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새끼야 오거나 말거나 나는 내할일 계속했다. 손바닥에 잔뜩 묻어 있는
야구부 주장의 피를 놈의 상의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빨간 피가 유니폼에
길게 번져 마치 찢어진 상처처럼 아프게 보였다. 그러나 나한테는 그냥 피
얼룩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이놈은 좀더 아파도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또 때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손목에 더 힘을 주어서
존나게 갈겼다.
"어금니 꽉다물어. 이,이빨나가기 싫음."
감독이 휘두르려는 나의 손목을 붙잡고 뭐라고 씨부렸다.
"어유 이새끼 손목 굵은거 봐.어디서 노가다 뛰다왔나. 힘좀 쓰겠는데."
당연한걸 가지고 씨부리는 감독이었다. 나의 팔목은 온갖 좆같은 노가다에 적
응한 결과 둘레가 통나무 만큼 되었다.감독은 들고있던 이온음료를 높이 쳐들
고 벌컥벌컥 마셨다.
"크하..좋다."
야구부 놈들은 감독이 와봐야 별소용없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표정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에선 절망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감
독은 마시던 물을 나에게 척 내밀었다.
"목좀 축이고 때려. 목타실텐데."
그렇지 않아도 먼지 폴폴 나는 운동장에 나와 있으려니 목이 칼칼해서 소주한
잔 생각이 간절했는데 잘 됐다싶어 얼른 받아 마셨다.야구부 주장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감독을 쳐다보았다. 인간에 대한 스승에 대한 믿음이 빠져나간 듯한
공허한 눈빛이었다.누굴믿냐 새꺄.
"저희는 감독님을.. 믿었는데.."
도대체 감독이 나한테 물을 주는 것과 지놈의 믿음이 사라진것 과의 이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거기엔 도대체 무슨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상황이 점점 더 재미없
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이만 여길떠나기로 했다. 야구고 지랄
이고 뭐 재미가 있어야 말이지.
막 자리를 떠나려는데 감독이 포수를 향해 손싸인을 했다. 오른손 검지손가
락을 펴서 왼쪽팔에 가져다댔다. 포수는 뭘 알아듣긴 한건지 고개를 끄덕이
며 운동장으로 달려가 공을 주워왔다.감독이 다시 검지와 중지를 펴서 팔에
가져다가 대자 포수가 글러브와 마스크를 끼고 홈베이스 뒤로 가 앉은 자세
를 취했다.완전자동이었다.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
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다.내가 데리고 있는 애새끼들한테도 이걸 가르쳐
놓으면 일일이 입아프게 말하지 않고도 아주 편하게 부려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공을 한번 던져 보고 싶었다.
나는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여 보았다.
감독이 뭔냄새를 맡았는지 나한테 공을 건내며 포수를 향해 한번 던져 보라
고 했다.
(포수한테 던지라면 대가리를 맞추라는 거야 아님 배때기를 맞추라는 거야.
정확히 말을 해야 씨발 내가 움직일거 아냐.너도 자폐냐?)
포수가 글러브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걸 보면 그쪽으로 던져 보라는것 같았
다. 저 조그만 장갑속에 공을 집어넣으라니 미친거 아냐.거리도 20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그래도 손해볼거 없으니까 한번 던져봐,아님 말어..이
거 무슨 애들 장난질 같기도 하고 참나..
나는 원래 다치기 전엔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에 오른손에 공을 쥐고 힘을 주
었다.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발을 조금들어 반동을 준 후 공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후 내리찍으며 던져보았다.
(이까짓거 콩알 만한 공쯤이야 누워서 숙은 죽 먹기로 던지지.내가 왕년에
돼지똥 푸던 사람이야.반쯤 썩어서 질퍽질퍽하고 악취나는 돼지똥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냐. 그걸 한삽 떠서 2미터 정도 높이 되는 5톤짜리 거름차에 퍼
올리려면 초인적인 힘이 필요해 이것들아 알어? 이깟 공쯤이야 애들 장난질
이지.)
"획..콰항!"
내가 던진 공이 포수의 두꺼운 글러브에 닿자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동시
에 먼지가 하얗게 피어 올랐다.
"어푸어푸..쿨럭쿨럭.."
포수 놈이 손을 좌우로 휘저으며 먼지구름을 걷어냈다. 다른 야구부 놈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쫙 벌린채 내모습을 바라봤다.감독도 약간 놀라는
표정이었다.
"볼은 빠른데 콘트롤은 엉망이네."
"140이상 나오겠는데요 감독님.그리고 볼이 돌처럼 무거워요."
원래 포수라는 포지션은 워낙 많은 공을 받기 때문에 한번받아보면 공의 속
도가 얼마나 되는지 감으로 알 수 있었다.
"너 어디가서 볼 던져본적 있냐? 공 던지는거 배운적 있냐고."
말하기도 귀찮아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내가 따분하단듯 왼손으로 뺨
을 벅벅 긁었다.
(아까 그 손가락싸인이나 가르쳐줄것이지 뭔놈의 공던지기야 시발.)
감독은 나의 왼손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이번엔 왼손으로 한번 던져봐."
자꾸 귀찮게 구네.그래도 손싸인 한번 배워보려고 시키는대로 했다.아까처
럼 발을 약간 들어올려 반동을 준후 공을 쥔 왼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가 인정사정없이 내리 찍었다.평소 자주 쓰는 왼손이라 전보다 더 큰 힘을
쓸 수가 있었으나 공이 생각보다 가벼워서 원하는 속도가 나질 않았다. 생
각같아서는 글러브를 뚫고 포수의 가슴팍을 뚫고도 모자라 뒤에 있는 학교
건물 안으로 뚫고 들어가게 할 수 있을것 같았으나 가벼운 공엔 좀처럼 힘
이 실리지 않았다.
"획, 콰쾅..와아아아."
물개쑈보다도 더 재미있는 구경을 공짜로 하고 있던 야구부가 일제히 탄성
을 질러대고 있었다.
"앗따가워..콜록콜록.."
포수가 볼을 받은 글러브에서 손을 얼른 빼내며 또 기침을 했다.
(뭐야시발 애들장난감처럼 가볍잖아.포수 저새낀 왜이렇게 엄살이 심해.볼
두번 받고 폐병환자처럼 기침을 하고 지랄이네.볼한번 더 받으면 폐암걸려
뒈지겠다야.)
나는 대놓고 녀석을 비웃었다.
"병신색 어,엄살은.."
"감독님 이번엔 더 빠른데요.150도 넘겠는데요.바위덩어리처럼 무거워요."
왼손으로 던지니까 훨씬 편하고 속도도 더 많이 나왔다.그리고 마지막 공
이 손끝을 떠날때 느껴지는 감촉이 너무 좋았다.손끝을 감아 던지면 공에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같았다. 그랬다. 뚱땡이가 떠나면서부터 나도 뭔
가 변화를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공을 던지면서 나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숨어 있는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그렇고
손싸인이 알고 싶었다.얼른 배워서 밑에 애들한테 써 먹고 싶었다.
"음 중학생이 150이라.야구화도 안 신고 손에 송진도 안 바르고.음.. 역
시 노가다 출신이었군."
감독은 중학생의 강속구에 감동먹고 있었지만 나의 인내심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얼른 손싸인 안 가르쳐주면 집에 갈거였다. 나는 감독앞으로 바
짝 다가갔다.
"손싸인..시켜줘.."
"뭐 손싸인? 음 그래 알았다.너 내일 다시 여기올래? 그럼 가르쳐주지."
"씨발..조또.."
(실컷 부려 쳐먹고는 다음에 가르쳐준다니.지금 이 자리에서 가르쳐줘도
내가 손해 보는 기분인데.에이시팔 재수없어.내가 다신 여기오나봐라.)
뒤도 안 돌아보고 운동장을 나왔다. 콘크리트 바닥으로 들어서면서 발을
쿵쿵 굴러 구두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이 더러운 기분도 함께 떨어
져 나가길 바라면서 말이다.
잠깐 가게에 들러 땅꼬마를 만났다.새끼는 기특하게도 가게를 잘 운영해
나가고 있었다.포장마차도 빈틈없이 잘 관리하고 있는듯해 보였다. 암만
봐도 녀석은 이바닥 체질인 것 같았다.
"왔어, 보쓰.."
"새끼는?"
"어딘가에서 또 말밥주고 있겠지 뭐.."
내가 말하는 새끼란 뚱땡이가 우리조직을 떠난후 실의에 빠져있는 비인기
남을 일컫는 거였다. 절친이 빠져나가자 허탈 했는지 매일 스크린 경마나
바카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떼웠다.노는 방법뿐만 아니라 실의에 빠진 모
습도 우리는 이미 어른들을 닮아 있었다. 그너저나 빨리 뚱땡이새끼 대타
로 인원을 모집해야지 자칫하다간 조직전체가 흔들릴 것 같았다.겉으로는
나나 땅꼬마도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하루하루가 불안불안했
다. 20살 되기전에 빨리 돈모아서 빌딩도 사고 카지노도 운영하고 번듯한
기업체도 운영해보고 싶었다. 비록 먼 훗날의 이야기지만 나에겐 그런 꿈
이 있었다.
"나와바린?"
"응 내가 아까 잠깐 돌았어.별 이상 없더라고."
다행히 우리포장마차를 기웃거리거나 건드리는 놈들은 없는 듯해 보였다.
그동안 뚱땡이 새끼때문에 관리가 좀 소홀했는데 별문제가 없어서 다행이
었다.
"아참 아까 김사장 왔다갔어.세금문제 때문에."
"뭐,뭔 세금."
"이번에 특소세 올랐다고 김 사장이 오까네(돈) 더 달래."
술은 원칙적으로 특별소비세의 적용을 받는다.술이 왜 사치스런 식품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막말로 우리같은 서민들이나 술로 애환을 달
래는 것이지 돈있는 새끼들이야 기집년들 끼고 빠구리치면서 뽕작대기 꽂
지 술먹냐고. 어린기집애들 꼬셔다가 엑스타시나 뭐 그런거 하지 술 마시
냐고.아 병신들이 왜 또주류세는 올려가지고 지랄들이냐. 김 사장은 내가
아직 나이가 어려 술집을 개업하지 못하기 때문에 명의를 잠깐 빌린 바지
사장이었다.
"어,언제 왔다갔어?"
"응 좀전에.지금 돈때문에 엄청 쪼들린다고 엄살이네."
(어련할까.돈 없다는 김 사장이란 새끼는 마누라 몰래 20살 차이도 더 나
는 어린 기집년하고 살림을 차렸다.분명 그년 구멍을 돈으로 쳐바르고 있
는것 같은데 이번에 아주 혼구녕을 내버릴 참이었다.김 사장 이 개새끼는
형편이 어려운게 절대로 아니었다. 괜히 돈 많으면서도 없다고 엄살을 부
리는 거였다. 그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었다.
"김사장 씨발넘이 주,죽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