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19성윤의 화투빚
-성윤의 집/현재
성윤을 위해 저녁밥상을 차리려는 진주의 장보기가 한창이다. 그동안 그녀
의 삶은 건조하기만 했다. 귀한집 외동딸이라 요리는 커녕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공주처럼 지내온 그녀는 성윤을 만난 이후
로 열심히 살림을 배웠다. 틈틈히 집안 청소도 하고 음식 조리법을 익혀서
지금은 한식에서 중식,일식까지 광범위하게 두루두루 흉내만 낼줄아는 솜
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당면, 시금치, 당근,송이버섯, 돼지고기, 양파, 콩나물, 설탕듬뿍..]
성윤이 좋아하는 잡채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잔뜩 산 후 택시를 기다렸다.
진주가 자신의 고급차를 두고 구지 택시를 기다리는 이유는 성윤이 총알
택시를 몰아가며 힘겹게 살던 시절이 생각나서였다. 요즘 보기드문 경기
불황으로 힘들어하는 택시기사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서였다.
"3900원이요."
하나, 둘, 셋.. 천원짜리 지폐 네장을 내미는 진주다.
"잔돈은 됐어요."
정말로 쥐꼬리만큼의 도움만 준 진주가 택시에서 막 내리는 순간,
"뿌아아아앙.."
뒤에서 갑자기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끼이익..쿠당탕탕.."
진주는 오토바이에 치여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진주를 친 오토바이는
서지않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지나가던 안경 쓴 학생 하나가 쓰러진 진주
곁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저기 괜찮아요? 누가 119좀 불러주세요."
오토바이 운전자는 어디론가 잽싸게 발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기절
한 진주는 주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엠블런스에 실려 급히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영식의 사무실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는 진즉 알고 있었지만 화투는 장난이 아니야~
를 이제야 실감하게 된 성윤이었다.그는 이제 도박빚 2억을 영식에게 갚
아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급한 그는 진주에게 몇번씩 전화를 걸어보았
지만 부재중 신호음만 계속해서 들려왔다.경천은 옆에서 그런 성윤을 한
심하다는 듯 쳐다 보고 있었다.
"뚜뚜뚜..좆됐다."
성윤으로부터 받아낸 신체포기각서를 영식이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
를 지었다.
"어디다가 자꾸 전화질이야 인마. 보아하니 개털이라 돈도 없는것 같고.이
제 시간도 다 되었으니 콩팥부터 꺼내줄까 아니면 간부터 꺼내줄까?"
"야야..친구끼리 그러면 되냐?"
옆에서 경천이 영식을 말리고는 있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오래전부터
꿉꿉한 음지에 몸을 담아온 영식은 이제 진화를 거듭해 극악무도한 장기매
매범이 되었다. 이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은 성윤은 돌하루방처럼 그자리에
딱 굳어버렸다.
화투에 몰입되어 똥인지,된장인지, 간장인지도 구분 못하고 막무가내로
돈을 끌어다썼다. 아니 써보기는 커녕 꾼돈이 숫자상으로만 고스란히 영
식의 손아귀로 넘어가고 만것이다. 분명 탄(한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미리
섞어 놓은 화투패)에 당한것 같은데 그걸가지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
다. 당한 놈이 병신이지.
화투빚은 빚도 아니다,란 말도 있긴 하지만 상대는 개다리도 뜯어먹는 개-
영-식 이다. 지금 싸질러놓은 똥이 훗날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묵사발을 만
들어 놓을지 그리고 그 묵사발 된 인생에 어떻게 죽이라도 담아 먹어야 할
지를 두고 패닉에 빠지는 성윤이다.여기다대고 피도 눈물도 콧물도 없는 영
식이 개만도 못한 소릴 했다.
"친구끼리 의리도 있으니까 네 장기들은 잘 냉동 보관했다가 비싼 값으로
팔아먹어 줄게."
영식이 뒤를 돌아보자 어떤 신호 인 듯 부하가 척척 걸어와 성윤의 복부에
칼을 들이댔다. 경천이 말리려들자 영식이 눈빛을 보내 저지했다. 예리하
게 다듬어진 사시미 칼끝이 성윤의 아랫배 표피를 살짝 뚫고 들어왔다. 저
절로 허리가 숙여졌다.비명지를 틈도 없이 순식간이었다. 가느다란 피가 마
치 비명처럼 성윤의 배에서 무릎 위로 떨어져 내렸다. 우욱..
칼은 점점 더 깊이 성윤의 몸속으로 파고 들고 있었다. 다리에 감각이 전혀
없었다. 마취는 하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공포가 모든 감각을 마비시켰다.
허벅지 위에 놓인 성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음처럼 차갑군. 진주는 대체 어디 간거지.이런식으로 가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