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 -24 영식의 속마음
"양진주 그 기집애 별명이 뭔지 아냐고."
알듯말듯한 영식의 질문에 경천은 진주의 소중한 질에 함부로 손을 댔다.
"잘 줘?"
"아니."
"또 줘?"
"아니."
"뒤도 줘?"
"NO!"
새냇물처럼 얕은 인내심이 마르자 경천이 버럭했다.
"그냥 말해 씨바야."
"OK걸!"
"OK목장도 가지고 있냐! 오우 시발 존나 부자네."
"그게 아니고, 남자한테 꽂히면 달라는대로 다 퍼준다니까! 졸래 갑부인데
다가 물려받을 유산이 또 엄청나.시팔 강남에 빌딩이 있고 건설회사에 용인
에는 땅도 있다더라 3만평 짜리. 그거말고도 뭐가 또 있다더라.."
"와 그게 다 얼마냐."
"거기다가 외동딸이잖아.혼자 다 상속받겠지."
"와..니미.."
"얌마 입다물어 입찢어져."
영식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미 경천의 입은 걸레처럼 찢어져 너덜거렸다.
그가 아는것보다 진주네는 훨씬더 부자인것 같았다. 군침을 질질흘리며 맞
장구를 쳤다.
"진주 그년 얼굴도 졸라 이뻐. 설리닮았어 그치?"
"당근 빠따지.내가 알기론 그동안 성윤이 새끼가 진주한테 뜯어 먹은 돈만
해도 빌딩을 샀겠다. 쉬발놈."
영식의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진짜 진주가 목표인건지 아님 경천 자
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는건지 갑갑하기만 할 따름
이었다. 경천은 일단 영식의 기분에 맞춰 맞장구를 쳐가며 알아낼 기회를
더 엿보기로 했다.
"갑자기 나도 진주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하는데?"
"지렁이가 콘돔끼는 소리허고 자빠졌네. 쳐다나보냐 너 같은 놈을!"
"뭐 지렁이? 말하는 싸가지를 봐요. 씨방 새를 콱그냥 입에다가 똥을 한숟
가락 넣어버릴까부다."
영식은 서랍에서 진주사진을 꺼내 의미심장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썩은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성윤이 새끼만 사라져주면 크흐흐.."
경천은 부러워하는척하며 접대성 아부멘트를 날렸다.
"안 봐도 금강산이네. 시발놈 조컸다. 잘되면 나 잊지말아라."
"좆은 내가 원래부터 니보다 좀컸다아이가 일마야 캬캬. 야야 잡소리말고
진주 퇴원할때 되었다. 오늘 중으로 성윤이 테이블에 다시 불러 앉혀..나머
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경천이 보기에 잡소리는 지가 다해놓고선 쿠사리를 주는 영식이 영 맘에 안
들었지만 돈을 받기 위해 일단은 따라가 보기로 했다.
"오케바리"
"반드시 진주년을 손에 넣고 말겠어."
영식이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왜? 손만 잡으려고?"
"이런 미친새낄봤나..너 같으면 손만 주물럭거리겠냐?"
"아니.."
"거봐새꺄.남자맘은 다 똑같은 거야.크크 안그래?크크"
경천은 열심히 짱구를 굴려 지금까지의 대화내용을 대충 추스려 간을 쳐보
았다. 사막 한 가운데서 발견되는 오아시스처럼 애매하고 추상적인것 따위
엔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는 영식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영식이가 지금 자신이 원하는 걸 곧 가질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저런 미
칠 듯한 확신. 그리고 근거없는 자신감..
영식의 말마따나 분명 그의 뒤를 봐주고 있는 배후가 있을것이며 영식이 노
리고 있는 것은 진주의 돈만은 아닌 듯 했다. 없다고 말은 하지만 반짝이고
빛나는 그 무언가도 함께 노리고 있는것이 분명했다. 경천은 영식의 확고한
믿음의 실체를 더욱 알고 싶었다.배후가 도대체 누군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영식이 저 씨댕이 한테 분명 뭔가있어.엄청난..)
영식에게 예상치 않은 질문을 마구 해대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 확들었다.물론 근거는 없었다.촉이 그랬다.그래서 다시 이것저것 에둘러
묻기 시작했다.
"장기매매로도 먹고 살만하쟎냐? 왜 그렇게 아둥바둥거리냐."
"통나무장사도 옛날 말이지. 이젠 비젼없어. 경쟁도 쎄고 단속도 졸라 심하
고 인간들도 점점 거칠어지고."
[뒷골목에서 어둠의 습한 음기를 먹고 사는 이들의 세계에선 장기매매범들
을 일컬어 일명 "통나무 장사꾼"이라 부른다.]
"그래도 아직까진 할만 할텐데 죽는 소리냐 넌."
"사향산업이야. 진주한테 빌붙어서 종신보험하나 들어놔야지 알간?"
영식은 지금의 삶이 끔찍한 꿈이라고 여기며 살고있었다. 개만도 못한 양아
버지에게 모진 학대를 받았던 끔찍한 어린시절. 온갖 범죄와 폭력으로 점철
되어진 청소년시절. 그리고 내장을 꺼내 매매하는 적나라한 이 현실..
제 아무리 머리가 한바퀴 핑돌아 미친듯 살아가는 그였지만 도저히 맨정신
으로는 지금의 삶을 감당 할 수 없었다.멘탈붕괴 일보직전이었다.차라리 지
금의 이엿같은 현실이 꿈이라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과감히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령 그것이 살인이라고 해도 '이번일'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꿈에서처럼 살인을 하면 되는 거니까. 꿈에서 깨듯 죄책감도 사라져 버릴테
니까.꿈에 그리던 진주를 이용해 이젠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었다.경천의 쉰
듯한 목소리가 영식의 현재가 꿈이 아님을 알려왔다.
"진주가 종신보험이다? 보험사에서 지랄하지 않을까?"
"지랄을 하거나 말거나."
"종신보험이 될지 쥐약이 될지 그건 모르는 거다."
"너 내가 그렇게 우수워 보여?"
영식의 심사를 뒤틀리게 해보려는 경천이다.
"아니 졸라리 위대해 보여.세종대왕 같아 보여."
"미친놈.사람하난 제대로 볼 줄 아네."
경천은 황당함에 어금니를 깨물고 계속해서 영식을 떠보았다.
"그나저나 성윤이 호락호락 넘어 와 줄까?"
"배때기에 터널 뚫리게 생겼는데 지가 안하고 배겨!그나저나 애새끼가 폭삭
망가져서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영식의 말은 사실이었다.경천이 보기에도 성윤은 한심하기 이를데 없었다.
돈 많은 갑부 딸인 진주한테 빌붙어먹으면서부터 성윤은 보물사냥 따위는
이제 관심 밖인듯 보였다.
잘 생긴 얼굴로 진주의 허영을 만족시켜주는 대신, 사랑타령이나하며 그녀
에게 받은 경제적 원조를 고마운 줄 모르고 도박에 펑펑 탕진하고 있었다.2
억으로 일단은 엮어내긴 했지만 좀더 강한 족쇄가 필요할 것만 같았다.친구
지간이었지만 성윤은 참으로 한심한 위인이었던 것이다.
한편 영식의 여우같은 속마음은 경천과 전혀 달랐다. 자타공인 최고의 보물
사냥꾼인 최성윤이 돈스코이에 대해 이미 잘알고 있을 것이며 이를 결코 포
기하지 않을 것이란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한땐 서해앞바다에서 제일가는 보
물사냥꾼이었던, 하늘높은 줄 모르고 기세좋게 훨훨 날아다녔던 시대의 풍
운아가 그깟 기집애한테 기대살며 뭔놈의 썩어나갈 행복을 느끼겠는가. 사
랑도 한순간이지, 남자란 동물은 원래부터 사랑보단 꿈을 향해 나아가는 족
속들이다.전국의 내로라하는 박물관에 놓여있는 국보급 도자기의 상당수가
바로 최 성윤이 작업해 건져올린 것들이다. 성윤이 그 물건들을 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은가.
영식이 생각하기에 성윤은 쾌쾌하게 찌든현실을 상쾌하게 전복시켜줄 보물
같은 뭔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성윤은 유혹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게 분명했다. 영식은 애초부터 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성윤을
이용해 진짜 돈스코이를 노리고 있었다. 이러한 영식의 음흉한 속내를 알길
없는 경천이었다.
"너무 그러지마라.성윤이가 지금은 이래도 전엔 잘나가는 보물사냥꾼에 작
전 설계자였다.작년부터 애가 맛탱이 살짝 가긴했지만 그실력 어디가것냐."
"요즘 진주한테 뜯은 돈으로 경륜,경정,경마까지 쫓아다닌다며?경을 칠 새
끼 같으니."
"그런가보지 뭐. 그나저나 너 이번일 끝내면 내돈 다 갚는 거냐?"
"새끼 친구끼리 치사하게 말야!"
"1억 빌려간게 벌써 2년째야. 저번에도 과부하나 거덜 내놓고 빼돌린 돈,
그거 나한텐 한 푼도 안 왔잖아!"
"갚기 싫어 그랬냐! 일이 생각처럼 안 풀리니까 그랬지. 돈이 사람속이지 사
람이 돈 속이냐고. 좌우당간에 이번일만 잘 되면 내가 니돈부터 일빠로 갚아
줄께, 됐냐?"
경천은 병상에 누워계신 엄마 생각이 났다. 다혈질의 그는 발끈하고 나섰다.
"우리엄마 지금 많이 아프시다.시발 이번에도 모르쇠로 나오면 니 콩팥도 햇
빛 구경 할줄 알아."
"내 콩팥이 햇빛 구경할 정도면 니 해골은 아마 달구경하고 있을걸."
"이런 족같은 새끼가.시발 그럼 어디 한번 붙어볼까?"
흥분한 경천이 주먹을 불끈 쥐며 영식에게 다가섰다.영식도 만만치 않았다.
"이새끼가 날 졸로 보네.뒈질래?"
드라마'해를 품은 달'에서처럼 해와 달이 그렇게 애틋한 관계는 아닌것 같았
다. 적어도 영식과 경천에게 있어서 만큼은.
"졸로 안봐 좆으로 보지."
영식은 당장 이자리서 한판 떠서 결론을 내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
니었다. 그나마도 경천이 사라지면 성윤을 꼬셔내는데 큰 지장이 생길것 같
아 져주는척 하기로 했다.
"자자 기분풀고 한잔해.우리가 지금 싸울때냐?"
영식이 술잔을 들고 건배를 권하자 경천이 마지못해서 건배를 했다. 경천의
우람한 팔뚝에 푸른 힘줄이 돋았다. 영식 못지않게 근육질인 그는 힘쓰는데
있어서라면 둘째가라면 땅을 치며 서러워할 정도로 자신이 있었다.그래서인
지 둘은 항상 이렇게 티격태격 힘겨루기를 하곤했다. 경천이 한꺼번에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입술을 닦았다.
"캬 조또.."
"점심 아직 안 먹었지? 개고기 어때?"
불독처럼 쭈글쭈글 구겨져 있던 경천의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활짝 펴졌다.
"옥수동이 잘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