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31출항
-포항부둣가
작은 배가 정박해 있는 소항구 바로 앞에 웃고 있는 돼지머리가 상 한가운데
에 떡하니 놓여있고 '안전기원제'라 쓰인 글씨가 보였다. 영식, 성윤 순으로
술을 따라 놓고 절을 했다. 까마귀와 경천은 조금 뒤에서 이모습을 바라보며
똥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영식이 전통문화를 업신여기는 경천과 까마귀를
똥으로 쳐죽일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까마귀 너,이 똥같은 새꺄 배운전할 놈이 한 잔 안올려?"
"여태 잘 살아있는데 뭐. 그런거 안 하고도."
영식은 잘살고 있다는 까마귀의 대답에 도저히 동의 할 수 없었다.왜냐면 원
양어선을 타며 태평양을 누비던 까마귀는 현재 손바닥만한 통통배를 몰고있
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사는거냐? 아무리 봐도 니가 잘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리고 이건
엄연히 비지니스야.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경천도 까마귀를 위해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다 미신이야, 술 한잔 따라 올린다고 죽을 놈이 살겠냐고. 다 지 명대로 살다
가 미련없이 가는거지."
공과 사가 철저한 비지니스 맨, 영식이 발끈했다.
"하여튼 저놈의 입방정.닭 모가지를 확 비틀어버리든지 해야지 원."
경천은 겉만 비지니스맨 같고 속은 눈구렁이 같은 영식에게 계속해서 입방아
를 찧어댔다.
"근데 왠일로 너랑 안 어울리게 절이냐?"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다, 이런말 모르지?"
한심하단 표정으로 영식을 쓱 한번 째려본 경천은 까마귀와 시계를 번갈아가
며 쳐다 보았다.
"근데 야마모톤지 야마돌안지 이새끼는 왜여태 안와!"
"아씨 분명히 다 왔다고 했는데."
까마귀도 속이 타는지 항구 입구쪽을 애타게 바라 보았다. 그때 멀리서 야마
모토가 발에 모터를 달고 뛰어오고 있었다. 가방 2개와 서류로 가득 찬 종이
가방 세 개를 들고 나타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메마씨데(처음뵙겠습니다.)..헥헥.."
통통배 운전을 맡은 까마귀가 야마모토를 보며 혀를 끌끌찼다.
"종이배 타고 갈래? 웬 종이 보따리야? "
야먀모토가 어리숙한 한국말로 대답했다.
"와따시와. 증빙서류노가 많이 있어야 할거 같아서므니다."
"쪽빠리들은 시간약속 귀신같이 잘 지킨다는데 뭐야 넌. 이참에 물귀신 만들
어 줄까?앙?"
유난히 일본인을 싫어하는 경천이었다.영식도 야마모토가 그리 맘에 들지는
않는듯 쏘아 붙였다.
"종이는 물에 녹는다. 그 따위 증빙서류는 필요없다 알간?"
"의지노 흔들리 때마다 목구표구노 명확하게 해야 하무니다. 소래와 증거서
류노 필요하무니다."
야마모토의 말에 코가 막힌 경천은 비염에 걸린듯 찌뿌둥하게 말했다.
"보물이 종이 쪼가리 안에 있냐? 물속에 있지 등신아."
야마모토를 편드는 사람은 오로지 까마귀 뿐이었다.
"그러지들 마라. 지구상에서 야마모토만큼 돈스코이에 대해 잘 아는 놈은 아
마 없을 거다."
까마귀가 배에 오르며 말했다.
"자자,여러분 다들 아가리 닥치시고 악셀 밟아봅시다."
GPS를 켠 까마귀가 동해 넓은바다 방향으로 좌표를 꾹꾹 찍었다. 경적을 울
리며 배가 곧 출발했다.뿌아앙..
-동해 어딘가/통통배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비가 오려는지 성윤은 전에 영식에게 칼을 맞았
던 아랫배가 욱신거려왔다. 주먹으로 맞았던 자리도 방망이질 치듯 온통 쑤
셔왔다. 까마귀는 캔맥주를 홀짝이며 조종석에 서 있었다. 자동항해장치의
목표점이 울릉도 근처에서 깜빡이는걸 보면 목적지가 울릉도 인듯했다.갑판
위엔 성윤과 경천,영식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고 야마모토는 좀떨어진 곳
에서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띠리리.띠리리..”
성윤이 전화를 받았다.진주였다.기력을 어느정도 회복했는지 목소리가 또랑
또랑했다.
"오빠 어디야?"
"알아서 뭐해 여자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진주를 보고 많이 실망한 성윤이었다.이쁜여자가 망가지
니까 실망은 더욱 컸다. 더군다나 성윤 바로 자신 때문에 진주가 망가졌다고
생각하니 심한 죄책감이 몰려왔다.그래서 반가운 마음은 감추고 퉁명스럽게
대했다. 실망감과 자책감, 그 사이에서 성윤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
던 것이다.
"저기 아빠가 말이야.."
진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윤은 맥주를 내려놓으며 버럭했다.
"또 영감 찾아갔냐?그러지 말라고했지 내가. "
"우리 결혼문제 때문에."
성윤이 밀짚모자 패대기치며 오바액션을 취했다.
"결혼?누가 결혼한대?이 기집애가 증말."
역사적으로 봤을때 최고의 사랑엔 반드시 반대하는 이가 있었다. 성윤과 진
주의 사랑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목숨 걸고 반대하는 진주아빠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만 흘려보낼 순 없잖아. 오빠가 착실히 사는모습 보이면 아빠한
테도 허락받아 낼수 있을 거야."흑흑..
진주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담아서 성윤에게 진심으로 말했다.그러나 성윤
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먼지나게 마당만 쓸고 있었다.
"에이씨 출발하는 마당에 재수 없게 질질 짜고있어 여자가."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너 지갑 때문에 그러는거지? 나중에 다갚을 테니까 끊어!"
진주의 지갑을 통째로 들고나온 성윤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오히려 적반
하장격으로 화를 내며 씩씩댔다.영식이 닭목아지를 뜯어먹다가 어이없단 듯
힐끔 쳐다보았다.
"와 씨발놈. 존나 터프하네.약한 여자한테만.거 좀 잘 해주지 그러냐.다신 못
볼 수도 있는데."
경천이 어이없단듯 영식을 바라보았다.만약 성윤한테 뭔일이라도 생기는 날
엔 당장에 영식의 목을 닭모가지 자르 듯 잘라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경천이
었다. 아까부터 계속 닭목아지만 뜯고 먹고 있는 영식에게 경천이 말했다.
"너 닭모가지에 원한있냐?"
"목에 붙은 살이 얼마나 부드럽고 쫄깃거리는데.맛도 모르면서."
"닭모가지 펀드 들었냐? 비린내도 안 나냐고!"
"존나리 비려서 비올거 같다 새꺄. 어쩔래."
"콰콰쾅~"
영식과 경천의 잡소리에 닭모가지 신이 진노했는지 먹구름이 가득 끼어 있
던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그리고 곧 장대비가 쏟아지며 바람이 불었다.
"후두둑,후두둑.. 휘이잉~"
어느새 축축히 젖은 경천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영식을 원망하듯 말했다.
"이게다 저 닭모가지 귀신새끼 때문이야. 에이 재수 없어."
선실 안으로 모두 들어오자 까마귀가 말했다.
"여러분 태풍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인 겁니다.긴장타십쇼들."
조종석에 서있던 까마귀는 정신이 나간듯 해설자적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보
고 있었다.그는 손에 침을 퉤~뱉은 후 조정키를 움켜쥐며 잔뜩 긴장한 눈빛
으로 앞을 째려보았다.
"자자 손에 침뱉었습니다. 팔뚝에 힘들어갑니다."
금세 폭풍이 몰아치고 바다는 크게 파도치기 시작했다.다들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성윤은 노래를 헝얼거리며 험한 바다를 노려노았다. 불행을 예견하
는 사람은 불행을 두번 겪는다고 했던가. 성윤은 성난 비바람이 오히려 행진
곡처럼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성공으로 향하는 첫걸음처럼 경쾌하기만 했다.
변화무쌍하고 위태로운 바다, 그 한가운데를 작은 배가 위태롭게 출렁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