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37폭발한 통통배
-웨딩드레스 전문점 앞
양진주는 쇼윈도를 통해 보이는 웨딩드레스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결혼
할 의지를 성윤에게 내비추었으나 바로 거절당하고 말았다.그러나 그녀한테
는 오직 성윤뿐이었다. 운명적으로 만나 노골적으로 사랑에 빠지긴 했지만
성윤과 자신은 언제나 하나였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더 가까워지
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운명이었다.이건 운명을 넘
어 천명이었던 것이다. 남들은 당신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대로 당신을 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 진주가 성윤과의 사랑을 착각이 아닌 천명으로 생각한다
면 사람들도 마땅히 그렇게 여길것이다.진주는 자신도모르게 옷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들여놓고 있었다.
-안개 낀 새벽/울릉도 근해
모두가 간밤에 마신 술에 떡취해 선실에서 뒤엉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자고 있었다. "철썩철썩.."
성윤이 파도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잠이 덜깬 듯한 그
는 우습게도 구명튜브를 밀짚모자로 잘못알고 머리에 삐딱하게 썼다.튜브가
훌러덩 미끄러져 내려가 양어깨에 걸쳐졌다.
같은시각,도둑고양이처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배를 빠져나온 영식은 혼자
고무보트를 타고 오리처럼 노를 저어 성윤이 타고 있는 배로부터 점점 멀어
져가고 있었다. 그는 숨겨두었던 위성전화를 꺼내 위 진성에게 전화를 걸었
다. 꼭두새벽이라 그런지 한참 후에 전화를 받았다.
"뭐야,새벽부터 전활걸고 지랄이야!"
"돈스코이를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 위치가 어디야?"
"gps로 좌표 찍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잠시만요."
영식이 해상gps를 켜고 위치를 확인하고 있는사이 성윤이 휘청거리며 갑판
으로 나왔다.전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않는 그였지만 이젠 매를 하도
맞아서 그런지 몸이 골을대로 골아 있었던 것이다.
성윤의 바지는 축축히 젖어 있었다. 지난밤, 겨우 소쭈 두병에 콸라가 되어버
렸고 기가 약해 자다가 기침만 해도 오줌이 새어나올 나올지경이 되고만 것
이다. 이제 겨우 30 갓넘은 나이에 팬티에 오줌 마를 날이 없으니 쪽팔려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닐 지경이었다. 집에 가면 보약 한 채 지어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는 흐아암~기지개를 펴고 갑판 가장자리에 섰다. 다
시금 누수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방광을 비우기위해 지퍼를 여는 순간, 워낙
하체가 빈약한 성윤은 다리가 후달리는 바람에 발을 헛딛어 바다에 풍덩~빠
지고 말았다.
"어푸.. 사람 살려, 사람! 하체빈약한 사람 살려.."
성윤은 마침 머리에 걸려있던 구명튜브를 허리에 재빨리 끼워보지만 밀집모
자나 구명튜브나 빵구나 있는건 마찬가지 인듯 피식, 하며 금세 바람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에이 썅.."
미치다 빵구날것만 같은 성윤은 해류에 휩쓸려 배로부터 점점멀어지고 있었
다.기운이 너무 빠져있어서 헤엄칠 힘도 없었다. 근처 고무보트 위에서 gps
를 조작하고 있던 영식이 성윤을 발견했다. 잽싸게 손목시계를 보았다.
"AM 05시 47분"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저어 몰래 성윤의 뒤로 접근했다.한편 입만 동동
떠 있는 성윤은 다급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경천밖에 없었다. 그를
깨우기 위해 죽어라 고함을 질렀다.
"경천아 임마! 나와 봐!"
영식은 어느새 성윤의 뒤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가 날카로운 노의 끝를 이
용해 성윤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찰나, 찰칵,찰칵..영식의 시계가 정확히 '5시
50분'을 가리켰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두개골이 좌,우로 흔들리는 듯한 충격과 화염이 이어졌다. 순식
간에 배가 폭발해 뼈대만 남아 불길에 휩싸였다. 폭발의 영향으로 뒤집혀진
영식의 고무보트는 활활 불타고 있었다. 성윤도 폭발 때문에 생긴 열기와 충
격으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배안에 잘 모셔져 있던 야마모토의 소중한 서류가 마치 비극의 피날레를 장
식하듯 배주위에 후드득거리며 흩날리고 있었다. 대폭발 후 죽음과도 같은
고요가 어두운 새벽 바다를 한참동안이나 지배하고 있었다.
"끼룩끼룩"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바다는 아침을 맞았고 갈매기가 불에 탄 사
람고기를 먹느랴 폭발한 배주위를 날아 다니고 있었다. 그때 놀랍게도 바로
옆 물밑에서 갈라진 고무대야가 뽁,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무대야같은
거북의 몸통에서 머리가 쏙 튀어나왔다.자세히 보니 그것은 전에 성윤이 택
시태워 집에 보냈던 바로 그 바다거북이였다.
-1905년 5월29일 밤11시 / 울릉도 촛대바위 근처
돈스코이호에서 옮긴 백금을 보트에 싣고 도주중 일본해군에 격파되어 해안
가 모래바닥에 떠밀려와 쓰러져있던 돈스코이 선장은 밀려오는 파도에 머리
를 얻어맞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넋나간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저 멀
리 "돈스코이"라 쓰여진 배가 불길에 휩싸여 침몰하고 있었다. 불은 작은 해
변마을을 환하게 비출 정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방파제 앞에 서 있는 촛
대바위에 불그림자가 기이한 형태로 일렁거리고있었다.작은 보트는 이미 전
소되어 물속에 가라앉아 형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선장은 전에 제독이 준 금
화를 꺼내보았다. 쿨럭.. 그가 기침을 하자 팔과 가슴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
러나와 발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그는 무슨 다짐인듯 금화를 쥐고 있던
손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우직..
-울릉도 어느 민가/1905년 5월29일 한낮
울릉도의 전통가옥인 투막집 앞.투막집의 생김새를 잠시 살펴보면 통나무집
주위에 옥수수대로 촘촘히엮은 울타리를 처마 높이까지 바짝붙여 둘렀다.그
래서 얼핏보기엔 옥수수대로 만들어진 집처럼 우수꽝스러워 보이지만 사시
사철 바람이 많이 부는 울릉도에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가옥
형태였다.울릉도에서 가장 유망한 산업군이 있다면 그건 바로 풍력발전이겠
구나, 싶다할 정도로 바람이 거세고 잦았다.
투막집 안으로쑤시고 들어간 선장이 가마솥을 열어 감자귀신처럼 통째로 감
자를 입에 쑤셔넣었다.그렇게 서너개를 뚝딱 해치웠다. 그는 아궁이에서 숯
조각을 꺼내 그을음을 묻혀 종이에 촛대바위를 그렸다. 그리고 수평선을 쭈
욱 긋고 그 밑에 작은 보트를 그렸다.젖어서 잘그려지지 않자 입으로 종이를
후후 불어가며 엉터리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슥삭슥삭~"
보트 안에 작은 동그라미를 많이 그려 넣었다. 선장이 갑자기 가슴을 쥐고
심하게 쿨럭였다. 시커먼 핏덩어리가 목구멍에서 왈칵 쏟아져 나오면서 선
장은 바닥에 쓰러졌다. 점점 더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나 이게 진짜 내 입에서 나온건가? 이제 살긴 글렀군..)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선장은 신속히 마지막임무를 완수 해야겠
다고 결심했다. 그는 종이를 접어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선장은 네발로 기어
서 간신히 마루를 넘어 힘겹게 방문을 열어 젖혔다.
"썸바디 헬미."
절구에 마늘을 빻고 있던 김 노인이 소스라치게 놀라 절구통을 그에게 냅다
던져버렸다. 절구통이 마늘 냄새를 풍기며 미사일처럼 날아갔다. "퍼억!"
절구통이 정확히 선장의 마빡에 적중했다. 뚫린 마빡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쉭쉭나는 듯했다. 가뜩이나 숨이 깔딱거리는 판에 심한 충격이 가해지자 선
장은 찍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픽쓰러졌다.
"어무이 뭐 하슈~"
때마침 밭엘 다녀왔는지 아들의 옷과 발에 질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는 몸
이 편치않은 어머니 걱정에 맘이 급해 발도 씻지 않고 터벅터벅 방안으로 들
어섰다.효자났네.
"감기는 좀 어떠우? 김은 내가 다 맸우.”
그는 방안에 누워 김 노인에게 무언가를 전해 주려는 선장을 보자 눈을 동
그랗게 떴다. 얼핏보기엔 선장이 김노인에게 해코지를 하는것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이빠이 오해를 한 아들이 화들짝
놀라 지어미 살리겠다고 질흙이 잔뜩묻은 발로 다짜고짜 선장을내리찍었다.
"어딜넘봐 색햐..퍽!,퍽!,퍼벅..쿠헥."
아들의 억센 발에 온몸 여기저기를 허벌나게 빨래질을 당한 선장은 이제 저
승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온몸이 걸레가 되어 너덜너덜했고 허파에서는 피
시식하며 바람빠지는 소리가 났다. 여차하면 하직인사를 할 판이었다.
-잠시 후 방안
날아다니는 절구통에, 질흙발의 무한 내리찍기에, 피범벅이 된 선장을 사이
에 두고 아들과 김 노인이 마주 앉아있다.아들이 노인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다친사람헌티 절구통을 날리면 워척혀유."
"허파에 바람 빠지도록 내려찍으신게 누구시당가?"
김 노인이 젖은 천으로 선장의 입술을 닦자 정신이 돌아왔는지 쾡한 눈을 떠
두런두런 주위를 살폈다. 아들과 김노인을 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린 선
장은 가슴에 크게 난 상처를 한손으로 짚더니 쿨럭~기침을 했다. 피가 솟구
쳤다. 그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노인에게 주었다. 이때 주머니에서 종
잇조각이 떨어졌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김 노인이 번쩍이는 금속물질
을 받아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이 뭐시여? 금화아녀?"
"워디 줘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