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20백금괴
공포에 흠뻑젖은 성윤은 마치 탈수하듯 자기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지렸
다. 영식이 얼굴을 찡그리며 부하에게 말했다.
"뭐해? 똥까지 지리기 전에 어서 숨통 끊어놓지 않고!"
오줌싸게 어린이를 위한 약은 있어도 오줌싸게 어른을 위한 약은 왜 없는
걸까, 성윤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한탄하고 있을때 영식의 부하가 칼을
높이 쳐들었다. 섬뜩한 식칼이 신속한 자금회수를 독촉하고 있었다. 당장
돈을 내 놓지 않으면 목이 달아날 판국이었다. 꿈만 같았던 진주와의 추억
이 주마등처럼 성윤의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헐거웠던 지퍼와 핑크빛 브라, 점점 자라고 있던 C컵의 가슴, 키스와 따귀의
무한 반복, 운명같은 재회.그리고 이어진 행복한 동거생활..
(여기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진주고 나발이고 일단 나부터 살아야겠다,
미안하다 진주야..)
칼이 자신의 목에 박히기 전에 성윤이 소리쳤다.
"자, 잠깐!"
"뭐 임마."
성윤이 주머니 속에서 사진을 꺼내 영식에게 건넸다. 사진 속에는 한 여자
가 침대에 널브러져 있고 옆에는 여러 개의 빈주사기가 어질러져 있었다.
마약을 투약하고 난 현장 그대로였다. 경찰출동해야 할 상황이었다. 바로
15년형 때려맞고 사회봉사 명령 30000시간을 때려 받을 만한 난잡스러운
광경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사진속 주인공을 협박해 돈 뜯어내기에도 딱 좋
은 아이템이었다.
사진을 건네 받은 영식이 미소를 활짝 지었다.지금까지 오줌냄새,입냄새 맡
아가며 지랄 떤 보람이 있었다.
"오호, 꽤 쓸만한 물건이군."
만족한 영식은 누가 볼까봐서 사진을 냉큼 서랍 속에 넣었다.성윤은 비굴하
게 영식에게서 목숨을 구걸했다.
"제발 한번만 살려줘."
"좋아, 까짓거 내가 성의 봐서 일주일 준다. 그안에 2억 못 만들어오면 어떻
게 되는지 알지?"
영식이 칼로 상상의 배를 후비는 시늉을 했다.성윤은 자신의 배에서 곱창과
순대 10인분이 조각조각 잘라져 사방으로 튀는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영식
의 칼질은 보통 칼질이 아니었던 것이다.혼이 실린 칼질이었던 것이다.잠시
풀어졌던 공포의 올가미가 다시 성윤의 목을 조여왔다.
"아 알았어.내가 최선을 다해서 구해볼께."
"구해볼께라니..뒤지고 싶지 않으면 최선을 다해서 응..내가 이돈을 못 구해
오면 머리통이 땅에 떨어진다, 라는 뭐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말야 응. 근데
이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네."
영식의 불호령에 성윤이 질겁을 했다.
"아냐아냐 정신 똑바로 차렸어. 돈 구하러 그만 나가볼께."
성윤이 다급히 출입문을 열자 찬란한 아침햇살이 그의 이마위로 쏟아져
내렸다. 빛이 빚으로 변하는 어처구니 없는 순간이었다.그는 현실에 닥친
엄청난 채무에 다이빙하듯 문을 나섰다. 영식이 그의 뒤에다 대고 요살맞
을 소리를했다.
"일주일이야, 일초 늦을때마다 손가락 하나다."
여태 옆에서 구경만하던 경천이 주책없이 영식의 서랍을 열어 아까 그 사
진을 꺼내보았다.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그가 소리쳤다.
"어! 이거 양진주 아냐?"
-1905년5월27일 오후8시 / 동해 어느 지점
대마도를 지나 동해로 접어든 나히모프 호는 전보다 더 맛있게 지글지글
불타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허겁지겁 불을 끄느랴 적의 전함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적이다!포를 장전하라!"
제독이 서둘러 공격명령을 내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목전까지 다가온
일본함대가 포사격을 개시했다. 쉬웅쉬웅..콰콰쾅..
어떻게 쏘는 족족 명중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이건 명사수가 따로
없었다. 일본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의 해군이라해도 손색이 없을
듯 했다. 제독이 짜르황제에게 처음 발진명령을 받았을때만 해도 영국과
의 해전에서 승리한 후 다음해전을 위해 간식꺼리로 여기고 맘편히 왔는
데 막상 부딪혀보니 편안히 눕게생겼다.무덤에..이놈의 일본놈들은 전력
이 장난 아니었다.포문도 러시아는 110 미리 였는데 요놈의 일본놈들 꺼
는 150미리나 되었다. 포가 큰만큼 사정거리도 길고 폭발력도 강한건 당
근지사. 당근처럼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쪽빠리놈들은 승리를 직감하
고 신이 나서 미친듯이 포를 쏘았다. 펑,펑,펑..
고작 3척 남았는데 적함은 20여대가 넘었다. 아군은 회계함을 적으로 부
터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적의 함포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내 가며
회계함, 나히모프호가 달아날 시간을 벌어주었다. 쿠쾅쿠쾅.. 콰르르르르륵
..퍼벙..
"어서 달아나십시오 제독님..놈들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다들 목숨을 걸고
현위치를 사수하라..오늘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반파된 모스크바 호는 비장한 각오로 적과 대치했다.나머지 블라디보스토
크호 역시 장엄한 최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도 모스크바 호와 함께 골로 갈것이다. 비록 우리의 몸은 여기서 죽지
만 우리의 영혼은 조국 러시아 땅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게
될것이다! 포를 쏘아랏!!..푸슝푸슝..푸슝.."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버린 나머지 2대의 러시아함선은 최선을 다해 싸웠다.
나히모프 호는 그들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최선을 다해 도주했다.그러나 5
천톤의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를 싣고 있어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도망쳐봐야 멀리못가서 금방 따라 잡힐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스크바 호와
블라디보스토크 호의 희생은 헛되고 만다. 비단 금괴때문만이 아니라 그들
의 값진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회계함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만 했다.
제독은 이대론 도저히 않될것 같아 잔머리를 굴렸다. 기수를 돌려 한반도의
동해쪽이 아닌 남해쪽으로 향했다. 작은섬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남해에 배
를 숨기고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이다.그러는 동안 본국에서 비상조치를 내릴
것이다. 그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금괴를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다.
배는 전속력으로 달려 해운대에 도착했다. 그후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
로 이동해 수영만을 거쳐 신선대를 지나 태종대에 도착했다. 태종대에
숨을까 하다가 왠지 태종대왕이 비겁하다고 버럭, 화를 낼거 같아서 서
쪽으로 좀더 이동해 다대포 항에 도착했다.아직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
았다.천하의 발틱함대 제독이 고양이 앞의 쥐 신세라니..제독은 어느새
쥐수염처럼 자라난 자신의 수염을 잡아 뜯으며 오열했다. 남쪽으로 이
동해 쥐섬에 도착해 쥐새끼처럼 몸을 숨겼다. 이러다가 진짜 쥐가 될지
도 모르는 쥐랄같은 상황이었다.
(세상에 쥐섬이 어딨냐고? 참나 그럼 한번 찾아 보시덩가.. 다대포 해수
욕장에서 남쪽으로 한 5km아래에 있으니 의심가면 찾아보시던가..)
조타실에 있는 무선병이 폭발로 망가진 통신 시설을 고치고 있었다. 그
동안 배위에서는 안테나도 복구하고 불도 끄고 똥도 싸고 이빨도 닦으
며 다음 전투채비를 하고 있었다.
제독은 배아래 화물실로 혼자 조용히 내려갔다. 번호가 새겨진 나무 상
자가 가득히 쌓여 있었다. 500kg짜리 큰상자 1만개와 20kg짜리 작은
상자 500개가 쌓아져 마치 거대한 빌딩처럼 보였다.그는 작은 나무 상
자 하나를 뜯었다.묵직한 금괴가 영롱한 자태를 유감없이 뿜어내고 있었
다. 이건 황금보다 더 값어치가 높은 백금괴였다. 워낙 가치가 높아 고
관대작들만 만져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백금은 비중이 높아서 5
천톤이라 해도 부피가 그리 크진 않아서 나히모프 호에 모두 실을 수있었
다. 이정도 양이면 아프리카대륙에 있는 웬만한 나라 몇개 정도는 사고
도 남을 정도였다. 이걸 가지고 구지 일본에 식민지를 세우려는 짜르의
계획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몇개 사두었다
가 기름값 오르면 펑펑 퍼올려서 금방 떼돈을 벌수 있을텐데.. 짜르가
바보 아닌 이상에야 뭔가 다른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암만생각해봐도 짜르는 일본을 많이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아예 초장에
때려 잡아서 발밑에서 호랑이가 자라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 같았다. 그
러나 20년 동안 산업화에 박차를 가한 일본은 생각보다 더 성장해 있었
다. 이제 제1차 세계대전은 각국의 엇갈린 이해관계에 따라 피할 수 없
게 되었다.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일본이 일
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금괴를 일본에 빼앗긴다면 그
시기가 휠씬 더 앞당겨질 것만 같았다.사태가 심각했다. 제독은 갑자기
숨이 차오르고 혈압이 치솟았다. 일본.. 무시무시한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