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란 원래 이렇게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하는 것.
어제 이맘때였던가.....
난데없이 '영농교육' 네 글자가 떠올랐다.
지금도 농촌에선 영농교육을 하는지.........알 수는 없지만,
나 어릴 적에는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집집마다 그 해 농사계획을 세울 즈음
'영농교육'이라는 것을 했다.
영농교육에 참가하면 뭘 배우는지 나로선 도통 알 수가 없었고,
알 수 있다 해도 그건 울 아부지와 엄마의 일이지, 나의 일은 아니었기에 관심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왜 '영농교육'이라는 것이 떠올랐느냐..........
그건 순전히 영농교육에 다녀오신 아부지 손에 들려 있던 빵때문이었다.
빵.
기름에 튀겨낸,
속에 달콤한 팥앙금이 들어 있고, 겉에는 설탕이 묻혀져 있던,
고소한 튀김 기름과 달콤한 설탕 내음새가 코끝에 요동치고
통째로 한 개를 다 먹어도 금새 입안에서 녹아버릴 것같이 맛있었던!
아침 일찍 영농교육장에 가셨다가
'에헴'하는 소리와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를 앞세우고 집에 돌아오셔서는
기름이 배어 거뭇한 얼룩이 군데군데 생긴 누런 종이봉투를
통채로 마루에 툭 던져 놓으면
이불 속에 새끼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나는
아부지보다는 그 봉투가 반가워서
얼른 봉투를 덥석 들고 들어와 봉투를 열어 빵이 몇 개나 들어있나 세어 본다.
하나, 둘, 셋......
몇 개나 들어 있었던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나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봉투에 들어 있는 빵을 다 먹어도 성에 차지 않을 것이었지만
언니와 오빠 몫도 남겨 놓아야 하니 내 몫의 빵을 먹은 후엔 남은 빵을 보며 군침만 삼킬 수밖에
혹은..... 꼴딱골딱 침을 삼키며 식구들이 다 돌아올 때까지 빵봉투와 눈싸움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가난했던 우리집은 누가 사오거나, 누구한테서 얻어 먹지 않는 이상
돈주고 그런 것-비싸봤자 한 개에 500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지금 생각이지만-을 사 먹을 형편이 되지 않았고....
아부지 본인도 그 맛있는 빵을 한 개쯤은 먹어보고 싶으셨을 테지만
단 한 개도 손대지 않고 고대로 들고 오신 것은 밥상에서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고 하는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아부지가 영농교육장에서 받아온 빵은 그날 저녁,
먹을 것에 환장한 나와 언니, 오빠의 입을 아주 잠깐 호강시켰던 것이이고.....
그렇게 일 년에 딱 한번
영농교육에 다녀오신 아부지 손에 들려있던 그 기름얼룩진 빵봉투와 달콤한 빵은
지루하고 지루했던 어린 날의 달콤했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간밤엔
그렇게 '영농교육' 이라는 생뚱맞은 네 글자에조차 깨알같은 이야기거리를 남기고
돌아가신 아부지 생각에 또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