. 괜히 내맘이 다 아프네 그냥.)
할매는 간신히 일어나 부두 끝에서 멈춰 서서 성윤을 향해 소리쳤다.
"물고기 많이 잡아와.츄파츕쓰 꼭 사오고."
성윤은 이대로 지켜보고 있다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 고개를 돌
려 할매를 외면했다. 배가 섬에서 점점 멀어지며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
었다. 석양은 노을 빛으로 물들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왠지모르게 할매에
대한 성윤의 마음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영식의 사무실
종로에 위치해 있는 영식의 사무실에 성윤과 진주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
뒤에 부하가 도끼눈을 뜨고 감시하며 서 있었다. 영식이 다짜고짜 문을 박차
고 들어와 전에 성윤이 할매한테 받았던 꼬마 불상을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
놓았다. 성윤이 울릉도에서 가지고 온 그 불상을 가지고 골동품 감정을 하러
간 일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도끼 같은 주먹으로 성윤의
배를 한방 후려갈겼다. 퍽.욱.. 성윤은 힘없이 그자리에 픽 쓰러졌다.
골동품 상인에게 개망신을 당한 김영식이 불상과 성윤을 번갈아 보며 고래
고래 소리쳤다.아따 호구일세.
"새꺄 애들 장난감 갖고 뭐? 도자기?"
간신히 숨을 고른 성윤이 영식을 향해 항변했다.
"콜록. 무슨 소리야. 할매가 분명 1100년 전 당삼채 도자기라고 했어."
"너 땜에 인사동 박씨한테 개망신 당하고 왔어 이 씨발놈아.당삼채 도자기라
고 했더니 개소리말라며 개사료도 한주먹 쥐어주더라 이 좆만아."
사실이었다. 돌부처는 울릉도 할매가 4년전에 누구한테 시켜서 뭍에서 사온
것이었다. 보는 눈이 예리한 성윤도 그걸 모를리 없었지만 울릉도까지 내려
가서 빈손으로 왔다고 하면 영식이 지랄할것 같아서 구라를 쳤던 것이다. 아
따 호구왔는가.
"그래도 열심히 발로 뛰어다녀서 겨우 찾은 건데.."
"보물을 발꾸락으로 건졌냐?"
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영식은 성윤의 배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퍽..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인지 한 번 더 걷어찼다.퍽.쿡. 자지러지는 성윤이다.
맞으면서도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구라를 쳐대는 성윤이었다.
"크헉..1100년된.."
영식은 계속되는 성윤의 구라에 아주 돌아버릴것만 같아서 돌려차기를 했다.
휙~.퍽..
"그만해!"
보다못한 진주가 영식의 앞을 가로 막으며 나섰다.
"넌빠져 이년아."
영식의 부하가 진주를 제압한 후 옆으로 빠졌다.
"1100년 같은 소릴하고 자빠졌네. 1100대 맞을래? 감정해 보니까 4년전에
도자기 공장에서 갖구워낸 따끈따끈한 애기부처란다 이존만아. 에라 뒤져라
그냥.퍽."
영식이 성윤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려치자 컥소리를 내며 고개를 앞으로 숙였
다.아마도 기절한 듯했다. 옆에서 진주가 질겁을 했다.
"오빠! "
영식이 피묻은 주먹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로 똥개 한 마리 잡자."
부하가 기절한 성윤에게 찬물을끼얹자 성윤이 진저리를 치며 깨어났다.영식
이 곧바로 그의 턱을 세게 후려쳤다.퍽.연속으로 몇 번 더 후려쳤다. 퍽퍽.면
도날처럼 예리한 영식의 주먹이 성윤의 얼굴로 파고 들자 금세 피로 얼룩졌
다. 영식이 어쩌나 보려고 진주를 쳐다 보며 말했다.
"어때 진주야. 성윤이 이새끼 이렇게 너덜너덜 피떡이 되니까 개고기 같지
않냐? 넌 이년아 여태 개새끼를 사랑한거야 알어? "
"그만해 개같은 놈아."
영식은 진주를 진정시키려는듯 손으로 토닥이는 흉내를 냈다.
"아아 진정해. 설마 내가 성윤일 죽이겠냐. 밑은 누가 닦으라고. 안그래?"
진주가 욱하며 폭발했다.
"또 건들여봐! 아빠한테 말해서 너 같은 쓰레기를 그냥."
영식은 위 진성을 머리속에 떠올리며 거들먹 거렸다.
"빽이라면 나도 만만치 않아. 아는 정치인이 많다고."
진주가 이번엔 똥자루만한 영식의 키를 걸고 넘어졌다. 영식의 자존심을 팍
팍 건드려서 그의 관심을 성윤이 아닌 자신에게 쏠리게 하려는 진주의 속셈
이었다.성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한 그녀였다.
"난쟁이 빽이라면 백설공주나 되겠네."
진주의 예상대로 영식이 울컥했다. 차마 자기 손으로는 진주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는지 부하를 향해 소리쳤다.
"저 입좀 찢어버려!"
보스를 욕보이자 흥분한 영식의 부하는 불상을 집어들어 진주의 머리통을
향해 무식하게 내리쳤다.푹,하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불상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데구르르 굴렀다. 영식의 부하는 머리통이 날아간 불상을 손에 들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윽고 진주 머리통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진주는 눈알을 거꾸로 뜬채 이미 기절해 있었다.
부하는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오바같았다.그냥 따귀나 찰지게 한대때리면 될
것을 일을 크게 만들고 말았다.보스인 영식이 진주를 맘에 두고 있다는걸 잘
알고 있는 부하로서는 이젠 후환이 두려웠다. 조심스레 영식의 눈치를 살폈
다.퍽~. 볼것도 없이 영식은 부하에게 응징을 가했다. 홧김에 입을 찢으라고
했다고 진짜로 그렇게하면 입이 제대로 붙어있을 인간이 세상에 어디있겠나.
욕은 그냥 욕일뿐 실현시키면 곤란한 것이다.
"이 씨발놈의 깡패새끼야. 여자를 이따구 개패듯 패는 새끼가 어딨어.이러고
도 니가 인간이냐, 이 깡패새끼야."
이번엔 영식의 부하 머리통에서 피가 흘렀다. 영식은 이상하게 머리통에서
흐르는 피만 보면 유독 더 흥분하곤 한다.칼에 찔린 배에서 내장이 흘러나와
도 흥분하지 않는 그가 이상하게 사람 머리통에서 피가 나면 흥분해서 미쳐
날뛰곤했다. 머리통이 비어 있어서 그래.
피가 이리튀고 저리튀는 도축장같은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피를 보고 있는
영식의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이상하게도 희열이 느껴졌다.꽉막혀 있던 가슴
이 확열리고 무거웠던 머리가 깃털처럼 가벼워 지는것 같았다. 이제야 비로
소 세상 살맛 나는거 같았다. 이런걸 두고 피의 미학이라 부르는 건가.
다른 부하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성윤에게 불상을 던졌다. 성윤의 가슴팍에
맞고 무릎 위로 툭,하고 떨어졌다. 영식이 목에 힘을 빼고 성윤에게 조용히
말했다.
"지랄말고 내 금덩이 찾아와. 알았냐?"
성윤이 흐느끼며 말했다.
"진주는 건들지 마 제발. "
"그러니까 새꺄 니가 똑바로 하란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