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강남역 10번출구 뒤편 골목길에 도착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여자와 보낸 지난 몇시간이 마치 꿈만 같았다.첨엔 좀그랬지만 차차 매력
을 느껴가며 이젠 폭신폭신한 애정까지 생겨났으니 기적같은 일이었다. 아
랫배가 묵직했다. 그녀와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조금씩 주워 먹은게 차곡차
곡 쌓여 목젖부터 항문까지 일자로 길게 한덩어리로 뭉쳐 틀어막고 있어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앞에는 음식,뒤에는 똥으로된 꼬치에 꿰어 있는 기분
이었다. 피똥이라도 싸서 당장 밀어내지 않으면 질식해 죽던지 아니면 꼬치
구이가 되어 죽을지 모를 급박한 상황이었다.에이 드런놈.
"미안해, 아까 손목 많이 아팠지?"
"......"
"나 잠깐 화장실 좀.."
"......"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한테 변태짓을 한 게 무안했던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양심은 있구나 니가.오빤 괜찮아 니가 한 변태짓은 화장실 다녀와서 모텔
잡으면 바로 되갚아주면 되니까. 기대해 이번엔 아무도 안 볼테니깐 사정
없어. 아니 사정은 있어. 다만 인정이 없을 뿐 크크..꿈깨 시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직 저녁장사 전이라 가게문 열어놓은 곳이 없었
다. 할 수 없이 편의점으로 달려가 껌 한통 사고 화장실 키를 받아 3층으로
달렸다. 화장실도 더럽게 멀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구식 건물이라 뛰어
올라가서 복도 끝까지 또 달려야만 했다.화장실 안은 좁고 여기저기 휴지가
굴러다녔다. 바닥엔 최근에 누가 일보다가 삑싸리를 냈는지 아님 똥싸다 미
끄러져 떨어졌는지 누런 똥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똥싸러 갔다가 오바
이트 나오는걸 겨우 참았다.강남에 아직까지 이런 썩은 건물이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급한 물량만 대충 싸질렀다. 키를 반납한 후 헐레벌떡 뛰어 차
로 돌아와 보니..
그.녀.가. 없.어.졌.다!
그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담배 한대 빨면서 일단은 기다려 보기
로 했다. 5분,10분, 30분, 1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갔어 병신아.
허탈한 마음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미스테리한
여자였다. 여러 특징들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똥인지 된장인지 가려낼 방법
이 전혀 없었다. 근데 아까부터 계속 불안한 마음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똥
싸고 밑 안 닦은 것처럼 뭔가 찝찝했다. 그러고보니 아까 똥싸고 휴지를 사
용한 기억이 없다. 어쩐지 아까부터 바지가 엉덩이에 지나칠 정도로 붙는다
했어 씨발..
근데 뭐지 똥보다 더 불쾌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이 찝찝한 기분은.비싼 참치
먹고 바로 물똥 설사하는 것 같은 이 허무한..
"아뿔싸, 계산!"
조수석에 여자의 가방이 가만히 놓여져 있었다. 택시질하면서 그 동안 이런
거 많이 겪어 봤다. 보나마나 텅 비어있을 그녀의 가방을 열어보니..
가방을 열어보니 지갑과 소지품이 그대로 있었다. 아주 떠나버린 건 아니라
는 말이니 일단 기다려 보자. 다시 10분, 30분, 1시간이 지나도록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방을 뒤져 인적사항을 알아보기로 했다. 전국을 무대로
식신로드와 연쇄키스 행각을 벌이고 다녔던 그녀는 놀랍게도 어엿한 명가
댁 자녀였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UN빌리지 42-1 양 진주. 25살'
(음..보기보단 연식이 좀 나가는 설리였군.)
백만원짜리 수표를 세어보니 수십여장이나 되었다. 최근들어 빌어먹을 전
세값이 말아먹게 올라서 그렇지 웬만한 사람한테는 전세자금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현찰은 없고 수표만 있다는 말은 일단 진실로 밝혀졌는데 이
여자 분명 결제를 앞둔 공인중개사일꺼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돈앞엔 장사
없다고 빳빳한 수표를 보니 딴 생각이들었다.
(이 돈이면 택시 때려치우고 1년은 족히 놀고 먹을 수 있는데.)
이대로 돈을 들고 튈까,라는 생각을 백만 스물 한번도 더 해 보았지만 어쩌
면 이 돈이 변태녀 엄마의 소중한 수술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서 그럴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튀고도 남았을 내가 이렇듯 착한 마
음이 드는걸 보면 역시 여자는 예뻐야 해.
-한남동 유엔빌리지
신분증에 있는 주소지를 찾아 초인종을 눌렀다.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