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쓴 글은 이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막 이식한 모종들이 겨우 땅에 뿌리를 내리고 따뜻하고 밝은 햇빛을 받아 연한 잎사귀들이 가는 줄기를 굵혀 가며 잔바람에 살랑거리는데, 그 밭에 들어가서 앞도 없고 뒤도 없이 밟고 차고 뒹굴고 파헤치며 깽판을 부린다. 이유는 그냥 화풀이다. 거기에 뭐를 심었는지 밭주인이 누군지 알 게 뭐야. 그러다 정신 들고 나니 아, 망했다... 겁보다 창피함이 크다.
요즘 화가 많아졌다. 누구에 대한 분노에 차 있다기보다 그냥 나 자체가 화덩어리다. 잘 안하던 남탓까지 하고. 곧 꺼질 불은 아닌 것 같다. 미국 어디어디에는 몇 개월 몇 년까지도 계속 타고 있는 곳이 있다지. 불꽃은 없는 분신같다. 물론 자의는 아니다. 불을 끄자고 하는 것인지 기름을 붓자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틈만 나면 쿨럭쿨럭 눈물이 난다.
싹 지울까 하다... 놔두기로 했다. 진짜 깽판은 아니잖아. 진짜 내가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니듯. 나보다 오래 남아서 창피를 줄테지만. 글이란 게 참 이럴 땐 신비해. '시간'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지.
늘 남기는 것은 억지로 쓴 초등생 일기같은 오늘 뭘 했다 부류다. 표면적인 사건은 무의미해서 무시할만 한 것이라는 게 아니라, 진짜 내 족보는 내면의 흔적일 것인데 누가 볼세라 지우려고 한다. 웃는다고 웃는 것일까. 운다고 우는 것일까. 웃지 않는다고 우는 걸까. 울지 않는다고 웃는 걸까. 남이 아니라 자신도 모를 수 있다. 그렇게 보인다와 그렇게 보이게 하자는 그렇다와 완전 다르다. 보여주지 않으니까 상대방은 모른다해도 겉부터 속까지 다 아는 나는 뭐야. 안보겠다는 거다. 안보겠다는 것은 잊겠다이고 잊겠다고 하면 잊혀지고 잊혀지면 모르게 되고 모른다의 끝은 없다이다. 중대한 과거의 실수는 말해도 사소한 지금의 실수는 말못한다. 시간이 지나 '내가 그랬었지'라고 하면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렇네'라고 하면 훗날엔 다를 것이다. 내가 과거와 꼭같은 모습인 것은 내 순간의 가면을 얼굴같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내 부끄러움의 가면을 직접 새기는 것은 정말 힘겹다고 할 정도로 나는 참 어렵다. 이것도 후속작 묻지마 깽판이 될지 모르겠다. 아직도 화가 듵끓고 있으니까. 그래도 이번엔 공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