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2030세대는 희망이 없는 시대속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이 많이 팔리는 듯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희망을 실현시킬만한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희망을 이야기하는건 웬지 희망고문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젊은이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꺼라 봅니다.
우리시대에 힘든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마치 누군가 (조물주) 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매트릭스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 앤더슨과 모피어스가 만나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모피어스 : 운명을 믿나?
앤더슨 : 아니요
모피어스 : 왜지 ?
앤더슨 : 나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모피어스 : 무슨 뜻인지 알아. 자네가 온 이유를 말해볼까?
뭔가를 알기 때문에 온거야.
그게 뭔지 설명은 못 하지만 평생을 느껴왔어.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말이야.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
조각조각 깨진 파편처럼 마음속에 있는 그것이 자넬 미치게 만들지.
그 느낌에 이끌려 온 거야. 뭘 말하려는 건지 알겠나?
앤더슨 : 매트릭스를 말하는겁니까?
모피어스 : 그게 뭔지 알고 싶나? 매트릭스는 모든곳에 존재하지.
우리 주위의 모든곳에. 바로 이 방안에도 있고.
창 밖을 봐도 있고, 안에도 있지.
출근할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때도 , 세금을 낼때도 있지.
진실을 못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앤더슨 : 무슨 진실이요?
모피어스 : 니가 노예라는 진실
모피어스는 이제 앤더슨에게 양쪽 알약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합니다.
평온한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살아갈것인가?
아니면 무슨일이 펼쳐질지 상상조차 안되는 매트릭스 바깥으로 나갈것인가?
모피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마지막 기화다. 다시는 돌이킬수 없어. 파란 알약을 먹으면
여기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자넨 침대에서 깨어날 것이고
믿고 싶은걸 믿게 되는거지. 빨간 알약을 먹으면 이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돼. 명심하지만 난 진실만을 제의한다"
자 앤더슨은 둘중 어느 약을 먹었을까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는 빨간약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모피어스의 도움으로 매트릭스를 벗어나
현실세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 자체가 매트릭스라는 기계장치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에 불과했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제 앤더슨은 진짜 네오가 됩니다.
그런데 매트릭스 바깥의 현실은 춥고 삭막합니다.
차라리 매트릭스에서 꿈을 꾸고 있으때가 훨씬 나았을 생각까지 들 정도죠.
비록 매트릭스 내부에서지만, 세계유수의 IT 기업에서 촉망받는
직원이였던 그였죠.
열심히 노력해 회사의 사장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희망차게 살아가는 앤더슨 씨의 삶은
사실 꽤나 멋진 삶이 아닐까요?
그러나 앤더슨은 자신의 위화감에 해답을 얻고 싶었고
결국 세상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갔습니다.
물론 현실을 안다는 것도 현실을 변화시킨다는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영화속에서 모피어스도 그런말을 합니다.
"네오, 이제 너도 길을 아는것과 길을 걷는것의 차이를 알게 될거야"
그렇긴 해도 길을 아는것은 길을 걷기 위한 전제이자 필수조건입니다.
그런면에서 현재 한국의 2030세대는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의 말처럼
"하위주체는 스스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인가?" 하는 의문을 품어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우리사회가 집단적으로 젊은세대에게 희망고문을
가하고 있는 원인이 더 큰것 같습니다.
88만원 세대,한국이 싫어서 등의 책을 통해 시대에 저항하는 정신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우리세대의 저항정신이 좀더 강해져야
기성세대를 조금이라도 움직일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꼭 예전 386세대의 87년 민주항쟁같은
극단적 시위만을 가리키는건 아닙니다.)
아니면 우리사회에 네오 같은 존재가 나타나길 바라는것이
한낱 희망고문에 불과할까요?
지금의 2030세대가 10년후 3040세대가 되었을때는
지금보다는 좀더 기지개를 펴고 살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길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