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맛있게 살자
9월 6일 오후 한 시의 기록 │ by
또, 또, 또 딜레이라니!
어제 8월분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라, 입금을 확인한 뒤 작별 인사를 고하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또 '내일 준다'며 얼렁뚱땅 월급 지급일을 넘겼다. 그 '내일'이 되니 또 다음으로 미뤄졌다. 이제는 뭐, 미안한 마음도 없이 상습적이다. 몇 번 밀리고 지급해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지 같은 놈, 노동법이나 지킬 것이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죽을 상이라고 한다. 돈 못 받고 퇴사하면 혹시나 끝도 없이 지급을 미룰까 봐 두두는 일단 오늘도 일을 나간 상태다. 저번에도 그 주 금요일에 들어오더니 이번에도 그럴 생각인가. 정말 「지긋지긋」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떠나기 위한 미니멀 라이징
이제 슬슬 오클랜드 생활을 정리할 때가 왔다. 혼다 오디세이보다 조금 더 작아진 볼보 V40으로 우리의 모든 여행 짐을 싣고 얼마 간의 생활도 가능해야 하기에 우리가 가진 물건을 파악하고 처분할 것은 팔아서 현금으로 확보해야 한다. 애초에 최소한의 짐만 들고 와서 그런지 더 줄이기가 힘들지만, 일단 물품을 목록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떠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예정)
| 버릴 것 |
|---|
| 실내화 두 켤레, |
| 분류 | 물품 목록 | 구매 가격(NZD) | 예상 판매 가격(NZD) |
|---|---|---|---|
| 귀중품 | Sony A7R & 카메라 용품 | --- | --- |
| Fujifilm X-Pro 2 & 렌즈들 & 용품 | --- | --- | |
| 두두의 맥북, 리리의 Asus노트북 | --- | --- | |
| 각자의 휴대폰 & 충전기 & 샤오미 충전기 | --- | --- | |
| 쮸 | --- | --- | |
| 전기 | 220V 5구 멀티탭+트래블 어댑터 | 0 | (보유) |
| 뉴질랜드용 4구 멀티탭 | 5 | (보유) | |
| 주방 | 나무 도마 | 0 | (보유) |
| Tefal 전문가용 프라이팬 26cm | 59.99 | (보유) | |
| 루카가 준 냄비 | 0 | (보유) | |
| Stanley 진공 보온병 1.1qt | 30 | (보유) | |
| 3년 전 오사카에서 맞춘 젓가락 set | 0 | (보유) | |
| Herald D239 뉴질랜드 접시 | 4 | (보유) | |
| 개와 고양이 머그컵 2개 | 8 | (보유) | |
| 각종 도시락통과 재활용 아이스크림 통 | 0 | (보유) | |
| 리빙앤코 정수기 물통&필터 | 15 +α‥ | (보유) | |
| 스포츠 텀블러 | 0 | (보유) | |
| (살 것) | 칼, 숟가락, 주방 세제, 휴대용 가스버너, | α‥ | (보유) |
| 욕실 | 헤어드라이어 | 10 | 10 |
| 타월 6장 | 0 | (보유) | |
| 두두용 리리용 빗 2개 | 0 | (보유) | |
| 목욕타올 1장 | 0 | (보유) | |
| 샴푸, 린스, 치약, 칫솔 | +α‥ | (보유) | |
| 생활 | 날개형 건조대 | 24 | (미결정) |
| 옷걸이형 건조대 | 5 | 10 | |
| 세탁 세제 | +α‥ | (보유) | |
| 캔들 홀더, 미니캔들 | 1+α‥ | (보유) | |
| 나무 상자 | 4 | (보유) | |
| 물티슈 | +α‥ | (보유) | |
| 리리의 화장품과 생리대, 선크림, 바디로션 등등 | +α‥ | (보유) | |
| 파시 보온 물주머니 | 0 | (보유) | |
| LUSH 스프레이 | 32.92 | (보유) | |
| 섬유탈취제 | 1 | (보유) | |
| 전기담요 | 30 | 20 | |
| 카트만두 슬리핑백 2개 | 200 | (보유) | |
| 베개, 베개커버 여분, 이불 시트 set | 38 | (보유) | |
| 서핑 | lost 서프보드 | 0 | (미정) |
| Torq 서프보드 | 400 | (미정) | |
| SUP 서프보드 | 880 | 880 | |
| 무라사키 타월 | 0 | (보유) | |
| RC 후드 타월 | 70 | (보유) | |
| 퀵실버 스윔슈트 | 114.99 | (보유) | |
| 두두 스윔슈트 | 0 | (보유) | |
| 파란 고무박스 | 2 | (보유) | |
| 문구, 책 | 프리즈마 150색 색연필 | --- | --- |
| 두두의 노트 | --- | --- | |
| 리리의 다이어리 | --- | --- | |
| 리리 필기구들 | --- | --- | |
| 리리의 연습장 | --- | --- | |
| 『월든』 by 헨리 데이비드 소로 | 0 | (보유) | |
| 『H.O.U.S.E』 by Aleksandra Machowiak, Daniel Mizielinski | 20 | (보유) | |
| 여러 잡지들 최대 3권(알아서 버릴 것) | 2+α‥ | (보유) |
웬만해서는 '보유'로 넘어가버리니 참 큰일 났다. 전기담요를 처분하는 것도 아무리 생각해도 탐탁지 않다.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도 두두와 심도 있는 논의를 더욱 펼쳐봐야겠다. 그런데 이렇게 해놓고 떠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두두는 이 회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할 각오가 되어있는 상태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다.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김밥을 말다
나는 김밥 덕후다. 떡볶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엄마표 김밥의 맛과 즐거운 소풍 기억이 섞여 있어서 김밥에는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다. 뉴질랜드에 와서 3개월 만인가, 한국 마트에서 아주머니가 즉석에서 싸서 파시는 김밥을 사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믿을 수 없이 비싼 가격...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두 번 다시 사서 먹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김밥에 대한 애정은 마음속 깊은 곳에 고이고이 덮어두어야 했다.
"리리, 나 김밥 먹고 싶어. 내일 주방 비었을 때 한 번 해보면 어때? 맛없으면 네가 다 먹고, 맛있으면 내 거도 남겨주고!"
그런데 어제 두두가 불쑥 김밥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김밥용 김도 없고 김발도 없고 단무지 같은 기본 재료도 없어서 좀 힘들겠는데..."
대충 어렵겠다는 뉘앙스를 풀풀 풍겨놓고 오늘 아침 김밥 재료로 할 만한 것들을 살펴보았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는 부엌에 마음껏 펼쳐 놓고 요리하는 걸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이 집에는 오후 3시까지 아무도 없어서 어질러 놓아도 잘만 치워놓으면 되었다. 그래도 가끔씩 가족들이 정오쯤에 불쑥 집으로 돌아올 때도 있어서 긴장의 끈은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심혈을 기울인 끝에 선택한 재료들은,
- 스패니시 초리조 소시지 (길쭉하게 자르기)
- 계란 4개 (지단 부치기)
- 베이비 시금치 한 주먹 (살짝 데치기)
- 당근 하나 (채 썰어서 살짝 볶기)
- (참치 한 캔도 들고 갔었는데 다 만들고 나서야 발견했다. ͡°͡° ͜ʖ ͡°͡° 이건 따로 먹는 걸로.)
자르지 않은 구이김이 5장 들어 있는 포장지를 세로로 절반을 접으면 길쭉한 김 10장이 탄생한다. 이걸로 싸면 두 세입 정도에 다 먹을 수 있는 작은 김밥을 만들 수 있다. 새 밥을 짓는 동안 빨래를 돌리고 재료를 준비했다. 도마를 깨끗이 씻고, 기름이 묻지 않게 그 위에 비닐을 두 개 깔아서 김밥을 말기로 했다. 전혀 맛을 예상할 수 없는 재료라 하나를 만들자마자 먹어보았다.
오잉, 생각보다 맛있다!!!
구이용 김과 초리조 소시지에 간이 어느 정도 되어 있어서 맨밥으로 해도 맛이 괜찮았다. 바스락 부서지는 짭조름한 김과 따뜻한 밥, 풍부한 계란, 부드러운 베이비 시금치, 그리고 풍미를 더하는 초리조 소시지가 한 데 입 안에서 한 데 어우러졌다. 멕시코와 뉴질랜드, 한국이 모두 만난 느낌이랄까. 식을수록 맛이 아쉬워졌지만 뉴질랜드 첫 김밥 치고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아직 저녁을 먹기 전이라 지금은 맛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도 서로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있어 우리가 처한 골치 아픈 문제들도 잠시 잊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매일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잘 지켜가며 지금의 난관을 헤쳐나가고 싶다. 멋지지는 않지만, 그게 가장 맛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보통날의 기록'이라고 이름 붙인 대문을 달기로 했어요. :-))
│by @chaelinj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