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핸드가 165km의 구속이 나온다는게 나는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내가 보기에도 공이 좀 빠른것 같기는한데 세상에 공을 빠르게 던진다고
해서 누가 돈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금 대신 내주는 것도 아니다.
대체 그걸로 뭘 어쩌자는건지 감독은 전에 없이 상냥한 표정으로 날 대
해주었다.
"너 야구부 들어와라."
"손가락 싸인."
감독은 손가락싸인을 하려면 먼저 공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며
직구, 슬라이더, 커브를 던져보였다.투구폼이 한점 흐트러짐없이 물흐
르듯이 자연스럽게 한박자로 이뤄지고 있었다.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
는듯해 보였다. 하긴 뭐 암만 중학교 야구부 감독이라 할지라도 감독은
감독이니까. 개나 소나 너구리나 다 감독시켜주는건 아닐테니까.
"손싸인..지금 알려줘."
감독은 너구리처럼 피식피식 웃으며 마치 징징대며 우는 아이한테 사탕
먹여주는 식으로 손싸인에 대해 알려 주었다.
"잘봐..투수가 어깨를 이렇게 살짝돌려서 포수한테 팔뚝을 보이게 한단
말이야. 그리고 검지를 팔에다가 한번가져다가 대면 이게 직구야.알겠니?
중지를 대면 이건 슬라이더.그리고 약지를 대면 커브.알겠냐? 자이제 너
도 한번 따라서 해봐."
(뭐 간단하구만. 직구, 슬라이더 ,커브..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건데.
직구는 직선으로 날아가는 빠른 공이고 커브는 볼이 휘어서 뺑글뺑글 돌
면서 들어가지 아마. 슬라이더란 직구보다 좀 느리지만 각이 있고 커브
보다는 좀 빠르지만 회전각이 적은 거였군. 뭐 어렵지 않네.)
어느새 야구부 4번 타자가 프로들만 쓰는 고급 나무방망이를 붕붕 휘두
르며 타석에 들어섰다.
(어쭈시발 한번 해보자는 거야 뭐야.)
감독은 실전에서처럼 타자와 투수, 그리고 포수를 세팅했다. 나는 팔이
정면으로 향하게끔 어깨를 돌린 후 상체를 앞쪽으로 숙였다. 그리고 앞
에 앉아 있는 포수녀석에게 보이도록 검지를 팔의 윗부분 그러니까 알
통쪽에 가져다가 대었다. 톡톡..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있으니까 그냥
혼자서 던질 때와는 다르게 긴장감이 몰려왔다.더군다나 놈은 팀의 4번
타자 아닌가.마른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며 목구멍을 따갑게 자극했다.헛
웃음이 픽하고 흘러나왔다. 이까짓게 다 뭐라고.
포수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글러브를 벌렸다. 킥킥 재미있었다.아무말도
하지 않고 폭력도 사용하지않고 의사소통을 해보긴 처음이었다.나는 와
인드업 자세를 취하고 좌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마치 1,3루에 있는 주
자를 견제하듯이 말이다. 감독과 포수가 킥킥대며 웃었다.
(이게 지금 웃긴가? 난 심각한데.지금 나는 9회말 2아웃 스코아 7:6으
로 아슬아슬하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마무리투수로 나와 팀의 승리를
지켜내려고 조뺑이 치고 있는데 웃다니.정말 족같은 새끼들이군.)
감독은 나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사뭇 진지해졌다.
"최삼락, 지금이 무슨 상황이지?"
고새 야부리를 까대는 감독새끼가 뭔지 얄미웠다.
"9회말 2아웃.니미 7:6으로 이기고 있는데 씨발 주자는 1,3루.볼카운트
는 2스트락 2볼 씨발."
"음 좋아 시뮬레이션. 넌 내가 첫눈에 딱 알아봤다니까. 내가보기엔 넌
타고난 야구선수야 임마."
"선수?"
감독의 야부리는 이제 야산을 넘고 있었다. 목줄기에서 푸른 힘줄이 톡
톡 불거질정도로 쌩오바를 하면서 침을 튀기고 있었다.
"상대는 백전노장의 왼손 교타자야 임마 알어? 변화구를 지랄나게 잘쳐
서 변화구 킬러라고도 불리지. 특히 너같은 햇병아리들이 던지는 어설
픈 변화구를 받아쳐 그랜드슬램(만루홈런)을 7개나 만든 야구계의 하이
에나지. 잘해 임마 하이에나한테 살첨 다 뜯기지 않으려면.킥킥."
응원을 하는건지 갈구는 건지 헷갈리지만 암튼 감독의 개소리는 집어치
우더라도 지금상황은 우연챤게도 저번 야구중계 봤을때랑 비슷한 상황
이었다. 그땐 9회말 주자 1,2루 였는데 지금은 주자가 1,3루로 그때보
다 투수에겐 더 불리한 상황이었다.
(감독새끼도 그 경기를 본건가.씨팔 이거 점점 재미있어 지는데.)
자 이제 폭투하나만으로도 3루주자가 빽홈하여 동점상황이 벌어진다.만
약 그렇게되면 다 이겨놓은 게임을 놓치게 되고 팀은 우울한 밤을 맞게
될것이다.장난아니게 압박감이 밀려왔다. 손바닥에서 절절절 흐르는 땀
을 바지에 문질러 닦은 후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타석에 서 있는 중학생 애새끼를 산전수전 다겪은 늙은 하이에나로 은
유시켰다. 먹이에 굶주려 있는 이 새끼한테는 변화구는 상당히 위험하
다.놈의 다리를 내려다 보니 보폭이 넓고 상체가 뒤로 약간 빠져 있었
다. 이건 놈이 변화구를 노리고 있다는 증거다. 직구보다 느린 변화구
를 제대로 맞추려면 당연히 타점을 뒤에다가 두어야 한다. 이게 뭔말
이냐면 투수가 던진 변화구는 말그대로 포수글러브에 들어오기전까지
회전을 하며 많은 변화를 한다.따라서 이런 변화구를 치려면 되도록이
면 볼을 오랫동안 보고 변화가 다끝난 시점에서 쳐야한다는 말이다.볼
을 최대한 오랫동안 보고 타격타이밍을 한발 늦춰야만 안타 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 이 더럽고 추잡한 하이에나새끼야 넌 변화구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러나 어쩌냐 난 벌써 직구로 그립을 잡았단다.네놈 몸쪽 가까이에다
가 직구를 쳐박아 넣을테다. 그러면 예상치 못한 공에 놀란 네놈은 허
둥지둥 방망일 휘두를테지.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단다. 공은 벌써 아
슬아슬하게 안쪽 스트라잌 존에 걸치는 위치에 총알 같이 박혀버린 걸.
넌 삼진 아웃이야 씨뱅아. 게임 끝이라고 씹새야.)
"히얏...휙..퍽.."
이런시팔.안쪽 스트라이크는 커녕 볼은 터무니없이 낮은쪽으로 흘러가
하마터면 홈 베이스를 맞출뻔 했다. 신인급 투수들이 큰 게임에서 벌
일수 있는 전형적인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알면서도 말이다.이래서 이
게 야구가 보기보다 쉽지가 않은거군 조또.
포수가 움찔하며 글러브를 갖다대 간신히 잡아 냈다. 타자는 타석에서
벗어나 비웃으며 방망이를 허공에다 대고 붕붕 휘둘렀다. 열이 확올랐
다. 저런 삐리리 새끼한테 내가 웃음거리가 되다니.
"야야 이제 3-2 (2스트라잌 3볼)이야, 어쩔거냐 삼락이 너."
(아 이럴땐 어떻해야하는거지.타자새끼한테 달려가서 존나리까고 밟아
버릴까. 삼진아웃이 아니라 세상아웃을 시켜버릴까.아 약올라.)
심장이 쿵쾅거리며 협심증을 일으켰고 혈압은 미친듯이 쳐올라 고혈압
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이런걸 두고 승부욕이라고 하는가보지. 신체적
반응은 섹스욕이랑 비슷하긴한데 섹스욕구 보다는 승부욕이 휠씬 세련
된 욕구임에는 틀림없었다.왜냐면 승부욕은 섹스할때처럼 여자의 오래
된 질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니까.남자가 사정한 다음에 휴지로 닦아내
지 않아도 되니까. 허연 휴지가 지저분하게 좆대가리에 척척 달라붙는
일 절대 없을테니까.깔끔하니까.
감독도 이젠 웃음끼 싹가신 얼굴로 정색을 하고 있었고 포수놈은 걱
정되는지 나한테 달려왔다.
"야 괜찮아? 볼이 왜 전하고 달라?"
"씨발."
"좀 진정하고 모든건 마음먹기 달렸어. 잘해보자."
포수놈은 냉정하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씨벌놈 아무얘기나하며 좀더 이빨좀 까주고 가지 벌써 가버리냐. 넌
야구 끝나고 좀 남아야겠다.그땐 내가 대신 이빨까주지.주먹으로다가.)
"자자 플레이..플레이.."
감독이 다시 게임을 진행시켰다. 모든 걸 나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그
렇지 않아도 인생 외로운 놈인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다시 외로운 상황
을 만들어 놓으니까..좋았다 오히려.외로운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즐길 수 있었다.마치 연극이나 영화를 보듯 내자신을 관람 할 수 있었
다. 나와 닮기도하고 약간 다르기도 한 '거울상 이성질체'. 두개의 내
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때론 싸우기도 하고 협력 해 가기도 한다?
헐. 야구 재미있네 이거.
타석에 서 있는 하이에나는 다시 변화구를 기다리는 듯 전과같이 상체
가 뒤로 약간 빠져 있었다. 내가 오늘은 직구 콘트롤이 엉망인걸 알아
차리고는 다음볼도 변화구일꺼라 기대하고 있는것 같았다.놈은 변화각
이 시원찮은 나의 변화구를 밀어쳐서 좌중간을 꿰뚫는 장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팀이 다 이겨놓은 경기를 홀라당 뒤집어 놓고 저 새낀
족같이 경기를 가져갈 것이다. 하이에나처럼.
상체를 숙이고 옆구리를 돌려 포수에게 변화구 싸인을 넣었다.나의 싸
인을 받은 포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뭐야 까라면 까는거지 왜
말이 많어.볼은 내가 던지지 지가 던지나 씹새 죽을라고.
내가 막무가내로 와인드업을 하려고 하자 감독이 타임을 걸었다. 심판
도 없는데 허공에다가 대고. 미친감독새끼 같으니라고.
"야 최삼락이. 너 이리와봐!"
한참 재미있는데 중간에 끊어버리자 화가 났다.내가 학교에서 짱이 된
이후로는 이런 엿같은 경우는 단한번도 없었다. 그동안 누려오던 제왕
의 자리를 빼앗긴 것같은 박탈감이 몰려왔다.손싸인 좀 배울라고 별의
별 수모를 다 겪네 조또. 역시 세상엔 공짜란 없는건가.
"씨발 끄,끊고있어."
"야야야 지금 타자가 변화구를 노리는데 거기다가 대고 변화구를 던지
면 어떡하냐? 포수가 직구 싸인 보내는거 못 봤어?"
"봤어."
"근데 왜그래?"
"..."
"야구는 말야 투수혼자하는게 아냐. 니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나본데 야
구는 투수,포수,감독, 코치, 수비수 모두가 같이하는 거란 말이야."
(아아 그러니까 야구에 있어서 만큼은 감독 지가 대장이라 이말이지. 좋
아 까라면 까주지 까짓거. 그치만 오래 까지는 않을꺼다.. 9회말이고 마
지막 공이니까.)
"씨발."
감독은 나의 욕지거리를 ok싸인으로 알아 듣고 경기를 속개 시켰다.정말
이상한 종자였다.
"자자 플레이 어겐."
(내가 참 드러워서. 타자가 생각을 바꿔 타격폼을 직구로 바꾼거 같아서
변화구로 잡아낼 자신이 있어서 한번 해보려했더니 내의견을 깡그리 무
시하네.)
기억력이 뛰어난 내가 보기엔 분명 좀전과는 타자의 타격폼이 달라져 있
었다. 미세하지만 상체가 앞으로 약간 나와 있고 베트를 길게 잡고 있었
다. 대개 직구를 칠때는 방망이를 길게 잡는다.볼의 변화가 적고 오래볼
수 있어서 큰거 한방을 노리기 때문이다.반면 변화가 심한 커브를 받아
칠때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잘게 끊어친다.
(내가 보기엔 분명 타짜는 맘을 바꿨어. 근데 감독이 내의견을 무시해?
좋아 그럼 니들 소원대로 해주지.)
포수가 직구싸인을 다시 보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에 들어
갔다.설렁설렁 딴청을 피우던 타자가 몸을 바짝 웅크리며 타격자세를 취
했다. 일부러 태연한척 하며 바뀐 마음을 감추고 있는 듯해 보였다.놈의
타격폼은 여전히 직구를 노리고 있었다.
자신있는 변화구는 못던지게 하고 오늘따라 왠일인지 제구가 잘 되지않
는 직구를 던지란다.직구를 노리고 있는 타자한테 직구를 던지라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야구란 이런건가?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때론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할때도 있는건가?
(희생이라..참 좋음 말이지. 나도 한때는 아버지를 위해, 여동생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봤지만 결국 난 이렇게 되었다. 남들의
시뻘건 희생을 빨아 먹고사는 흡혈귀가 되어버렸다고.)
나는 내앞에서 방망이를 흔들고 있는 희생양을 향하여 볼을 던졌다.
"히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