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족 여행을 다녀 온 지인이 한라봉 몇 개를 주었다.
한라봉은, 짜릿하게 새콤했다.
딸은 이런 맛을 좋아한다.
한라봉 껍질과 과도를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런 작품을 만들어서 의기양양하게 자랑한다.
동그라미, 하트, 꽃, 별, 토끼, 원피스, 물고기, 고양이, 세모 집,
그리고 정체를 모를 한라봉껍질 조각들.
딸은 올해 아홉 살이 되었다. 이제 내일이면 2학년이 된다.
뭐 한 가지를 들고 진득하게 끝을 보는 것은 드물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엄마를 닮아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땀 흘려 몸을 놀리는 것을 좋아한다.
쌍둥이 동생에게 누나 노릇을 톡톡이 하다가도
동생한테 치여서 아기가 되기도 한다.
딸은 엄마인 당근이를 똑 닮았다.
생긴 것은 당근이보다 낫지만
하는 짓은 당근이 어릴 때랑 똑같다.
그래서 딸이 하는 짓을 못 봐주는 때가 있다.
당근이와 딸의 불화는
서로 너무 닮은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 딸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맛있는 샤브샤브를 먹었고
몇 달 동안 벼르던 방방장에를 갔고
엄마랑 클레이로 인형옷을 만들며 같이 놀았다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말 할 줄 아는 딸이 이쁘다.
주스파의 N차 회동
주스파는, 주차장 스카프파의 약자.
지난 초겨울에 목에 두를 것이 없어서 동네 마트에서 구천원을 주고 스카프를 샀다.
구천원짜리 스카프를 명품 구찌의 자매품 '굳이'라고 자랑했더니
남모쌤이 혀를 끌끌 차며, 자기 집에 산더미같이 쌓이 스카프를 주겠다고 했다.
얼마 후 과연 남모쌤은 스카프를 한 보따리 들고 오셨고
우연히 같이 있었던 강모쌤과 박모쌤이 당근이와 같이 그 스카프를 나눠 가졌다.
그렇게 해서 주스파 결성.
주스파는 목적이 없다.
주스파는 목적이 없다.
주스파는 목적이 없다.
그런데 만나면 즐겁다.
강쌤이 올해 하는 일 모두 잘 되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점심을 샀다.
박쌤이 자기를 위해 멀리 안 가고 사무실 근처 식당을 약속장소로 잡아주어 고맙다고 커피를 샀다.
남쌤이 그냥 생각나서 샀다며 예쁜 립글로즈를 선물로 주었다.
당근이는 나눔의 기쁨을 만끽하시라며 방긋방긋 웃으며 받아 주었다.
박쌤의 사무실 근처 카페 '훈민정음'에서
점심시간이 끝났다며 커피와 차를 사 주고는 박쌤은 빗속을 달려 사무실로 복귀하고
당근이와 강쌤, 남쌤은 봄비처럼 속살거리며 키득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차를 마셨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스카프가 인연이 되어 한 두 번 만나던 것이 이제는
맛있는 밥집을 발견하면 같이 가고 싶어지고
예쁜 것을 보면 사서 나눠주고 싶고
아무거나 핑계를 만들어 밥을 사주고 싶고
날것의 감정을 들켜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
성격도 다르고, 성장배경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사는 형편도 다르고.....
심지어 성씨도 다 제각각인데
목적이 없어도 애써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아무튼 주스파는 여전히 아무 목적이 없이
다음 번엔 산속에 있다는 비빔밥 집에 비빔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고등어 구이.
고등어를 구우면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다.
나는 태어나기도 전,
나보다 아홉살 많은 둘째 언니가 예닐곱 살일 즈음이니 1970년대 초반이다.
우리 집은 몹시 가난했고
한 집에 우리 가족과 할매와 할배, 그리고 작은집이 같이 살았었다고 한다.
가난하고 식구 많은 농가였으니
먹을 것이 귀했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물론 생선도 귀했다.
오일 장에 나가서 생선을 한 손 사면
소금을 많이 뿌려 놓고
할배 상이랑 아부지 앞에만 한 토막씩 올라갔다.
할배는 독상을 고집하셔서 사랑방에서 늘 혼자 세 끼를 드셨는데
고등어 구이가 올라온 날에는 조금씩 남기셨다.
아마, 어린 손주들 맛이나 보라고 남기신 것이리라.
그날도 할배는 고등어 구이의 살점을 꽤 많이 남기셨는데
임신 중이던 작은엄마가 할배의 상을 물리면서
그 고등어 살을 먹으려고 눈도장을 찍어 놓고 선반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른 다른 식구들 상을 부엌으로 물리고 혼자 고등어 고기를 먹으려고
선반 위에 올려 놓았던 접시를 내렸는데,
고등어 고기가 온데간데 없더란다.
알고 보니 당근이 둘째 언니가 어떻게 알고 고등어 고기를 낼름 집어 먹었던 것이다.
작은엄마는 그만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고....
그리고 얼마 뒤, 다시 고등어를 숯불에 굽는데
자글자글 기름이 끓으며 환장할 것 같이 맛있는 비린 냄새가 나는데
작은 엄마는 뱃속에 아기를 품고
그 자글자글 끓는 고등어 기름을 손끝에 찍어서 맛을 보았다고 한다.
고등어를 구울 때마다
작은엄마의 얘기가 생각이 난다.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알기에
그저 고등어 구이만 보아도 생각이 난다.
그 때 작은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는 지금,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작은엄마는 이제 고등어 한 마리정도는 통째로 구워 드실 형편은 되시겠지....
아..... 그런데
간도 적당하고, 신선하고, 방사능 물질이 불검출된 안전한 고등어를
그릴에 자글자글 통째로 구웠는데
어째서
어째서
환장하게 맛있지 못한 것이냐.
어째서..... 어째서.......
비오는 날은 이렇게 이야기가 구구절절 늘어집니다.
끝까지 보아 주신 분이 계시다면
미리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