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30 매장물 특허신청
-울릉구청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영식은 저절로 웃음이 났다. 왜냐면 연결도 되
지 않은 피라니아의 전화를 리얼하게 연기해낸 자신이 너무자랑스러웠기 때
문이었다.
(성윤이 새끼하고 경천이 좆밥까지 깜빡 속아넘어갈 지경이니 액션되겠다,감
정 풍부하겠다 키가 5cm 만 더 컸어도 난 훌륭한 배우가 되었을텐데 말이야.
한국의 말론 브란도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이런 택도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영식이었다.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지나치게 공포에 떨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최성윤은 피라니아 얘기가 나오자마자 공포에 떠는 천하의 찌질이였던
것이다. 사실 피라니아한테 이 따위 허접한 전화를 했다간 영식도 결코 무사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날로 최신 가죽재킷이 되어 쇼윈도에 내 걸리
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피라니아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좀 전의 일은 성윤을 겁주기 위한 쇼였을뿐이었다.
영민한 성윤도 아마 그 전화가 쑈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는 돈스
코이에 뛰어들 핑계만 찾고 있었을 것이다. 울고는 싶은데 눈물이 나질 않아
후련하게 뺨따귀를 대신 때려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성윤 또한 누구못
지 않게 무시무시한 인물이란것을 영식은 잘 알고 있었다. 다들 날고 기는데
바보같은 경천만 속고 또 속았던 것이다. 하늘에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
었다.영식은 비맞은 똥개처럼 어슬렁어슬렁 울릉구청 접수창구를 향해 중얼
대며 다가갔다.
(병신들이 몰라서 그렇지 보물을 건져 올리려면, 해저 매장물 탐사 특허신청
부터 해야 한다고.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높은 접수창구가 똥자루만한 영식의 키를 더욱 더 작아보이게 했다.
"어휴 시팔 키 작은 사람은 접수도 못해먹겠네. 여기!"
씹다만 고구마처럼 생긴 여직원이 나타나 친절히 말했다.
"예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을 향해 억지미소를 지으며 고개숙여 인사를 하는 지극히 성의 없고 사
무적이고 기계적이기까지한 구청직원에게서는 아무런 인간적인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먹어봐야 맛도 없을 것 같았다. 이건 마치 마네킹을 상대하고 있
는 것처럼 느낌이 퍽퍽했다. 친절을 가장한 무성의함 보다는 차라리 불친절
한 편이 나을것 같았다. 특히 이렇게 못생긴 여자한테서는.
"도움은 당신얼굴이 먼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당황스러운 여직원은 못 알아들은척을 했다.
"네?"
"다 들었으면서 지랄은.."
"네?"
여직원은 이를 악물고 끝까지 모른척 했다. 아침부터 드럽게 못 생긴 여자한
테 욕이나 들어 먹으면 괜히 재수가 없을것 같아 영식은 이쯤해서 한발 접어
주기로 했다.
"저번에 접수한 ‘매장물 특허권’ 나왔나 좀 알아보려고."
"성함이.."
"최 성윤.접수번호 38번."
"잠시 만요."
"......"
"허가 났군요, 축하합니다."
"참 축하할 일 더럽게 없네."
-성윤의 집
허름한 주택 앞에 어울리지 않게 진주의 삐까뻔쩍 외제차가 주차되어있다.
드디어 진주가 돌아온 것이다.성윤이 살금살금 집안으로 기어 들어갔다.대
문을 지나 집안으로 이동했다. 진주는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있었다.약봉
지가 주위에 삐라처럼 하얗게 흩어져 있었다.
진주는 금단증상이 또 나타나는지 이따금씩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약물중독
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치료약을 과다복용해서 성윤의 출현에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않고 눈을 감은채 떡실신해 있었다.씻은지 몇달은 된
듯 머리가 한 덩어리로 떡져 있었고 그위를 똥파리들이 잠자리를 찾아 웽웽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진주에게서 예전의 진주같은 영롱함은 눈알을 빼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
다. 오랜만에 본 진주는 반갑기는 커녕 꼴도 보기 싫었다. 성윤은 이런 현
실이 서글펐다. 입안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먹으로 막아가며 조심스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책상 위에 있던 자신의 향수부터 챙겼다.그
리고 진주의 럭셔리한 비비안 퀘이트 레드백을 통째로 들고 튀어 나갔다.
잠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진주가 눈을 떴다.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글픈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랑이라는거 정말 어렵고도 힘든 일인것만 같다.내가 성윤오빠에게 저렇
빽을 삥뜯겨 주는게 과연 사랑일까? 오빠는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아
무렇지도 않게 내 백을 훔쳐 달아나는 걸까? 나는 오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용서하고 있는걸까?내가 아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감
정이 과연 사랑일까?나 자신에게 수없이 반복해 질문을 해 보지만 답은 좀
처럼 나오질 않아.. 끊임없이 퍼주기만 하는 바보같은 나.당연하게 이를 받
아들이고 이젠 받기를 넘어서 아예 들고 튀는 오빠.. 억울하단 생각보단 왠
지 슬프다.
사랑이란 속깊은 감정과 뜨거운 마음으로 아낌없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어느새 나는 계산을 하고 있어. 사랑은 장사가 아니다.무엇을 얼마에 사고
파는 교환행위가 아니야.. 내가 뭘 잠시 착각한 것이 분명해. 성윤 오빠는
아무 조건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날 구해 주었어. 뭘 바라고 그랬었던건 결
코 아닐거야. 그냥 사람이 물에 빠졌으니 구한 것이야.그래 맞아 나도 그래
야 해. 오빠가 내앞에 있으니 그냥 운명처럼 사랑해야 하는 거야.사랑에 대
해 자꾸 확인하고 검증받으려 할수록 고통과 슬픔이 생겨나는 것이야.오직
진실한 믿음만이 사랑을 베우고 지켜 나가는 유일한 길이야. 오빠는 또다른
나와 같아.")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다. 그러나 사랑을 알고나면
사랑할 힘을 잃게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사랑은 깊이 알수록 점점 더 멀
어지게 되는 변증법적 감성이란걸 진주는 아직 모르고 있는듯했다.
-다이버 전문상가 앞
낡은 밀짚모자를 쓰고 “전국 스쿠버 다이빙협회”라 써진 티셔츠를 입고 있
는 성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아직 진주에게서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그였다.죽도록 사랑했던 그녀였는데 이젠 꼴도 보기 싫어졌다. 사랑은 감히
변했고 누렇게 퇴색되어 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아냐 난 아직 진주를 사랑하고 있어.)
촉촉한 눈빛으로 산소통의 꼭지를 예전의 진주 쓰다듬듯 쓰다듬었다.멀
리서 지켜보고 있던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급기야 성
윤이 산소통을 부둥켜 앉고 낮게 흐느꼈다.
"이렇게 산소통만 봐도 산소같이 상큼한 진주가 떠오르는데 나는 지금 그
녀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왜 나는 점점 더 그녀에게 뻔뻔해 지고
있는 걸까? 진주가 모든 걸 다 용서해 줄거란 이 근거없는 믿음은 과연사
랑에서 비롯 된 걸까..그녀는 날 죽도록 사랑하고 있다.그렇다면 사랑이란
것은 상대의 감정을 이용해도 될만큼 부조리한 감정인 것일까?
그냥 듣기만해도 기분좋아지는 "사랑"이란 말은 오해에서 생긴 걸까?사랑
참 어렵다. 진실하지 못한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
잠시 후 평온을 찾은 그가 계산대 앞에 가서 진주의 빨간색 럭셔리 백을 내
려놓았다.툭,하고 생리대가 가방에서 떨어져 나왔다.성윤은 아무렇지도 않
은듯 카드를 내밀었다.
'산소통변태'를 산소통으로 내리칠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가게 여주인은 성
윤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 생리대를
코에다가 대고 킁킁 풀고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식의 사무실
잠수복, 산소통, 오리발, 물안경 등이 바닥에 가지런히 깔려 있고 성윤과 경
천이 일일이 물품을 확인하고 있다.경천이 산소통처럼 생긴 빨간색으로 된
원기둥 모양의 기계를 들어올리며 성윤에게 물었다.
"이게 뭐냐?"
"M.A.C. MAC이야."
"그게 뭔데? 맥도날드에서 파는 햄버거냐?"
무식이 햄버거가게에 까지 튀는 경천을 향해 성윤이 자세히 설명했다.
"맥은 말야, 바닷속의 철을 찾는기계야. 여기 이 센서헤드가 철이나 그밖의
금속 안에 들어있는 소량의 자기장이 발견될 경우 스크린에 나타나는거지."
성윤의 설명을 듣고 경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쿠나.야 그거 내꼬추에 들이대지 마라."
"왜? "
"쇠다마 박았거든."
"안 무겁냐?허리 안 아파?"
전화 벨이 울리자 고추에 쇠구슬을 이빠이 박아도 허리가 안 아픈 경천이 잽
싸게 받았다.배섭외를 맡은 까마귀였다.
"응 까마귀. 배는?"
"그게 말야 선주가 2백을 더 달라지 뭐야."
"뭔 소리야!나중에 이따구 개소리 할까봐 3천을 선불로 땡겨 주고 담배 값까
지 50더 얹어줬는데! "
"저번 태풍피해 때문에 요즘 빈 배가 없대."
"그래서 애초에 천만 원이나 더 주고 쑈부 친 거 아냐!"
경천이 듣기에 까마귀는 순전히 배주인의 입장에서만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개구라의 진한 향기 맡은 경천이 까마귀를 강하게 압박했다.
"똑바로 해.그 새끼 또 허튼소리하면 배때기에 바람 넣어서 울릉도에 띄운다
고 해. 아냐 이 새끼 전화 좀 바꿔봐!"
"독이 잔뜩 올랐구나 너.내가 다시 설득해 볼테니 진정해."
미친개처럼 날뛰던 경천이 살짝 진정된 목소리로 까마귀에게 다시 말했다.
"잘해라.너나 나나 돈 없어서 서러움 엄청받고 살았잖냐.이번에 크게 한건해
서 우리도 사장님소리 들어가며 살아보자.응?"
"사장님? 오케이 알았다."
"야 까마귀. 나 믿지?"
"바쁘다 쨔샤 끊어."
어설픈 구라가 눈치빠른 경천에게는 이빨도 안 들어가자 까마귀는 서둘러서
전화를 끊었다.까마귀의 구라쑈에 막을 내려 준 종결자 경천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옆에서 대충 상황을 파악한 성윤이 물었다.
"저 새끼 지금 보이스 피씽이지?"
"내가 속냐? 돈 몇 푼 떼어 먹을라고 별지랄을 다해요 아주 그냥."
"저런걸 믿고서 어디 일 맡길 수 있겠냐? 이번 거 큰 프로젝튼데."
"걱정 마 저놈 라이프 스타일이 원래 저래. 잔돈 뜯는 데는 귀신이지만 간이
작아서 큰돈엔 영 어두워."
성윤이 어이없단듯 피식웃었다.
"넌 그럼 간염걸려서 간이 그렇게 크냐?"
"새끼가 정말. 그래도 멍청한 까마귀가 난 좋더라."
"왜?"
"나보다 더 무식해서 위로가 되거든. 외롭지 않아. 하하하..그래도 쟤가 배하
나는 기가 막히게 몰쟌냐."
"어떻게 아는 사이야?"
"군대동기였는데 제대 후에 감방에서 만났지뭐.까마귀네 작은아버지가 대마
도에 사는데 이웃집 쪽빠리 새끼가 돈스코이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대."
"야마모토인가 그 놈?"
경천이 고개가 끊어져라 끄덕였다.
"응 야마모토. 야마모토 옆집살던 놈이 이름이 뭐랬더라.."
이즈미 마사히코..일본 골동품 전문수집가로서 일본왕실 도서관에서 보물선,
돈스코이의 존재를 문헌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한 인물이란걸 성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른척하며 딴소리만 했다.
"얼빵한 까마귀새끼에다가 쪽빠리까지. 깝깝허다."
"걱정마, 다 잘될거야."
성윤은 한숨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경천에게 물었다.
"근데 왜 까마귀냐?"
"애새끼가 온몸이 쌔까마 그냥.거시기까지."
"아주 가지가지들 하시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