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까지도 전세는 (심지어는 이땅의 상당수 주택전문가들조차)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임대차 계약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원전 15년전의 메소포타미아에
Antichresis 라는 전세계약이 존재했었죠.
나폴레용시대의 남부프랑스에서도 시행된 흔적을 찾을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들 대다수의 나라에는 전세가 더 이상 실존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남미대륙의 볼리비아에서는
Anticretico 라는 전세계약이 오늘날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Anticretico 는 Antichresis 의 스페인어로
Anti는 그리스어로 against 를
Chresis 는 use 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Anticretico 는 사용 (use) 의 댓가(against)로
보증금을 제공하는것을 의미하죠.
이 볼리비아의 Anticretico 는 우리나라의 전세와 매우 유사하며
전체가구의 5% 내외가 이런 계약을 맺은 임대주택에 거주합니다.
계약기간은 우리와 같은 2년이며 입주시 전세금을 집주인에게 지불하고
계약종료시 집을 비워주면서 동일한금액을 반환받고 나오게 됩니다.
집주인은 다주택자인 경우도 더러 있지만, 우리처럼 유사하게 자기집을
전세주고 본인도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 우리의 전세와 다른점도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세입자가 거주하는 댓가로 임대료를 지불하는 식이지만
볼리비아는 집주인이 세입자로부터 돈을 빌리는
소위 대출방법의 일종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는데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극단적인 경우 소유권이 세입자에게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볼리비아에서 전세계약을 할때는 변호사를 통해 법원으로부터
그 주택에 설정된 다른권리 (저당권) 가 없다는것을 확인받고,
등기부에 기록해야 합니다.
또한, 쌍방의 합의에 따라 보증금을 기한내에 반환하지 못할경우
소유권이 자동적으로 임차인에게 넘어갈수 있도록 계약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볼리비아의 전세광고로 US달러로 표기한 광고판이 보입니다. 대략 우리돈 4천만원정도네요.
이렇게 월세보다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주거형태인 세계적으로
희귀한 전세제도가 볼리비아에서조차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구조조정 이후 전세가는 폭등했고 세입자들은
전세를 통한 경제적 부를 축적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불가피하게
월세시장으로 편입되는 현상이 심해졌죠.
이런식의 전환이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어쩔수 없었던
선택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것 같네요.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돈놀이를 한 일부 금융자본에
의해 발생한 일시적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이런관점에서 전세월세보다 훨씬 주거안정에 기여하는 전세를
쉽게 포기하는 것은 오히려 시대에 대한 역행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전세를 단지 제도권금융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의 사금융정도로만
이해하고 선진금융시스템이 도입된 후 사라질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는게 정말 안타까운 일 같네요.
(저 역시도 내년중으로 전세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이건 마치 노동의 유연화 라는 미사여구를 내세워 좋은 일자리들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것과 비슷한 현상 같습니다.
전세가 사라지면 서민들은 2년간의 안락함을 누릴 기회마저 잃어버린채
매달을 월세납부와 씨름하며 더 질이 안좋은 집으로 내몰릴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미래주택시장의 모습일까요?
전세의 감소현상에 대해 단지 경제적 논리뿐만 아니라
주거안정과 복지 차원에서도 정책적 지원과 보호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