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34 사라진 9시간
-울릉도
영식과 경천의 소란으로 3차 세계대전에 참전 할 뻔했던 보물탐사선은 선착
장에 조용히 정박시켜져 있었다.성윤일행은 먹을거리며 장비 등을 장만하려
울릉도 시내를 쏘다녔다.구멍난 밀짚모자를 쓴 성윤이 일행들과 장비가게로
들어가 잠수복을 고르고 있었다.갖가지 고급잠수장비들이 매대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크기별 품목별로 정리가 잘되어 있어서 깔끔한 가게주인의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 성윤이 파란색 잠수복을 쪼물딱거리고 있는 사이 옆에서 인
기척이 느껴졌다."캘룩캘룩.."
밥을 먹다 급하게 튀어나온 듯 주인은 사래가 뺨에 밥풀이 묻은 줄도 모른채
여유로운 미소로 맞았다. 겉으론 태연한척 보여도 오랜만에 떼손님이 가게안
에 들어오자 뛸듯이 기쁜 주인이었다.
"물건 볼 줄 아시네. 잠수 좀 하시나 봐요?"
잠수복을 만지작 거리던 성윤은 멋쩍은 듯 어영부영 대답을 했다.
"아니 그냥뭐 구경 좀 해보려고요."
"우리가게는 최고급 장비만 취급해요. 딱보면 아시겠지만서도."
주인의 뺨에 여전히 달라 붙어 있는 밥풀을 보고 어이없는 웃음만 나오는 경
천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럼 밥풀도 최고급이겠네."
가게 주인이 영문을 모르겠단 듯 되물었다.
"네? 무슨밀씀이신지.."
경천이 이렇게 가게 주인을 골려 먹고 있는 사이 영식은 성윤이 쓰고 있는 밀
짚모자를 툭치며 말했다.
"썩어 빠진 걸레는 벗어버리고 이참에 새것으로 하나 사시지."
성윤은 들은 척도 않고 물건 사는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그는 아까 그 파란
잠수복을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얼마요?"
가게주인은 결제 방식이 무척 궁금했다.
"현찰? 아님 카드?"
성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무시당한 영식이 버럭했다.
"글쎄, 모자부터 사라니까!"
옆에서 경천이 성윤을 편들고 나섰다.
"오래된거라 정들어서 못 버리겠나보지."
"새술은 새항아리에 담는 법이다. 모자가 너덜거려서 어디 일이나 제대로 하
겠냐고 니미랄."
영식의 말을 껌처럼 잘근잘근 씹어버린 성윤이 지폐뭉탱이를 주머니에서 꺼
내며 주인에게 쑈부를 걸었다.
"현찰로 갈껀데."
현찰로 가면 주인입장에선 카드수수료 4%를 떼이지 않아도 된다.주인은 자
신의 금전욕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주는 성윤에게 가게주인으로서 할 수 있
는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었다. 물론 밥풀은 그대로인 채였다.
"350인데 320만 받을게요.담에 또 오시라고."
"오케이 여기.."
물건 값을 치루고 장비를 건네받은 후 일행은 각자 물건을 나누어 들고 가게
를 나왔다.돈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 주인은 환한 미소로 문앞까지 배웅해 주
었다.경천이 히죽거리며 성윤을 보고 말했다.
"저 최고급 밥풀은 언제 떨어질꺼 같냐?이따가 비벼먹으라고 이마빡에 버터
라도 발라줄까."
영식이 경천을 향해 시니컬하게 말했다.
"우리 밥줄 떨어질 걱정이나 해 쨔샤. 잠수복은 왜 또 사는겨? 잠수복으로 미
역국 끓여 먹을래?"
영식의 어이없는 소리에 성윤은 차라리 잠수타고 싶었다.잔치상을 받아먹으
려면 때깔나는 숟가락이 필요하듯이 보물을 건지려면 첨단잠수복이 필요하
다. 앞개울에서 조개잡이 하는 것도 아니고 성윤이 보기에 영식은 정말 실무
에 있어서 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깝깝하고 멍청한 소릴했다.
"울릉도 저동 앞바다는 동해안 다른데에 비해 수심이 얕아."
"얕으면 보물찾기 편해서 좋지뭐. 암튼 그래서?"
영식의 추궁에 성윤이 금방 산 잠수복 가리키며 말했다.
"보기엔 다 똑같아 보여도 이건 수제품이야 여기 바다에 맞게 특별제작된.다
른 잠수복에 비해 피복이 얇아서 활동하기가 훨씬 편하지.여차하면 바로 들
어가 작업할 수가 있어."
영식이 약간 의심스러운 듯 성윤의 눈치를 살폈다. 경천은 성윤이 한말을 인
류학적 측면에서 재해석하며 거들었다.
"아아 그러니까 얇고 품질좋은 소재의 콘돔을 끼면 활동하기 편해서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고 느낌도 좋은것과 같은 이치네?난 개인적으로 딸기맛 콘돔이
제일 좋더라."
어처구니 없는 경천의 취향에 영식은 짜증을 냈다.
"딸기랑 너랑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넌 딸기 말고 딸딸이나 쳐라."
"저게 또 치질 걸린 똥구녕을 긁어 대네."
"아무튼 최성윤.. 너 여차하면 무덤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거 알지? 뭐 알아서
하시고."
여태 조용하던 까마귀가 뒷목을 잡으며 인상을 썼다.
"아씨 이상하게 아까부터 뒷골이 쑤시네. 나 약좀 사먹고 올께."
까마귀가 사라지자 경천이 성윤이 쓴 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모자 죽은 영석이꺼 맞지?"
성윤이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영석은 성윤의 친구였지만 경천의 친
구이기도 했다.너무 일찍 떠나간 친구가 그리운 경천이었다. 잠시 납처럼 무
거운 침묵이 흘렀다. 말을 잘못 꺼냈다 싶은 경천이 말머리를 잽싸게 다른곳
으로 돌렸다.
"까마귀 이새끼를 믿을 수 있을까?"
성윤이 결연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래도 걔덕분에 태풍에서도 살아남았어. 살아남은 것만 해도 아리가또지.
이미 한배를 탄거야 우린.그리고.. 까마귀는 니가 데려온 놈이잖아."
"아참 내가 데려온 물건이었지."
궁지에 몰린 경천이 저자세로 말했다.
"솔직히 나도 저놈 잘 몰라. 꼬추가 까만거 말고는. 근데 야비할 정도로 까맣
게 생겨먹지 않았냐? 꼭 누구같애.."
피부색이 심하게 거무퉤퉤한 영식이 경천의 말에 빈정이 상해 말했다.
"근데 왜 날 쳐다보는데?"
"누가 못생긴 너를 쳐다봤다고 지랄이야."
영식과 경천은 또 시비가 붙었다. 영식이 경천의 머리끄댕이를 붙잡고 늘어
졌다.
"넌 잘 생겼고?꼭 나무늘보가 주물러 놓은 고구마대가리처럼 생겨가지고."
경천은 자기가 생각해도 자신의 외모가 고구마를 심하게 닮았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적절한 비유라 비위가 상할 지경이었다. 경천은 보답으로 영식
에게 화학공격을 퍼부었다.
"너 이새끼 간에 베이킹 파우다 뿌렸냐? 간댕이가 부었냐고. 뒤지고 싶지 않
으면 좋은말 할때 겐세이 그만 걸어라."
일본을 싫어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일본 말을 애용하는 어리석은 경천에게
영식은 아프리카 국어 선생님처럼 타일렀다.누가 까만놈 아니랄까봐.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말이 있다.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라.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경천이 뿔난 아프리카 뿔닭처럼 쪼아댔다.
"골로 가려면 너혼자 가라..저런 건 또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저 닭대가리.어
줍지 않은 문자나 씹어뱉지 말고 내돈 갚을 궁리나 해."
영식은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 관심을 끊었다.그는 손우산을 만들어
해를 가리고 내륙쪽을 바라보았다.멀리 희미하게 새마을금고 건물이 보였다.
"울릉도 온 김에 새마을 금고나 털까?"
자나깨나 채권추심에 열을 올리는 경천이었다.
"새마음으로 내돈이나 갚아 쨔샤!"
경천의 지구력 있는 쪼아대기에 성윤은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킥킥킥.."
성윤도 영식에게 갚아야할 빚2억이 있다.이를 잊은채 킬킬대며 웃고 있는 성
윤을 보며 영식이 인상을 쓰며 죽일 듯이 노려 보았다.
"웃냐?웃음이 나오지 지금."
성윤은 영식의 갈굼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방광이 열릴락 말락 지랄발광을 하고 있
었다. 오르가즘이 아니었다. 구타 후유증이었다. 영식에게 얻어 맞은 자리가
또 쑤셔왔다. 아마도 몸이 골을대로 골아버린것 같았다.
"새꺄 내돈 언제 갚을 꺼냐고?"
경천이 영식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정말 드럽게 물고 늘어지네.더러워서 준다 줘."
"언제?"
"아 드러워서 진짜."
경천은 미소를 지으며 영식에게 말했다.
"돈이란게 원래 무진장 드러운건지 여태 몰랐냐?"
경천에게 돈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던 영식은 돈받을게 있는 성윤에게 화풀이
를 했다.셋은 이렇게 돈으로 사이좋게 영광굴비처럼 엮인 사이였던 것이다.
"최 성윤. 내돈 갚으려면 한달 안에 이 프로젝트 끝내는거야. 못하면 알지?"
"......"
만약 못해낸다면 비행기도 안탄 성윤의 몸이 공중분해 된다는것쯤은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알고 있을것이다. 성윤은 성능좋은 뽄드로 입술을 붙인 듯 아
무말도 하지못했다.다행히 이번엔 오줌을 지리지는 않았다.경천은 총알처럼
빠른 시간에 대해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니미럴. 이것저것 하다 보니 벌써 나흘이나 지났네."
-울릉도/저동 앞바다
구름 한점없는 맑은 날씨였다.바다위로 태양빛이 따글거리며 강하게 내리쬐
고 있었고 주위엔 고깃배가 드문드문 풍경처럼 떠 있고 멀리서 손톱 만한 촛
대바위가 마치 꿈처럼 서 있었다.성윤이 통통배의 탐지기 화면을 유심히 바
라보고 있다. 경천은 숙취에 더위까지 더해져서 아주 불쾌한 상태였다.
똥개 눈엔 만만한게 강아지라고 경천은 강아지처럼 웅크리고 있는 영식에게
괜한 시비를 걸었다.
"씨벨. 태풍가고 나니 졸라덥네. 마빡에 불난 거 같아. 어이 개영식.내 면상이
어때 보이냐? 많이 탔냐? 어때 보이냐고."
자신의 얼굴이 아무리 타도 영식의 까만 얼굴보다는 덜까맣다란걸 일깨워주
기 위해 경천이 도발을 해온 것이다.
"그래 우리 개아들. 어쩜그리 개하얗냐."
"병신새끼.."
영식의 반응이 재미 없어진 경천이 성윤에게 다가갔다.
"아 씨발에 땀나게 덥네. 거기 뭐 좀 있냐?"
수중음파탐지기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성윤은 부정의 고개를 가로로 힘차게
저으며 말했다.
"욕좀 안 하면 덜 더울텐데."
경천은 마치 욕할라고 한글을 배운사람처럼 욕을 목젖에 달고 살았다. 한글
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서 아시면 "씨방새야 입에 걸레 물었냐?" 소리를 하
실게 불보듯 뻔했다. 경천은 야마모토를 죽을듯 노려 보았다.
"뭔가 잘못됐어.난 처음부터 저 쪽빠리새끼가 맘에 안 들었어.(영식을 보며)
저 족같은 개는 더 싫고. 존나게 넓은 이 바다도 싫고."
지가 무슨 설치류도 아니면서 방방 설치고 다니는 경천의 꼬라지가 너무 꼴
보기 싫은 영식이 한방에 시집보내주었다.
"싫으면 시집가라 새끼야. 낄낄.."
폭발직전인 경천이 포효했다.
"돌-아-버-리-겠-어."
옆에서 돌거나 말거나 성윤은 침착한 어조로 서류를 들고 옆에 서 있는 야마
모토에게 지시했다.
"아까 그서류 다시 확인해봐."
1905년 5월28일, 오전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본군의 감시망에서 사라졌
던 나히모프호.그 사라진 9시간 동안의 행적을 찾는 중이었다. 안경을 고쳐
쓴 야마모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서류를 뒤적거렸다.
"발틱함대는 총38대 중에서 3척만 살아남았스무니다.전투함노 2척과 회계
함 1척이 살았스무니다. 대한해협으노 북동쪽으 2km지점까지노 왔스무니
다. 그후 행적이 묘연하무니다."
"음.. 2km지점이라."
성윤이 각도기와 컴파스로 위치를 열심히 체크중이다.
"제독이노 타고 있던 회계함므 나히모프호는 돈스꼬이를 만나 5천톤으 금화
를 모두 넘겨 줬으므니다. 돈스코이느 대한해협을 떠나 니뽄 해를 거쳐 울릉
도 앞바다까지 도망쳤으므니다."
야마모토의 어눌한 말을 한참동안 해석하던 경천이 또 버럭했다.
"뒈질래? 일본해(니뽄해)가 아니라 동해다. 이 갈아마실 새꺄."
야마모토는 믹서기에 들어갈 각오를 한듯 주둥이를 또 함부로 나불거렸다.
"니뽄해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결국으 돈스꼬이와 니뽄노제국 함대에 완
전히노 격파되었스무니다."
경천은 야마모토가 정말 싫은가보다. 또 시비를 걸었다.
"니뽄해?니뽕이다 새꺄. 쪽빠리가 이기니까 기분 좋냐 씨방새야."
보다 못한 영식이 나섰다.
"경천이 넌 시꺄 욕배우는 학원다녔냐? 입만 열면 욕이야."
"그래 씨발다리털털아. 대학을 못가서 4년제 욕학원 나왔다 어쩔래?"
"그학원에서 변기닦던 걸레를 입에 물고 사는 모양이군."
"한입 주랴 이 씨발탱아."
날이 더워 지칠대로 지쳐있는 영식은 더 이상 경천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잠
깐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영식은 요상한 점을 하나를 발견했다.
"어라, 가만있어봐. 그럼 남은 3척의 배는 어디로 샌 거야?"
경천이 다시 욕걸레로 분위기의 거실을 더럽혔다.
"임무완수했으니 왔던 길로 튀었겠지 씹새야."
옆에서 듣고 있던 야마모토가 상세히 설명했다.
"나히모프호와 전투함므 2척이 러시아로 되돌아갔다느 기록은 찾을 수 없스
무니다.아노..쓰시마해협에서 침모르 되었스무니다. 금화가 나히모프호에서
돈스꼬이에 옮겨진건 확실하무니다."
그때 마침 탐지기에서 경보음이 윙윙윙하며 울렸다. 바닷속에 뭔가 특별한것
이 있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