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은 조선 순조 7년(1807) 3월, 안동김씨의 23세손으로, 김안근(金安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다.
김병연이 5세 때인 순조 11년 11월 평안도 용강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는데, 당시에 선천방어사가 김병연의 조부인 김익순(金益淳) 이었다.
김익순이 술에 취해 집에서 자고 있을 때, 홍경래 군이 들이닥쳐 체포를 당했다. 이웃 마을에 난리가 나서 번지는데 방어사라는 자가 태연히 술에 취해서 자다가 적에 결박을 당한 것도 문제인데 김익순은 게다가 적에게 생을 구걸하고 순순히 항복을 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조정으로부터 관직이 박탈되고 일가폐가 처분을 받았다. 일가폐가 처분을 받으면 자손 대대로 관직에 오를 수 없는 벌이다.
그걸 모르는 김병연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고 마침내 23새에 과거에 응시해서 장원급제를 했다. 요행히도 홍경래의 난에서 처신을 잘못한 김익순을 비방하는 글("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로 장원을 차지한 것이다.
김병연은 나중에야 김익순이 자기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한 후, ‘이제 어떻게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겠냐?’며 커다란 삿갓을 쓰고 걸식을 하면서 방랑길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김삿갓이라고 불렀다.
김삿갓이 방랑 걸식을 하며 가는 곳마다 많은 시와 일화를 남겨 오늘날까지 전해오는데 그 재치와 시상은 가히 천재라는 말로 부족할 정도이다.
김병연이 장원급제를 한 시는 다음과 같다.
산천 땅은 예부터 대장이 맡는 도읍이라
가산 땅 같은 데 비기면 먼저 대의를 지킬 땅 아니냐.
서로가 맑은 조정 한 임금 밑의 신하로서
죽는 마당에 목숨 건지려 두 마음을 품은 녀석이었단 말인가?
그저 평화로웠던 세월 신미년에 서관에서 풍우가 일어남은 이 무슨 변고인고?
주나라를 받잡는 데는 노 중련이 있었고
한나라 보필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우리 조정에도 정 충신 같은 옛 신하 있어
맨 손바닥으로 풍진에 맞서 순국절사 하였어라.
가산 땅 늙은 벼슬아치 이름을 높이 걸어
가을 하늘 푸른 날에 빛을 내게 하도다.
그 혼백 남무에 가도 악비와 더불 것이며
그 뼈 서산에 묻혀도 백이와 나란하리라.
서쪽에서 들려오는 소식 분통하고 아찔한데
묻노니 누구 집 녹을 먹는 신하냐?
가문도 이름난 안동 김씨 갑족에
이름 자도 장안의 순 자 항렬이로다.
가문이 이러해서 성은 거듭 내렸거늘
백만 대군 앞일 지라도 대의를 굽힐 손가.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의 때를 씻고
철웅산 깊은 숲엔 활이 나뭇가지마냥 걸렸지 않은가!
그럼에도 조정을 들며나며 삼가던 무릎
등 돌려 어이없이 흉적 앞에 꿇다니
죽은 혼백일지라도 저승에는 가지마라.
그곳엔 먼저가신 임금님이 계신다.
신하가 임금을 잊은 날은 제 어버이 또한 잊은 것이니
한 번 죽음은 만 번 죽어 마땅하다.
춘추필법 아느냐, 모르느냐?
이 일을 바로 적어 우리 역사에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