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21진주의 자살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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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스코이-21진주의 자살미수
-성윤의 집
영식에게 실컷 빨린 성윤은 힘없이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털썩주저앉았
다.뒤 따라온 경천도 옆에 쪼그려 앉았다.슬슬 눈치를 보고 있던 경천이 성
윤을 비난했다.
"넌 마누라까지 팔아 쳐먹냐?"
"누가 마누라야, 결혼식도 안 했는데."
마누라란 성윤의 현재 동거녀임과 동시에 좀전의 사진속 주인공이기도한
진주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사실혼이란게 있잖아. 떡치고 같이 사니까 마누라지."
"떡치며 산다고 다 마누라냐?"
"그럼 마누라가 아니면 뭐 두더지냐? 진주는 연락도 없고 이제 어쩔거야.
그 많은 영식이 빚을 어떻게 갚을 꺼냐고."
성윤은 황홀했던 진주와의 첫날밤이 생각났다. 소주를 먹기전 마셨던 음료
가 사실은 '물뽕'이었다.그 사실을 모르고 원샷했던 성윤과 진주였다. 다행
히 성윤은 술을 너무 마셔 오바이트를 해버렸지만 술이 겁나게 센 진주는
그날 이후 그 음료를 계속 마시게 되었다.일주일 동안 한 박스의 음료를 모
두 먹고 나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중독자가 되어버렸다.선천적으로
향정신성 약물에 중독되기 쉬운 취약한 신경계를 가지고 태어난 진주는 아
니었다. 예전 외롭고 힘든 미국유학시절, 호기심에 딱 한번 손댄 마약에 그
만 중독되어버렸다. 마약의 왕국, 미쿡은 손만 벌리면 언제 어디서든지 쉽
게 마약을 구할 수가 있는 망할 놈의 나라였던 것이다.공부하러 갔다가 왠
걸 마약성분에 대한 공부만 실컷하며 쾌락에 젖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렇
게 살았었다. 삶의 비애를 느낀 그녀는 죽으려고 결심한 후 자살의 명소인
금문교가 있는 센프란시스코를 향해 비행기 타고 날아갔다.
1937년에 완공된 높이 67미터의 금문교는 멀리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고
있었다.안개가 자욱한 다리 교각 아래에는 투신자살하려고 바다로 무작정
뛰어드는 사람들을 하도 많이 잡아먹어서 살탱이가 피둥피둥 찐 상어떼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실패하지 않고 죽기에 딱좋았다.
금문교에선 저 멀리 수평선 끝에 태평양이 한눈에 보였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태평양을 일컬어 "기억이 멈추는 곳"
이라 불렀다. 끝이 보이지않는 에메랄드 빛의 넓은 바다 한 가운데 놓이면
하늘이 바다같고 바다가 하늘같은 착각속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해서 생
각의 중력을 잊고 자연과 하나되어 인간이라는 명제는 일시에 사라져 버린
다.첨에 그랬던것처럼 완전한 무의 상태로 돌아가버리는 것이다. 기억과 시
간이 순간 멈춰버리는 것이다.
"휘리리리릭.."
저멀리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다리위에 선 진주의 이마를 부드럽
게 감쌌다.촉촉하고도 시원한 감촉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시름을 말끔히 씻
어주는 것만 같았다. 역시 금문교는 '영혼의 다리'라 불릴만 했다. 그말이 전
혀 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그게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도 걷고 싶어 할만큼
아름다운 다리란 말이 아니었다.4년간의 공사기간동안 난해한 설계와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밀어 붙인 결과 건설노동자인 중국인이 40명이나 희
생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한마디로 귀신이 득실거리는 다리란
뜻이다. 이렇게 윗동네엔 중국귀신이 득실거려 아랫동네엔 상어가 득실거
려 이건뭐 자살하러 온 사람한테는 뒈지니랜드가 따로 없었다.
진주는 저멀리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았다.조용히 눈을 감고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지려던 순간 항상 머리속을 맴돌고 있던 얼굴하나가 문득 떠
올랐다.군산앞바다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던 바로 그사람. 진주는 눈부신 최
성윤이 어쩌면 이번에도 빛의 무지개를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와 이 악의 구
렁텅이에서 구해줄 것만 같았다.
미수에 그친 자살 사건이후 국내에 귀국한 그녀는 완전히 약을 끊었다. 성
윤 오빠 만날 생각을 하면 약 생각이 나질 않았다.물론 중간중간에 많은 유
혹들이 있었지만 약은 그만 잊고 전화번호와 주소를 가지고 성윤을 찾는데
에만 열중하기로 했던것이다. 그렇게 잠재되어있던 중독증상이 아이러닉하
게도 애써 찾은 성윤에 의해 재가동 되버린 것이다.
진주는 약없이는 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도무지 헤어날 방
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병원에 갔다간 마약 중독자로 몰려 가족에게도
피해를 줄 것같아 마음놓고 입원을 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게다가 그녀의
아빠는 거물급 정치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천국 나이트 웨이터에게 물뽕을 구해 차츰 양을 줄여가며 끊
어보려 노력했다.그러다보니 웬걸,또 중독의 길로 들어서고 급기야 다시 마
약에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작심하고 한 일은 아녔지만 성윤은 결과적으로는 진주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고 말았다.마약중독 고위험군에 드는 그녀에게 물뽕을 먹였으니..그러고
도 모자라 저만 살겠다고 진주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수 있는 사진을 영식
에게 넘겨버렸으니 자신은 냄새나는 영식의 가운데 토막 보다도 못한 놈이
라 여기며 성윤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뒤집어 놓은 모래시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이
좀 전까지 무슨짓을 저질렀는지 돌이켜 보는 듯했다. 아프지도 않는 상상의
햄머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절규했다.
"내가 미친 새끼야, 미친 새끼!"
"맞아 미친새끼."
불 난 곳에 유사휘발유를 들이붓는 경천이었다.
"넌 지금 그게 친구한테 할소리냐 인마."
"그러게 말릴때 그만 뒀어야지. 영식이 새끼가 골로 보낸 해골이 어디 한 두
개냐? 그놈의 성질머리라면 정말로 니 해골도 햇빛 볼 날 머지않은 것 같다.
쯧쯧.."
경천의 말을 듣고 있자니 해골뼈가 햇볕에 닿으면 허연거품이 생기면서 치
지직,소리를 내며 타버릴것만 같았다.인간의 해골 뼈는 무슨일이 있더라도
절대 햇볕에 노출되어서는 안 될것만 같았다. 성윤은 곧 햇빛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를 자신의 해골을 붙잡고 절규했다.
"아이고 해골이야."
"칼 맞은데는 괜찮냐?"
"응 괜찮아.다행히 뼈는 안보여."
"우리그럼 뼈해장국이나 먹으러 갈까?"
"지금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너는."
경천이 성윤에게 담배를 물려주며 자신도 하나 꺼내 물었다. 성윤에게 불을
붙여주고 담배를 한 모금 맛있게 빤 후 입술을 움직여 연기를 위아래로 거칠
게 내뿜었다. 경천은 싸구려 동정심보다는 친구가 지금의 난관을 극복해 나
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혹시 돈스코이라고 들어봤냐?"
성윤은 오늘따라 유난히 맛이 쓴 담배를 한모금 더 빨며 말했다.
"보물선 따위 이제 싫어!"
"그게 보물선인지 어떻게 알았냐?어디서 들어는 봤나보네?"
"내가 왕년에 유명한 보물사냥꾼이었던 거 몰라?"
"지금은? 유명한 좆밥?"
"그래 나 좆밥이다.어쩔래?"
"2억을 일주일 안에 무슨 수로 갚을 거냔말야. 좆 뽑아서 갚을래?"
순간 진주의 멋진 차가 떠올랐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차는 남아서 값어치를
할 수 있을것 같으니 천만 다행이었다.
"일단 진주 차부터 팔아서.."
"에라이 모지리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