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여러분께서 보시게될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다.'는 메이져리그
에서 조차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좌완언더핸드 투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희소성이 있는만큼 이선수 잘만 다듬고 키우면 무한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겠죠? 좋은날 오겠죠?
사실 저는 우완 언더핸드였던 김병현선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
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었죠. 언더
핸드의 투구품이 화려한 것은 여러분 께서도 잘 아시죠.그 현란한 몸동작과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다이나믹한 공의 움직임에 사로 잡혀서 넋을 잃고 바
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자 이제부터 역사상 전무후무한 왼손 언더핸드투수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재미있게 즐기시고 괜찮다 싶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즐거운 시간되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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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임새끼, 밥상에 불만 있냐?"
아침부터 술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는 아버지는 왼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는
나를 향해 괜한 생트집을 잡고 있다. 태어날때부터 왼손잡이 인것을 나보고
어쩌라고. 왼손잡이라고 해서 밥알을 떨어 뜨리는 것도 아니고 김치 국물을
흘리는 것도 아닌데 괜한 시비다. 사실 나는 처음엔 오른손잡이 였다.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때인가 철봉에서 떨어져 턱과 오른팔이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해서 오랜동안 오른팔에 깁스를 했었다. 그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왼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쭈욱 왼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너 이새끼 똥싸고 밑도 왼손으로 닦지? 빡.."
당연할걸 묻고는 한대 때린다. 더럽다고.밥먹는데 똥 생각나게 한다고.
이럴 때는 정말 아버지의 팔도 콱,부러져서 깁스를 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 죽어 새꺄. 너도 니 애미랑 똑같아."
그 똑같다는 말속엔 내가 엄마 자궁을 사용해 태어난 것과 같은 왼손잡이
라는 사실이 같이 포함 되어 있을 것이다.
"히잉히잉..힝힝.."
애저녁에 집을 나간 엄마 얘기가 나오자 중학교 1학년인 여동생은 애처럼
울음부터 터뜨렸다.중학교 3학년인 나는 분노를 터뜨렸고.
"이쒸이.."
"뭐야 개기냐? 이새끼가.."
아버지가 발끈하며 주위에 잡아 던질 것을 찾았다. 뭘 주워서 던질런지는
모르겠으나 얻어맞아도 죽지는 않을것이다.이미 아버지의 팔힘은 나에겐
조롱과 무시의 대상이 될만큼 쇠약해져 있었다.술때문일까? 모진 세월탓일
까? 싸구려 동정심이 생길만큼 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나는 가뜩이나 사춘
기라 감수성이 예민한 여동생을 다독여 주었다.
"은지야 울지마 얼른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엄마 보고 싶어.엄마 어디 갔어.엉엉.."
"에라이 썅놈의 집구석"
아버지는 밥상을 들어 엎어쳐 버렸다.국과 반찬 그릇이 허공에 떠올라 잠시
멈춰섰다.영화속에서 극적으로 나오는 정지화면처럼 박수치며 환호할 드라
마틱한 장면은 결코 아니었다. 대신 학대와 인간성 파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
었다.식탁 위의 음식들은 방바닥으로 떨어지며 참혹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살인 충동을 느꼈다. 그건 학대에 대한 저항같은 것이었다.한
땐 가족에게 끝없는 사랑을 퍼주며 자상하고 인자했던 아버지였었는데 대체 무
엇이 아버지로 하여금 이렇게 못되게 굴도록 만들고 있는것인지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가난? 아니면 엄마의 부재? 그것도 아니면 부양할
자식들에 대한 부담감?아니면 세가지 모두?아버지의 침몰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었기에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더 무서웠고 두려웠다. 죽
이고 싶을 만큼.
천장에 김치 조각이 달라 붙어 바람에 펄럭였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내가 이
썅놈의 집구석에 더 있다가는 내가 죽든지 아버지가 죽든지 둘 중 하나는 인생
쫑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서둘러 이 지옥같은 집구석을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본
능적으로 느꼈다.
"염병할 놈의 집구석.내가 이 집구석에 다시 들어오나 봐라.에이 씨팔!"
정작 이 빌어먹을 집구석의 문짝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난데 아버지는
나대신 담배를 한까치를 피워 물며 문을 박차고 나섰다. 이길로 곧장 내려가
구멍가게 아줌마와 구멍을 주네마네를 안주 삼아 낮술을 할 것이다.그리곤 또
집에 들어와 행패를 부릴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레퍼토리만 벌써 3년째다.이
제 정말 끝내고 싶었다.악순환의 질긴 고리를 싹뚝 잘라버리고 어디로든 휠훨
날아가고 싶었다.나는 무의식적으로 식칼을 집어들었다.흥겹게 뿅짝을 부르며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보자 쿵쿵따라쿵쿵따~~"
원래 아버지는 잘나가는 삼성맨이었단다.고려대학교 전자학과를 나온 아버지
는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사인 삼성에 입사하여 고속승진을 거듭했다.그리고
젊은 나이에 일찍 퇴직 한 후 반도체 후 공정처리 회사를 차려 삼성반도체에
납품을 했었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전자제품 생산이 늘어나면서 '전자기기
의 쌀'인 반도체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버지는 승승장구 했다.반도
체 부문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아버지는 후공정처리 사업에 만족하지 않고
반도체와 기기본체와의 중간가교 역할을 하는 PCB 인쇄기 회로기판 회사를
하나 더 차렸는데 전자장치에 없어서는 안 되는 반도체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바로 이 PCB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차린 아버지는 발빠르
게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단다.
그때는 우리 집에 수영장이 두개나 있을정도로 초호화판 생활을 생활을 했다
는데 나는 솔직히 전혀 기억이 나지않는다.그 좋았었던 시절이 기억 나지 않
다니. 이렇게 힘들때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이라도 반추동물처럼 되씹어 가며
위안 삼아 보려 해도 당최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그러고 보면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것은 정말 허무한 것인지도 모른다.부유했던 생활은 그래
서 행복했을것만 같았던 시절은 이렇게도 쉽게 기억에서 휘발되어 사라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아버지는 전자기기가 작아 지고 복잡해지면서 이번에는
연성회로기판(휘어지는 탄성이 뛰어난 기판)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미리 보
고 선투자를 감행했던 것이다.그러나 뜻하지 않게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은 극반전 되고 말았다.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에 있어서 소비가
크게 위축되면서 기존에 쓰던 회로기판 마저도 수요가 대폭 줄어들어 커다란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하물며 차세대 제품은 찾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결국
아버지는 엄청난 빚을 지고 파산하고 말았다.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할머니의
고향인 이곳 목포까지 내려와 고깃배를 탔다.그마저도 일머리가 서툴러 조업
도중 뱃머리에 다리가 끼어 뼈가 부러져 불구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