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정재찬
출판사/휴머니스트
SNS나 포털사이트엔 클릭 몇 번만으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여러 컨텐츠들이 즐비합니다. 스마트폰 화면 넘기는 손가락이 참 바쁩니다. 친구들 사는 소식, 연예기사, 웹툰, 훑어볼 이야기도 부지기수. 이런 일상에 시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입니다.
시간문제만은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20대들에게 시는 즐길 대상이 아닙니다. 기나긴 입시레이스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대상 정도일까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전 재수했으니까 13년을 시와 함께 보냈는데 그 매력에 빠지지 못하다니. 조금 이상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잘못 배워서’ 그렇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직유법, 은유법, 대유법, 의인법 그리고 역설법....... 이 시가 잘 만들어진 이유만 받아 적고 시험 문제 맞추면 끝인데, 느낄 틈이 없었죠. 음식으로 치면, 레시피만 한참 분석하고 정작 맛보지도 않는 이상한 미식가였던 셈입니다.
900년을 혼자 산 도깨비가 ‘첫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 순간! <도깨비>를 단숨에 화제작으로 올려놓은 명장면입니다. 빛을 이용한 영상미, 세련된 음악,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두 좋지만 그 중심엔 ‘시’가 있었습니다. ‘조그맣고 하늘거리는 계집애’에게 끌어당겨지는 도깨비. 지구로 떨어져버리는 사과처럼 쿵! 소리를 내며 사랑에 빠집니다. 이 갑작스럽고 어쩔 수 없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마지막 대사 ‘첫사랑이었다’와 함께 쿵! 소리가 날 때면 제 심장도 함께 두근!하며 내려앉는 듯합니다.
이 시는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입니다. 드라마가 시 덕을 톡톡히 봤지만, 시 역시 그 못지 않게 드라마 덕을 본 듯합니다. 영상미, 음악 그리고 공유(!)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시 같이 짧은 텍스트에 담긴 감정을 맛보지 못합니다. 시간도, 관심도 없습니다. <도깨비>로 재조명되기 전부터 <사랑의 물리학>은 같은 텍스트로 같은 정서를 담고 있었지만 우리는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세상엔 아직도 감수성의 시선들을 받지 못해 빛바랜 시들이 많을 터입니다.
그런 시들을 위해, 그리고 시를 잊은 우리를 위해 공유 대신 나타난 한 분이 있습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공대생을 울린 시 강의> 저자 정재찬씨입니다. 비록 영상도, 음악도, 공유도 없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시의 담긴 감정을 풀어내주기 충분했습니다. 참고서에서 보던 딱딱한 지문 분석이 아닙니다. 레시피만 보지 말고 한 번만 맛보라고, 시를 느껴보라고 계속 말을 겁니다. 별을 바라보던 시대의 경이로움, 인연을 끝내는 비통함, 생의 끝을 대하는 여러 모습들....... 시 자체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아름다운 말들로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옛 노래 가사, 그림, 영화, 광고 등 다양한 매체들로 우리의 감수성을 이렇게 저렇게 건드려댑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매 수업마다 학생들의 기립박수를 받는다고 합니다. ‘마치 축제를 즐기듯 문학을 향유’시켜주려는 그의 수업에 감동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 역시 책을 읽고 난 뒤 한참동안 내적박수를 쳐댔습니다. 잊고 있던 감수성을 조금은 되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짧은 낱말의 무리에서 감동을 느끼는 일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잠시만 비트코인 뉴스에서 눈을 떼고 이 느긋한 감수성에 마음을 적셔보시는 건 어떨까요. 한창 시와 애증어린 싸움을 펼치고 있을 자녀 혹은 친구들에게 추천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