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일요일이었습니다.
올해 아홉살 된 딸아이가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서
컬링 경기와 봅슬레이 경기를 본 후 집을 나섰습니다.
딸아이는 요즘 인라인스케이트 기술을 익히느라 푹 빠져 있습니다.
집에서 25분 정도 떨어진 수변공원에 X게임장이 있어서
두 시간 정도 딸아이를 놀렸습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신체활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딸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놀려야 재미있게 노는 것이지
가만 앉아서 조용히 뭘 하는 것은 노는 것이 아닙니다.
쌍둥이 남동생은 또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딸아이의 하루치 욕구를 해소해 준 후
꽃비를 따라 나무를 보러 떠났습니다.
은행나무와 모과나무, 음나무를 보고 왔는데
모두 수백년 이상 된 노거수입니다.
그 중 특별한 느낌을 준 나무가 음나무입니다.
꽃비도 이 음나무를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노거수 중에서요)
음나무 한번씩 들어는 보셨지요? 잎이 단풍잎처럼 생겼는데, 단풍잎보단 크고
가지에 가시가 돋아 있지요. 한약재로도 쓰이고
오리백숙이나 닭백숙에 넣기도 하는 나무입니다.
처음 이 나무를 보았을 때, 제가 알고 있는 음나무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음나무가 정말 맞냐고 물어봤는데,
밑에 떨어진 잎을 보니 과연 음나무가 맞네요.
아무튼... 이 나무는 음나무가 맞고요...
음나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뭐 그런 것을 알리려는 글은 아니고....
이 나무가 주는 특별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느낌을 글로 적는 것이 제 어휘로는 쉽지 않습니다만....
직선으로 쭉쭉 뻗지 않고,
위 아래, 좌우로 마음 내키는 대로 굽이치는 가지의 곡선이
아플 땐 아파하고,
슬플 땐 슬퍼하고,
또 화가 날 땐 화를 내고
좋을 때는 맘껏 좋아해도 괜찮다고
당근이에게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요즈음 마음이 좀 산란한 당근이가
위로를 받고 싶었나 봅니다.
엄나무 주변의 참나무 앙상한 가지 너머로
해가 넘어갑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잎사귀들이 나무를 꾸며 주지만
겨울에는 이렇게 고운 석양이 또 나무를 꾸며 주네요.
나무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요... 순전히 제 입장에서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초능력을 한 가지 쓸 수 있다면
자연과 대화하는 능력을 갖고 싶어요.
봄에 양지쪽에 노랗게 피는 꽃다지 얘기랑
이른 봄, 날이 풀렸다 싶은 날 날아오는 뿔나비의 얘기랑
한 자리에서 수백년을 살아 온 노거수의 얘기랑....
흐르는 물이랑도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랑도....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하하하하
너무 나갔나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정월 대보름이 얼마 안 남았지요?
나무의 가는 가지들이
차오르는 달을 감싸고 있는 듯
달을 한 번 잡아 보려고 손을 뻗은 듯
하늘에 박혀 있던 달이 혹시 떨어지면 깨지지 않게 받쳐주는 듯합니다.
물론.............
나무 가지는 가지요, 달은 달입니다만.......하핫
오늘은
나무에게 많은 위로와 영감을 받고 왔습니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인 채 서 있지만
곧 새싹도 피워올릴 것이고요..
저를 낙담하게 했던 당근이의 아들도
쌍둥이 누나보다 일 년 늦었지만
학교에 입학해서
겨울눈에서 터져나오는 새싹과 같이
생기 발랄하게 쑥쑥 성장할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 봅니다.
혹시, 이 음나무를 궁금해 하실 분 계실까 하여....
충북 청주 공북리 음나무입니다.
여러분도 봄 맞이 준비 하고 계시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