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39새로운 빚
-1905년 어느날/ 울릉도
사내가 어머니와 함께 러시아 선장을 뒷마당에 묻은 다음날부터 일본군들은
섬주민들을 모아놓고 집집마다 수색을 펼쳤고 침몰한 돈스코이에 대해 심문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금화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섬주민
들은 오징어 배로 침몰해가는 러시아선원들을 단순히 구해준것 뿐이어서 나
올정보가 하나도 없었다.일본군들이 사라지자 사내는 남들의 눈을 피해 물고
기를 잡는척하며 얕은 바다에 침몰한 보트주위에 조각배를 띄워 놓고 자맥질
을 해가며 금화를 찾았다. 조용한 세월의 개가 보물을 금고처럼 지켜줄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사내는 직접 건져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침몰지점은 생각보다 깊었다. 만만하게 생각하고 잠수해 보았지만 까마득하
게 어두운바다밑엘 들어가려니 머리가 어지럽고 띵해서 깊이 잠수할수가 없
었다. 고민끝에 매일매일 잠수 깊이를 조금씩 늘려서 침몰한 배까지 간다는
작전을 세웠다.5m, 7m,10m, 13m..사내는 침몰한 보트가 바닷속 40m,당
시만 해도 인간한계를 넘어서는 깊이에 있다는 것을 이때는 전혀 모르고 있
었다.
"잡것은 또 금화인가 머시긴가 건지려 간겨?"
저녁쌀을 가마솥에 올린 김 노인은 자신의 아들이자 손녀, 은경의 아비인 사
내의 행방을 은경에게 묻고 있었다.
"아빠 저기 바다에 있는디. 어여 오라고 할까유?"
"아녀, 그냥 잠수병에나 걸려서 콱 뒤지라그려."
아들이 심히 걱정되던 노인은 그만 울컥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손녀 앞에
서 덜컥하고 말았다.영특한 어린 손녀는 그런 할매의 속내를 눈치채고 아비
를 찾으러 언덕으로 올라갔다.은경은 저기 멀리서 자맥질을 하고 있는 사내
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부지.. 할매가 밥먹으랴.."
그러나 남자는 조각배 위에서 일을 하느랴 정신이 팔려서 딸아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그가 눈치채지 못한게 불행히도 또 하나가 있었다.
울릉도 앞바다 약 4km 지점에서 해저지층이 일부붕괴되면서 생긴 5m높이
의 거대한 쓰나미가 남자를 향해 휘몰아 치고 있었던것이다.
"추화아악..스르르륵.."
쓰나미는 아주 조용하고 신속하게 사내와 그가 타고 있던 조각 배를 집어삼
켜버렸다. 이광경을 보고 있던 은경은 주먹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조인성
이냐. 입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비명소리가 너무 무서울 것 같단 생각이 들
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마치 동화속에서 나오는 토깽이처럼 거북이 등을 타고 폭발에서 구사일생으
로 살아난 성윤은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집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
나 왠일인지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잠시 주위를 살피며 몸을 숨겼다. 한
참동안 시간이 흐른뒤에도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그는 까치발로 조심조심
대문을 지나 방안으로 들어섰다.
온집안이 마구 어질러져 있었다.장농속은 마치 육식동물에게 포식당한 초식
동물의 내장처럼 깊게 파해쳐져 있었고 진주가 얼마 전 새로 달아놓은 핑크
색 커튼은 상어 이빨에 찢긴 대형어류의 부드러운 몸통처럼 갈가리 찢겨 바
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영혼을 비추던 거울은 거미줄 모양으로 미세한 균열
이 간 채 무참히 파괴되어 있었다.성윤은 순식간에 모든것을 잃고 말았다.보
물선에 대한 접근도와 친구들. 심지어 애인까지 잃은 처지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본능적으로 영식이라는 존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폭발은 물론이고
지금까지의 모든일은 영식이가 꾸민 일이었고 차근차근 잘 진행되어 지금에
이른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왠지 영식은 죽지 않고 살아서 그 역겨운 미소를
세상을 향해 날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진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진주를 납치할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은 분
명 영식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어떻게 살아 남은 걸까, 진정 살아
남아 있다면 그보다 더잔혹하고 악랄한 배후가 분명 있을텐데..그럼 난 이제
부터 무엇을 해야만 하는 걸까,어떻게하면 이위기를 빠져나갈 수가 있을까.)
성윤은 무참히 깨진 거울을 바라 보았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거미줄 모양으로 깨진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보였다.끈적거리는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짝 못하는 나비의 운명처럼 성
윤의 몸과 마음은 굳어 있었다.
-영식의 사무실
영식은 위진성을 만난후 족같은 기분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똘
마니들을 데리고 성윤의 집으로 곧장 쳐들어가 진주를 납치해왔다.사람일은
혹시 모르는거라 일단 진주를 보험용으로 데리고 있을작정이었다.팔이 뒤로
묶인 진주가 입에 재갈이 물린채 죽은듯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게 몸부림 치며 저항을 했는지 밧줄에 묶인 손목 부위가 벌
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영식은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탄후 진주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영식에게 진주
는 손에 쥘수없는 커피향 같았다.커피를 마실 수는 있어도 그 향기는 절대로
먹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감미로운 커피 향에 자신만의 여유와 행복감을 버
무려서 즐길뿐 그 본질에 결코 다가설 수는 없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식
은 성윤곁에 서있는 진주를 항상 바라만 보았지 애뜻한 감정을 함께 나눌 수
는 없었다.좋다는 것을 인식 할수는 있어도 그 감정을 표현하거나 그녀의 맘
을 차지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진주가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마치 나
사못에 망치질을 하고 있는것 만큼이나 공허하고 허탈했다.
그런 진주가 지금 영식의 앞에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마음만 먹
으면 자신의 성기를 꺼내 그녀의 식도 안쪽으로 깊숙히 밀어 넣어 뜨거운 비
명을 지르며 환호 할 수도 있었다.그녀 앞에서 변태스럽게 자위를 한 후 뿜어
져 나오는 누런 정액을 얼굴에 샴페인처럼 뿌려대며 기뻐 할 수 도 있었지만
그건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적어도 영식은 진주의 인격을 착취하고 싶지는
않았다.자신을 바라보는 진주의 눈빛이 바람처럼 차갑거나 얼음처럼 냉정하
다면 그 마져도 쓰디쓴 커피향처럼 발효시켜 은은하게 즐기고 싶었다.
(가질 수 있을 때 갖지 않는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인 것이다. 오직 그것
만이 진짜사랑이다.)
영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너무 로맨틱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캬..뜨거운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몸속을 따뜻
하게 데워주었다.그는 진주의 입가로 커피를 가져가려다가 멈추었다.진주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던 말던 그건 아무상관없었다. 왜냐면 자신이 숨쉬고 있
는한 그녀와 보이지 않게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었다.향기로만 전해지
는 사랑..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자세를 낮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진주를 바라보았다. 어여쁜 진주를 보
고 있노라니 자기도 모르게 보호본능이 마구 생겼다. 이렇게 예쁜 여자에게
납치,감금 따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중동 기름왕의 첫번째 부인 정도의 호사
를 누리지는 못할 망정 이꼴로 잡혀 있다니..당장에라도 진주를 놓아주고 싶
었지만 그러자면 영식자신은 그대가로 진주에게 몸을 요구할것이고 만약 진
주가 그것을 허락한다면 더 이상 진주를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소설쓰네..
아주 긴세월동안 영식의 몸을 지탱해 주고 있던 뼈가 썩어서 먼지가 될때 까
지만 딱 그 세월만큼만 진주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그녀와의 거래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쁜년 거래를 요구하다니..)
영식은 뜨거운 커피를 진주의 손목에 부었다. 몸부림 쳐대서 벗겨진 피부에
뜨거운 커피가 닿자 진주는 자지러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입은 막
혀 있었지만 눈빛으로 소리치고 있었다.너 또라이지?
(이 미친놈아 무슨짓이야?)
"사랑해. 그래서 어쩔 수 없어."
사랑이 지나치면 폭력이 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폭력에 대해서 잘못 이해
하고 있는 것이다.왜냐면 사랑과 폭력은 절대로 양립 할수 없는 것이니까.일
단은 그향기부터가 다르니까.
저녁이 되자 영식은 일부러 진주쪽은 쳐다 보지도 않고 입가에 개기름을 묻
혀가며 통닭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그는 책상위에 놓인 플라스틱통 뚜
껑을열었다.얕게 깔려있는 흙위엔 등이 푸르스름한 풍댕이가 몇마리 서식하
고 있었다. 흰색 애벌레도 몇마리 어정어정 기어다니고 있었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벌레들은 세월을 망각한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뭔가를,누군
가를 기다리는 듯한 영식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영식이 고기조각을 뜯어 통속에 던지자 풍댕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뜯어먹
었다. 맥주를 한모금 마신 영식이 눈을 세모로 뜬채 진주의 뒷통수를 야려보
았다.
"약을 안쳐먹으면 병든 닭이 따로 없네 시발년."
진주는 정신이 돌아왔지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채였다.박자가 어긋난 cd
플레이어의 음악을 듣느니 차라리 침묵이 더 나았다. 눈을 뜨고 사랑에 굶주
린 하등동물의 발작하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절대암흑이 나았다. 이를 악
물고 열려 있는 귀를 닫았다.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귀에 아무소리도 들리
지가 않았다.귀와 이빨사이에는 해부학자들이 아직 발견해내지 못한 연결근
육이 있는 듯했다. 한줄기 바람과 함께 성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 시
작했다.진주는 소리없는 성윤의 말에 귀를 기울인채 깊은꿈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덜커덩..때마침 영식의 사무실 문이 약간 열리며 놀랍게도 성윤의 큰눈이 이
리저리 안을 살피고 있었다. 먼저 상대를 눈치챈 것은 영식이었다.영식의 눈
에 성윤의 얼굴이 문틈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허억~"
성윤의 존재를 목격하자 흉하게 그을린 영식의 얼굴이 마치 귀신을 본듯 더
욱 기이하게 일그러졌다.막연하게나마 기다리고 있었지만 살아있는것을 확
인하니 놀랍기 그지 없었다. 사실 성윤이 죽었길바라고 있던 영식은 놀랍기
보단 허탈했다. 영식이 닭목을 집어 문을 향해 던졌다.쾅!
"목숨줄 졸라 긴 새끼, 들어와!"
영식의 육성을 들은 성윤도 놀라서 문을 열어 젖혔다.
"배가 폭발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
눈앞에 서 있는 영식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단듯 얼이 반쯤 빠져서 성윤이 영식
에게로 다가섰다.그러자 영식의 똘마니가 막아섰다.
"아아 내비둬.가까이 오라그래.사람인지 귀신인지 눈으로 확인좀 하게."
영식이 너스레를 떨며 가까이 다가오는 성윤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꺄 새끼 대단허네.거기서 살아 남다니 응?"
"나머진?"
"보면 몰라 다뒈지고 너하고 나만 살았지."
영식의 말에는 들은 채도 않고 주위를 살피던 성윤이 진주를 발견하고는 깜
짝 놀랐다.
"진주야!"
꿈속을 헤매이던 진주가 성윤의 목소릴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열라 반갑다는
건지, 졸라 구해달라는건지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서 이건 뭐 당췌 알아먹을
수가 없었지만 아무튼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봉긋하게 솟은 그녀의 가슴이
원을 그리며 관능적으로 흔들렸다. 영식의 눈이 예리하게 번뜩이며 성윤을
바라보았다.
"싸그리 타서 재가 되버리고 이렇게 너하고 나만 남았다. 안전기원제가 효과
만점이었네 그치? 자 그럼 이제 계산을 마치셔야지."
"2억 곧 해줄게."
영식이 어이없단 듯 되물었다.
" 2억? 새꺄, 껌가게 차릴라고 염라 불지옥에서 살아돌아 온줄 알아! 얼굴 튀
긴 거.원금,이자 다해서 20억!"
"뭐? 20억?"
영식은 놀라는 성윤을 향해 피식 웃으며 진주를 가리켰다.
"돈은 없을 테니 저물건은 담보."
"어디서 그런 엉터리같은 계산을.."
자신이 생각해도 지나친 고금리이자계산에 뜨끔한 영식이 중간에 성윤의 말
을 싹뚝 끊어 먹으며 말했다.
"엉터리? 사채이자를 무시하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성윤이었다.
(영식이 이자식은 내가 살아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허무맹랑한 금
액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식은 애초에 보물같은 건 관심에도 없었을
것이다.결국 돈스코이는 나를 죽이기 위한 덫에 불과한 것이었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성윤이 풍선처럼 부풀어있는 영식의 탐욕에 날카롭운
일침을 놓았다.
"너 원래 목적이 나였지?"
"뭐래 이 쉬발새끼가."
"그날, 그거 시한폭탄 맞지?"
전에 통통배 위에 세워져 있던 박스 하나가 쾅하고 넘어지자 경천이 신경질
적으로 발로 걷어차며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했던 말이 영식의 해골을
빠르게 스캔하며 지나갔다. 뜨끔해하며 영식이 말했다.
"미친놈 내가 돌았냐?난 폭탄에 대해선 완전 젬병인데 너 죽이려다 같이 뒈
질일 있냐?"
"보물선 그거다 새빨간 거짓말였어!나를 바다로 유인해서 죽인 후에 진주를
차지하려는 속셈이었어!"
"참나 별 미친. 보물선을 지눈으로 확인하고 저렇게 헛소릴 하네."
"진주한테 상속될 엄청난 재산. 그걸 노리는 거지?"
모든걸 들키고 나자 할말 없어진 영식이 폭력적으로 변했다.
"너도 약 쳐먹었냐? 다이나마이트에 구워 주랴?"
성윤이 다 알아봤단 듯한 표정으로 영식에게 말했다.
"창피해 할 필요없어. 나도 돈 때문에 여태 진주곁을 못 떠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