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22아빠의 반대
-영식의 사무실
성윤과 경천이 나가자 영식이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테이블 밑
을 발로 쾅하고 찼다.
"야이 썅년아 나와."
놀랍게도 그 안에서 유난히 목이 길고 입이 튀어나온 사내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는 오래 웅크리고 앉아 있어서인지 다리가 절여 제대로 서있지도
못했다.
'타짜'인 그는 영식의 지엄한 명을 받잡고 테이블 밑에서 판이 돌때마다 영
식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미리 작업해 놓은 화투패, 즉 탄을 건네 주었
었다. 그렇게 해서 성윤을 2억의 빚더미에 나앉게 만들었다. 그가 충실히
임무를 수행한 덕에 영식은 이제 성윤을 꽁꽁 옭아멜 수 있었다. 신기에 가
까운 타짜의 일급 탄제조기술을 쪽쪽 빨아먹고 난 영식은 이제와서 딴소릴
했다.
"2시간이면 끝날 일을 6시간이나 걸려서 해! 니가 그러고도 대한민국 최고
의 타짜야?"
순간적으로 "아니요, 타조에요."라고 대답할 뻔한 타짜는 너무 억울했다.원
채 잡기술에 능한 성윤이었기에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렸을 뿐 목표액 2억
은 무난히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당은 주셔야 합니다."
"일당같은 소리하네.안 다치고 고이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줄알어 이
새꺄! 알았냐?"
"그래도 이건 좀 아닌것 같은데.일당주세요 얼른."
괜히 돈주기 싫어서 영식이 개수작을 부린다는 걸 타짜는 잘 알고 있었다.
소문대로 개짠돌이였던 것이다 영식이란 놈은. 원래는 평판이 하도 안 좋
아서 다른데 가려고 했던건데 경천이란 사람이 하도 사정사정을 하는 바람
에 인정상 와봤는데 후회막심했다.대한민국 최고의 타짜를 데려다 쓰곤 십
원한장 안주다니.. 이거 소문나면 타짜로서의 인생도 끝이었다. 어떻게 해
서든 돈이 얼마가 되었던간에 일당을 받아야만 했다.
"아놔 이새끼이거 얼른 안 꺼져?"
"사람을 불렀으면 시발 돈을 줘야 할거 아냐.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냐고."
영식은 타짜의 객기에 분노가 치밀었다. 꼴에 타짜라고 깡을 부리네.돈 들
어갈데가 얼마나 많은데 너한테까지 돈을 주냐?퍽..퍼벅..영식은 돈대신 주
먹을 선물했다.
"야 끌어내!"
결국 타짜인지 타조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사내는 인껀비 한푼 못받고 영식
에게 두들겨 맞은 후 부하손에 의해 개끌리듯이 밖으로 끌어내졌다.영식은
나쁜기를 쫓아내고자 몸을 훌훌 털어내고 담배를 한대 피워물었다.
"똑똑.."
장기매매와 심부름 센타사업을 겸하고 있는 영식은 쓸개가 빠졌거나 부인
의 외도를 목격하고 복수심에 불타서 찾아온 손님을 기대하며 반갑게 맞았
다.왜 그러고 사니..
"누구세요? 들어오세요."
"일당을 주세요, 이 시발놈아."
좀전에 얻어터지고 끌려나간 타짜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일당 받으러.타짜
의 무시무시한 야수성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새끼이거 장난 아니네.너 오늘 잘 걸렸다. 퍽,퍼벅.퍽퍽퍽.. "
야수성이 넘치는 타짜는 야만스럽게 얻어맞고 다시 실려나갔다. 하도 맞아
서 먼지가 풀풀났다. 영식은 진공청소기를 꺼내먼지청소를 해야하나 고민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조용히 오후 스케줄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
이 들렸다.
"똑!똑!"
"네, 어서 들어오세요."
"내 일당 내놔, 이 양아치새꺄."
또 타짜였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었는데도 아랑곳하지않고 일당을 외쳐대
고 있었다. 정말 끈질긴놈이었다.꼬라지를 보아하니 부하들한테 엄청 얻어
맞아가며 겨우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의 뒤엔 부하들이 때리다가 지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악하악..형님 죄송합니다..하악.."
"내 일당 내놓으라고 .안 주면 안간다, 시발 양아치야."
-잠시후
"아악..내가 잘못했어..일당 안줘도 되..나 그냥 갈께.."
"조까 시발넘아 누구맘대로..양아치라며?양아치 맛좀 봐라 이시발것아."
"잘, 잘못했어요..제발 살려주세요..헝헝.."
"니가 화투는 잘 칠지 모르지만 눈치는 없는 놈이구나.. 나같은 놈한테 객기
를 다 부리고.야 잡어!허세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뤄줄테다."
"아악,살려줘..사람살려.."
영식은 결국 타짜의 한쪽 눈알을 파냈다. 눈알이 빠져 나오는 도중 타짜는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아파서가 아니라 눈알 한쪽이 없는 세상에서 대
한민국 타짜로 살아간다는게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진주네 집
오토바이 사고 후 일주일여만에 퇴원해 한남동 집에 도착한 진주는 오로지
성윤 생각뿐이었다.밥은 제때먹는지 잠은 잘자는지 뻘짓거리는 잘하고 있
는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사고당일, 핸드폰까지 잃어버리는 바람에 전화
개통부터 해야했으나 아직 발목이 낫지않아 여유치 않은 상황이었다. 약을
먹고 엄마 핸드폰으로 성윤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저녁이 되자 꽐라가 되도록 술을 마신 아빠가 진주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
며 난동을 부렸다. 점잖고 신사같은 아빠였는데 근래들어 보기드문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 놀다가 끝낼 일이지, 뭐 결혼? 참나.”
자다 일어난 진주는 밑도 끝도 없는 소란에 어이가 없었다.
"왜, 왜그러세요 갑자기."
자신의 귀한 딸이 개양아치 같은 성윤과 함께 사는게 영 못마땅했지만 딸을
위해 아무말 않고 그동안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엄마도 이번엔 옆에서
아빠를 거들고 나섰다.
"아빠가 이번에 큰일 치루잖니. 그러니 너도 이제 알아서 해야지."
"엄마까지 왜 이러세요 정말. 그 사람 사랑해요.아빠..허락해 주세요!"
흥분한 아빠는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소리를 질렀다.
"사랑? 방금 사랑이라고 했니? 너한텐 관심도 없고 한탕에만 빠져있는 잡
탕집 양아치 놈한테 사랑이라니. 제정신이냐? 제발 정신 좀 차려 이것아."
"저 지금 제 정신이거등요. 살면서 이렇게 정신이 맑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모든것이 다 명확하단 말이에요.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고요.바로
그 한사람 때문에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아직 이십대인 진주는 세상의 모든가치가 사랑에 맞
추어져 있었다. 이 나이때는 누구나 그렇 듯 오직 사랑만이 삶의 목적이요
의미였다. 더군다나 상류층 자식으로 태어나 뭐 하나 아쉬울 것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그녀에게 성윤과의 운명적인 사랑은 결코 돈으로 살 수도 훼손
시킬수도 없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유일한 것이었다. 정치판에서 이꼴저꼴
별별 꼬라지를다 보아온 닳고 닳은 아빠의 눈엔 그녀의 이런 행동이 치기어
린 응석처럼만 보였다.
"이것아 사랑은 한때야.지나고나면 아무것도 아냐.그러니 날탱이 같은 놈은
그만 잊거라!"
"지금껏 아빠가 시키는데로 다 했잖아요. 그래서 정치학과에도 입학했고."
"시끄럽다."
"흑흑..성윤씨 이제 착실하게 살기로 저와 약속했어요."
"내년에 대선 치뤄야한다.이건 국회의원 출마하고는 차원이 달라.약점 잡힐
일 생기면 곤란하다!"
결국 아빠의 본심이 드러났다. 딸에 대한 사랑보다는 미래보다는 자신의 정
치 행보에 걸림돌이 될까봐서 둘의 결혼을 극구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진주는 야마가 확돌아 버렸다.성질하곤.
"사랑하는게 약점 잡히는 일인가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니?"
딸이 안스러운지 엄마가 막아섰다.
"당신도 그만하세요. 이제 다 알아들었을테니."
진주는 흐느끼며 아빠한테 애원하듯 말했다.
"그 사람은 저를 2번씩이나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구요. 제발 결혼하게 해
주세요."
"이미 그 은혜는 돈으로 몇십만배 갚지 않았니?네가 자꾸 이런 식이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법원에 있는 작은아버지한테 말해서 녀석을 매장시켜 버릴테다!"
법원에는 사람을 산채로 매장시켜버리는 최첨단장치가 있는지 진주아빠는
아주 자신있게 말하고 있었다.
"그만!권력을 그런 식으로 남용하지 마세요! "
"꼴보기 싫다! 내 집에서 나가!"
진주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집 밖으로 뛰쳐 나가다 문에 걸려 넘어지고 말
았다.오토바이 사고로 다쳤던 다리를 또 다쳤는지 일어나질 못하고 안절부
절하자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갔다.아빠는 속으로 딸이 걱정 되었
지만 겉으론 냉정했다.독헌 놈.
"못난것.."
-성윤의집
성윤은 일주일동안 전화도 받지않고 아무연락도 없는 진주가 이젠 원망스
럽기까지 했다. 진주만 있으면 2억 정도는 말그대로 껌값이었다.그러나 그
건 어디까지나 진주가 옆에 달라붙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었다.이젠 영
식과 약속한 일주일도 다 되었고 칼맞아죽을 일만 남고 말았다.
울컥한 성윤이 라면 젓가락을 집어 던지자 옆에서 아무 생각없이 라면을 먹
고 있던 경천이 놀라 쳐다보았다. 갑갑한 성윤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였다.
"진주차 급매물로 내놔봐야 고작 5천이다 너.요즘 외제차에서 불이 하도 많
이 나서 시세가 별로야."
"그럼어떡해. 그거라도 일단 틀어막아봐야지."
경천이 물로 입가심을 하고 자세를 바꿔앉았다. 그는 꾹눌려있던 자신의 거
시기를 천박하게 바지위로 잡아빼며 말했다.
"진주는 아직 소식도 없잖아.그나마 주인도 없는 차라 장물로 넘겨봐야 3천
도 어려워."
"4천까진 될꺼야. 내가 아는데가 있어."
"나머진? 무신용에 무주택자에 무대책자야 넌."
성질같아서는 경천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성윤은 참았다.
"아 시발, 너까지 왜 이래진짜."
"그럼 어쩔건데? 그러지 말고 내말 좀 들어봐. 아 확실한 껀수가 있다니까.
까마귀새끼가 그러는데 말이야.."
달랑 둘만 있는 방안에서 경천은 마치 중요한 얘기라도 하려는 듯 성윤의 귀
에다 대고 속삭였다.성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천이 하는 말을 듣고 눈
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계산하고 있었다.
"야마모토..속닥속닥..돈스코이가..마사히코.."
경천의 속삭임에 성윤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뭐야 야마모토? 돈스코이? 마사히코? 그럼그게 사실이었던 거야?"
"내가 너한테 거짓말하겠냐?"
경천의 설득은 위험에 처한 친구 성윤을 살리기 위한 것인 만큼 진솔하고도
조심스러웠다. 악랄하기 짝이 없는 영식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애
쓰는 경천에게서 성윤은 뜨거운 우정을 느꼈다.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갚아
야 할 빚이라 여겼다. 곧 다가올 경천의 무서운 계략을 눈치 채기 전까진 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