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45할매의 사탕
"이빨에 꼬추가루 꼈다."
최고조에 이르렀던 에로틱한 분위기는 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낼름거리며
관능을 핥던 카멜레온의 혀도 싹뚝 잘라지고 탑도 어디론가 다날아가버리고
이건뭐 고추가루 하나때문에 일순간에 폐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동철네는
잽싸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는 망신스러운듯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 달
아올라 있었다.
"에이씨팔 증말."
성윤은 괜히 고추가루 얘길 꺼냈구나 생각하며 후회했다. 그깟 고추가루쯤이
야 키스하는데 아무 지장없고 더군다나 섹스하는데는 전혀 상관없는 거였는
데. 아냐 그녀가 입으로 해줄땐 약간 지장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고추가루가
고추를 빨갛게 염색할지도 모르잖아. 암튼간에 괜히 분위기 조져버리는 얘길
꺼내서 서로가 무안해지고 말았다.만세부르고 있던 좆도 식은 만두처럼 눌러
붙어 흐물거리며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다. 말을 타면서 총을 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린 그였다.
동철네는 원수같은 고추가루를 이쑤시개로 벅벅 후벼내고 있었다.잇몸에서
피가 나건말건 있는 힘껏 쑤셔대고 있었다.
(아씨 보물선 얘길 어떻게 다시 꺼내지.좆됐네.)
성윤은 이젠 오입 생각은 싹 사라졌다. 오로지 보물쪽에만 온 관심이 쏠렸다.
조심스럽게 할매에 대해 다시 물었다.
"치매노인네 아니 군산 할매는 그럼 아무도 안 돌봐줘? 친구도 없어?"
"내일 모레면 백살이야. 백살이 넘었단 소문도 있어.또래 노인들은 다 돌아가
시고 젊은 사람들은 먹고 살겠다며 죄다 뭍으로 나가 버렸어. 게다가 하도 이
상한 짓거리를 해대서 돌봐준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어."
성윤이 탄성을 질렀다.
"백살?"
"정정해. 요새들어 좀 빌빌거리지."
"근데 예전에 할매가 이상한 짓을 했었다며? 그 얘기좀 해봐."
"아그거.그게 언제였더라. 날짜는 자세히 생각이 안나는데 하여튼 언젠가 한
번 할매가 우리슈퍼에 와서 구리동전을 가지고선 사탕으로 바꿔달라는 거야.
츄파츕쓰."
성윤이 담배를 한모금 빨아 길게 배뿜으며 말했다.
"애들 먹는 사탕?"
"응, 아들놈 아니 손자가 물고기 팔아 올 때마다 사다 줬다나 뭐라나.그거 먹
고 싶다고 나보고 내놓으래지 뭐야."
동철네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할매와의 기억을 애써 다시 떠올렸다.
할매와 동철네가 가게 안에서 옥신각신하며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동철네는
화가 이빠이 났는지 군산할매를 향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없는 사탕 어떻게 줘요? 밑으로 낳을 수도 없는 일이고."
할매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써거질년. 밑으로 낳은건 냄새나서 못먹어 이년아."
"에이 정말로."
군산할매가 찾는 츄파춥스는 가게 어딜찾아봐도 없었다.그러나 제정신이 아
닌 할매가 생각하기엔 동철네가 사탕을 숨켜놓고서 일부러 안 주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할매는 동철네가 너무 꽤씸하단 생각이 들어서 계속 땡깡을
부렸다.
"이 우라질년아 숨겨논 츄파춥스 어여 내놔."
"그게어딨다고 난리야. 있으면 다가져가요."
"이년아. 니 주머니에 사탕 가득 들었잖냐?"
동철네가 바지 주머니를 보란듯이 까뒤집어 보였다.빈주머니엔 동전만한 구
멍이 흉하게 뚫려 있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 눈앞에서 폭로되자 여자는 악
만 남았다.
"시팔, 사탕 있음 가져가. 다가져가!"
"썩을 년 구멍이 세개네. 여자는 구멍이 두개여야하는겨 이년아."
"구멍가게를 해서 구멍이 세개다 어쩔래?"
"이썅년 입구멍 한번 드럽네."
"이씨팔 보자보자하니까 정말."
동철네는 제정신이 아닌 그것도 나이꽤나 잡수신 어른한테 욕한것에 대해 죄
책감을 느꼈다. 여기서 이렇게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살살 달래서 집으로 돌
려보내는게 최선책 일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새우깡 한 봉지를 집어
할매에게 선심쓰듯 건네주며 달래기 시작했다.
"배 들어오면 츄파츕스 1톤 주문해 놀 테니까 그만 하고 집에 가셔서 새우깡
이나드셔. 자 여기 소주도 한병 드릴테니. 기분이다 까짓거."
그때 할매가 몸빼주머니에서 난데없이 번쩍이는 금화를 꺼냈다. 그냥 딱보기
에도 금이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야이년아 이거 줄께 사탕 내놔!"
"진짜 없다니까. 왜 이래 정말. 나 미치는꼴 보고 싶어?"
"이런 썩다 곰팡이 날 년아.100살 먹은 노인네를 놀려먹어 이 나쁜년아.그러
니까 서방놈이 다른 계집이랑 눈맞아서 도망을 친거 아니냐, 구멍이 30개면
뭐하냐 쑤셔줄 놈 하나 없는데. 크크 망할 년."
참다참다 못한 동철네는 서방 얘기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서방 없는 구
멍 얘기에 꼭지가 돌았다. 젖꼭지?표현력이 너무 적절했기 때문이었다.할매
고 지랄이고 참을 만큼 참았고 봐줄만큼 봐줬다. 여기서 더 참았다가는 완전
미쳐버릴것만 같았다.동철네는 눈을 희번떡거리며 구석에 있는 빗자루를 꺼
내 들어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씨부랄 할망구야,그냥 같이 죽자."
빗자루를 든 여자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할매의 얼굴을
향해 길게 내리치고 있었다.
여자의 손은 다시 시간과 장소를 바꾸어 이번엔 성윤의 입에 참외를 넣어주
고 있었다. 성윤은 빨리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서 입안의 참외를 부지런히 씹
어 넘겼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데?"
"뭐가 어떻게되 금화? 아님 할매?아님 구멍?"
"둘 다.아니 셋다."
"할매는 나한테 한방 얻어맞고는 기절했고 금화인지 뭔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바닥에 떨어져서 어디로 굴러 갔는지 할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고.구멍은 보다싶이 외롭고."
"뭐가 그래. 결론이 흐지부지하네. 금화를 찾았어야지."
"어디 그럴경황이 있었나.할매가 정신을 쏙 빼놓는 바람에 나도 제정신이 아
녔단 말이지. 근데말야 절대로 할매한텐 말 걸지 말어."
"그건 왜?"
"젊은 남자만보면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하루 죙일 따라다닌다니까.거추장스
러워서 아무 일도 못봐. 노인네가 점점 이상해져."
"알았어. 명심 할 테니까 동전 얘기 좀 해봐. 크기나 특이한 문양같은거 말야"
잠시 침묵을 지키던 여자가 궁금증을 유발케 하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성윤
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댔다.그러더니 이번엔 눈을 가늘게 뜨고 고추가루
보단 좀 더 달콤한 얘길 꺼낼듯 야시시한 표정을 지었다.
"동전이 참 요상케 생겼더라.첨엔 10원짜린 줄 알았는데 빛깔이 고운게 마치
황금같더라고.하도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여자 얼굴이 있지 뭐야. 뒷면엔 말
탄 남자도 새겨져 있었고. 30년을 울릉도에서 울렁거리며 살면서도 그런 요
상스런 물건은 난생 처음 봤단 말이지."
꼬추가루 후벼파는 소리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얘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
고 있는 성윤이었다. 드디어 보물에 대한 단초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늙은이가 그런 귀한걸 대체 어디서 났대?"
"몰라 나도그건. 아들 아니 손자한테 줄 거래나 뭐래나."
"지금도 갖고 다녀?"
"지금은 안 갖고 다니는거 같더라고. 대신 기도할때 쓰는지 손바닥만한 돌부
처를 항상 쳐갖고 다니더라고."
"정신줄 놓고부터는 기도하러도 안 다닌다며?"
"매일매일 안 가서 그렇지 가끔은 가더라고. 에이 할매 얘기 그만 좀해. 아주
그 노인네라면 지겨워죽겠어 정말. 그건 그렇고 구멍은 어떻게 할건데?"
성윤은 점점 호흡이 거칠고 빨라졌다. 그는 간신히 호흡을 고른 후 배에서 보
던 책을 주머니에서 서둘러 꺼내 여자에게 보였다.
"그 동전 이거 맞지?"
여자는 성윤이 내민 책을 힐끗 쳐다보더니 눈이 풀려 멍해졌다. 그녀는 동전
보다는 다른것에 더 관심이 가 있는듯 천장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성윤은 동
철네에게 바짝 다가가 다그쳐 물었다.
"자세히 봐봐좀. 이게 그거 맞아? 맞냐고?"
동철네는 무심한 표정으로 성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즈막히 속삭였다.
"서방 떠나보낸 후 매일 굶었어. 구멍이 너무 외롭대."
성윤은 책을 들이대며 계속해서 재촉했다.
"지금 막 식사했잖아. 빨리 말해 봐. 이거 맞지?"
여자는 성윤의 다급한 사정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텅빈 눈으로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뭔가 많이 결핍되어서 사막같이 버석거리는 마음으로 꿈
처럼 내리는 단비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텅빈 표정으로 잠시 멍때
리던 그녀가 만두처럼 흐물거리고 있는 성윤의 사타구니를 갑자기 콱 움켜잡
았다. 그리고는 애원했다.
"빨리 좀 세워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