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18 짜르의 속셈
"다음엔 어떤 새끼를 관광보내줄까. 너야?"
체육부 장관이 움찔하며 고개를 저었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듯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엎드려 뻗쳤다.
"아님 너냐?"
보건복지부 장관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안 시켰는데 스스로 팔굽혀펴
기를 하며 알아서 기었다.
제국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짜르는 신하들 앞에서 이성을 잃은 짐승이 되어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그때 이를 지켜보던 시중이 앞으로 나섰다.
"폐하, 제게 좋은 수가 하나 있사옵니다."
"시중 따위가 뭘 안다고 까불어. 찌그러져 쨔샤!"
시중은 겁도 없이 왕에게 계속해서 들이댔다.
"들어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그때 제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왕은 어이가 없어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칼의 날을 무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읊어봐."
"폐하,이대로 일본에게 금괴를 빼앗긴다면 프랑스가 반드시 그 책임을 물
어 올 것입니다. 당장 차입금 환불요구가 들어올 것입니다.그뿐만 아니라
엄청난 금을 손에 쥔 일본은 일거에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 할 걸로 여겨집
니다."
"그걸 누가 몰라?"
"그렇다면 금괴를 바다 속에 가라 앉히는게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주위에서 신하들이 수근거렸다. 대체로적으로 좋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왕
은 생각이 다른듯 칼을 시중의 목에 들이댔다.
"아이 돌대가리야, 그럼 빚은 무슨 수로 갚아!프랑스 새끼들이 날 잡아쳐먹
으려고 들꺼다. 에라 죽.."
왕이 시중의 목을 내리치려는 순간 시중은 재빨리 말을 이어 나갔다.
"금괴 5천 톤에 해당하는 채권을 발행하는 겁니다!"
짜르는 목을 치려다 말고 솔깃해서 물었다.
"뭐? 채권?"
"프랑스 정부고위관료들을 구워삶아 고위층만 아는 비밀 채권을 만드는 겁
니다. 그렇게 국채를 발행하면 될줄로 아뢰옵니다."
"이런 미친..그게 그거 아냐. 채권은 뭐 빚 아니냐?너 지금 누구 약올려?"
시중은 괜히 나섰다가 개죽음 당하는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그러나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그것은 바로 부유층 독일 친구들이 많은 처남에게서 들
은 특급정보였다.
"저의 처남이 독일 여자를 한명 사귀고 있는데 그 여자애 아빠가 독일총통
의 오른팔 이랍니다."
"그래서?"
그녀의 정보에 의하면 탐욕스런 독일의 총통은 전 유럽을 손에 넣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고 곧 세계대전을 일으킬 것이랍니다."
"너 그거 확실해?"
"독일 친구들한테 몇번을 확인한 결과 사실이랍니다."
"쓸만한 깔따구를 두었군. 계속읊어봐."
"프랑스는 곧 막강한 독일의 전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되겠지요. 프랑스가 독
일에 잡아 먹힐락말락 할때 채권 전액 탕감을 조건으로다가 프랑스연합국
자격으로 러시아가 참전을 선포하는 겁니다. "
"야이 등신아,프랑스가 독일에 잡아먹히게 그냥 두면 편할걸 왜 굳이 돕고
나서는데?"
"프랑스가 독일에 먹히면 프랑스가 가진 식민지도 함께 넘어가게 됩니다.
독일은 순식간에 강대국이 될 뿐만 아니라 독일이 프랑스의 산업시설을 장
악해 무기를 만들어 낸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러시아 제국에게도 큰 위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우리 러시아가 프랑스와 손을 잡으면 독일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독일을 무너뜨린 후 땅과 자원을 프랑스와 반씩 나누어 가지면
됩니다."
그야말로 뀡먹고 알먹고였다.빚도 청산하고 그의 말대로라면 그동안 눈엣
가시였던 독일을 점령해 향후 유럽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을 수 있었다.왕
은 솔깃했지만 이자리에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럼 바다속에 가라앉혀 놓은 금은 대체 어떻게 할건데? 무슨수로 그걸 꺼
낼 거냐고 씨방새야."
"금괴는 꺼내지 않습니다."
"뭐? 이런 정신나간 새끼가 그냥."
"둘이서 조용히 얘기하고 싶습니다."
왕은 잠시 휴회를 선포하고 시중을 뒤로 불렀다.조용히 둘이서 이야기를 나
누기 위해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그얘기 다시 해봐."
시중은 확신에 차 있는 눈빛으로 왕에게 말했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지금과는 상대가 안될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룰것입
니다.그와 함께 인플레이션이 가중될 것입니다.그렇게되면 금의 수요는 폭
증하게 될것입니다. 100년 후쯤 우리 자손들이 발전된 과학기술을 이용해
바다속에서 금괴를 꺼낼땐 지금보다 수만, 수십만배의 값어치가 나갈 것입
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제국은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가 될수 있을 것이
고 짜르황제는 역사에 남는 영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왕은 일리가 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 훗날 조선과 러시아는 아마도
형제나라가 되어 있거나 아니면 같은 연방제에 속해 있을 것이다. 얼마전
조선에서는 일본의 일개 무사들이 어이없게도 국모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벌어졌었다.그 이후로도 조선의 친일파 관리들은 고종황제를 폐위시키려
했다.친러파, 이범진에게 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은 짜르는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일본의 눈을 피하기 위해 조선황제를 궁녀들이 타는 자그마한
가마에 태워 경복궁을 빠져나가 안전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켰다.
조선인들은 이를 '아관파천'이라 하는데 고종황제가 그곳에서 나랏일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짜르의 진짜 속내는 앞으로 조선과 손잡고 일본을
무너뜨려 극동아시아를 재패할 생각이었다. 지형적으로 반도인 조선은
내륙과 태평양을 서로 잇는 가교와 같아서 러시아에 반드시 필요했다.
프랑스에서 빌려온 금괴 중 절반은 조선의 수도 경성에 제1공동정부를
짓고 선진화 시키는데에 투자할 것이며 나머지 반은 일본 본토에 러시아
와 조선의 제2 공동정부를 세울 생각이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건 일개 시중의 입에서 나올 만한 얘기가
아니었다.짜르는 입이 떡 벌어져 아직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새끼 하이바 정말 잘 굴리네."
"황제께서 후세에 보물을 남겨주신다면 그 이름은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비록 시중이지만 왕이 보기엔 생각없는 재무 장관보다 경제를 보는 식견이
휠씬 더 넓고 어벙벙한 시바노마 사령관보다 더 치밀하고 세밀한 전략을 가
지고 있는듯 했다. 차기재무장관, 차기 총사령관 재목으로도 전혀 손색이없
어 보였다. 얘기를 마친 짜르와 시중은 다시 회의 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왕이 시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이놈 데려다가 말끔히 씻겨."
내무부장관이 짜르왕에게 잘 보이려고 끼어들었다.
"깨끗히 씻긴 후에 침실로 대령 할깝쑈?크크"
"너 일루 좀 와봐."
내무부장관은 칭찬을 기대하며 짜르에게 다가갔다.쪼르르~.
"빡! 그걸 지금 말이라고 씹어뱉냐?내가 호모냐 새꺄! 야, 이새끼 데려다가
거시기를 아예 뽑아버려.어서!"
"에이.."
내무부장관은 말한번 잘못했다가 되지게 얻어맞은 후 내시가 되어버렸다.
"야! 얘(시중)는 데려다가 관광부장관시켜. 아냐,그냥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아냐아냐 둘다 시켜. 겸직할 수 있게."
졸지에 재무장관겸 총사령관이 된 시중은 짜르황제에게 큰 절을 올렸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총사령관이 된 시중이 왕에게 여쭈었다.
"지금 오고 있는 시바노마 사령관은 어떡할까요?"
"니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니?"
"고대로 골로 보내버리지요."
"빙고."
새롭게 임명된 총사령관은 왕의 윤허를 받아 프랑스에 금괴에 해당하는 액
수 만큼의 채권을 발행했다.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의
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러시아는 채무 탕감을 조건으로 프랑스, 영
국과 함께 연합군을 이루어 이에 맞서 싸웠다. 시중의 예상이 감쪽같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