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살인마, 작가 그리고 스토커(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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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레이스 요원에게.

그대의 간곡한 요청과 당신의 상사와의 오랜 논의 끝에 기쁜 소식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당신이 애를 먹고 있는 그 수사에 제가 도움을 드리도록 하지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하기엔 당신의 노파심일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노력이 나를 감명시켰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약간의 도움이 필요해, 친구를 한 명 수사에 동참시키기로 했어요.

당신과 만나는 이번 주 수요일 오후, 그를 소개시켜 줄까 합니다.

말도 없이 이런 결정을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내 감이 맞을거라 봅니다. 그는 이번 일의 핵심이 될 거에요.

그때 카페에서 봅시다.

크리스가.

2

비가 오는 오후. 한적한 거리에 빗물을 부드럽게 튀기는 소리와 함께 검은 밴 하나가 섰다.

문이 열리고 그곳에선 한 단발머리 여인이 내렸다. 단풍색 붉은 머리와 약간의 주근깨, 빼빼마르긴 했지만 자세에선 당당함과 올곧음이 느껴지는 걸음걸이로 카페로 걸어간다.

문을 열고 커피 한 잔을 시킨 후 손으로 빗물 털고 의자에 앉는다. 정장 단추를 걷어 시계를 본다. 7시 25분.

그녀의 뒷통수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멀리서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꽤나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그레이스 요원.” 크리스였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그레이스가 바로 일어나 크리스를 가볍게 껴안았다. 처음 만나는 사이치고는 친밀한 인사법이었다.

“내 조사를 많이 한 모양이군요.” 크리스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저는 결벽증이 약간 있어서, 사람과 인사할 때 악수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포옹을 하는 게 낫더군요. 제 자서전 어디에선가 읽었나봐요?”

‘자서전이 아니라 인터뷰에서요.’ 라고 속으로 말한 그레이스였으나, 굳이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다.

“사실은 포옹보단 뺨키스를 할까 했어요.”

그녀의 농담에 크리스가 껄껄 웃었다. “뺨키스는 최악이에요! 안 그런가요? 인류 문명이 이렇게나 발달했는데 아직도 그런 인사가 존재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최악이에요!” 그가 웃을 때마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지며 콧등의 안경테가 씰룩거렸다.

“작가님, 우선은 정말 감사드린다 말하고 싶어요.” 그레이스가 정중한 자세를 취하며 “작가님에게도 이번 결정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 알고 있어요, 더군다나 아직 건강이 나빠 요양중이기도 하셨는데...”크리스가 갑자기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사실은 건강이 나쁜 건 뻥이에요. 그냥 편집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뿐.”

“왜요?”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오냐 얼마나 닦달이던지.”

“어쩔 수 없죠, 인기작가시니까.”

“인기작가라...”

때 마침 웨이터가 커피와 아이스티를 들고 왔다.

“이미 저를 위한 주문까지 해놓으신 건가요?” 크리스가 웃으며 “저를 위한 아이스티로군요! 하지만 왜 커피를 시켜주지 않았죠?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걸 아실텐데?”

“모르면서 물으시는 건 아니죠?” 그레이스가 유머스럽게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당연히 이런 긴장되는 자리에 나오시는데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은 체로 오실 리가 없죠. 즉, 이미 이 자리에 오는 길에 대 여섯 잔의 커피를 마셨을 확률이 높고, 그래서 일부러 커피 대신 아이스티를 시켜두었어요. 커피는 충분히 드셨잖아요.”

크리스가 작게 박수를 쳤다.

“그레이스 당신 잘하는데요.”

“작가님-” 그레이스가 한숨 대신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저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지금도 범인은 분명 밖에서-”

“네, 다음 목표물을 찾고 있겠죠.”

크리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나이는 거의 50대 중반. 얼굴에 지혜가 묻어 더욱 나이가 들어보였지만 또 이야기를 하거나 얼굴에 생기가 돌때는 40대 초반으로 보이기도 하는 얼굴이었다. 다소 갸름한 얼굴형에 금발 머리카락, 흰머리가 희끗희끗 섞여있었다.

“솔직하게 말 할까요 그레이스? 아직도 난 이해가 가지 않아요. 당신은 이번 미해결 사건 수사에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문을 구했죠.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은, 전혀 저와 상관이 없어요. 당신은 이 살인마가 저의 추리소설을 따라하며 답습한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범행 수법도, 동기도, 피해자들의 특징도 내 책과 닮은 점이 없어요.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제게 말했죠. 이 살인마가....벌써 사람을 7명이나 죽였는데 FBI조차 꼬리를 잡지 못한 이 실력 좋은 녀석이 여전히 제 책의 광팬이고, 제 추리 소설을 따라하려 한다고요. 자 이제,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크리스가 말을 끝내자마자 아이스티에 꽂힌 빨간 스트라이프 빨대를 입에 물고 쭈욱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레이스가 입을 열었다.

“저는 FBI범죄 프로파일러 입니다. 이번 사건은 확실히 범인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워요. 사람이 한 명 죽으면 단순 우발사고. 두 명 이상 죽으면 해매는 우발사고. 세 명 이상 죽으면 연쇄살인이지요. 하지만 연쇄살인이라고 단정 지으려면 범행에 일정한 패턴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패턴이란 것이...공통점이 좀 더 피해자들의 사연이나 특징이 아니라 범죄 수단, 범죄가 일어난 주기 등등이 되면 그때부턴 정말로 위험한 녀석이 되는 거에요.”

“그야 정말로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놈이란 뜻이니까요.” 크리스가 대답했다.

“그렇죠. 그런데 이번 사건은 어떠한 특이점도 찾아볼 수 없어요. 그저 살인마가 같은 범행도구를 계속해서 사용한다는 점 빼고는 말이죠.”

“못.”

“그래요, 못. 못으로 사람을 죽여요 이 녀석은. 이쯤되면 단순 우연이라고 하기 힘들죠. 하지만 그것 뿐이에요. 희생자를 고르는 기준도 없어요. 녀석이 활동하는 시간도, 시체를 발견하는 시간도 제각각이죠. 마치 누군가가 만든 로봇에게 누군가가 ”랜덤으로 사람을 죽여라. 단 못을 이용해서.“라고 프로그램을 주입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못은 무얼 이용해서 박는 거에요?”

“망치에요.”

“원시시대에서 튀어나온 녀석인가?”

“망치로 못을 박죠. 한 사람당 총 92개의 못을.”

“많은 양의 못이군요.”

“네, 하지만 건설현장에는 원래 많은 양의 못이 들어요. 개인이 대량의 못을 산 기록으로 추적해 범죄망을 좁히기란 쉽지 않죠.”

“그리고 사람 뼈에 못을 박을 정도라면 엄청나게 어깨 힘이 좋아야 할테고.”

“그렇죠. 하지만 애시당초 그 사람들을 그렇게 한 자리에 가만히 고정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도 아직 알 수 없어요. 한 번의 망치질로 92개의 못을 전부 박을 수 있을리도 없고, 피해자는 분명 발버둥을 칠텐데도 언제나 그 현장엔 몸부림의 흔적이 없죠.”

“약물은? 혹은 다른 장소에 박아서 그 현장에 옮겼을 확률은?”

“전부 다 아니에요. 약물에서 마취제 및 수면제가 나온 적도 없고, 다른 장소에서 못을 박아 현장으로 옮긴거라면 못의 궤도나 사체의 흔적이 남아야만 해요.”

“즉,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한테 92개의 못을 망치로 하나씩 다 박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눈 하나 깜짝않고 당하기만 하고?”

“그렇죠.”

크리스가 아이스티를 쭈욱 들이킨 뒤 말을 이었다.

“그렇다는 건 맨 첫 번째로 박는 못의 역할이 정말로, 정말로 중요하다는 거군요. 그 못이 희생자를 단 한 순간에 즉사시켜야 하니까. 하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고요.”

“못 하나를 뇌나 심장에 박는다고 해도 즉사를 하기라 불가능해요.”

“그렇겠죠. 못을 20년 동안 머리에 박고 산 사람도 있다곤 하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레이스, 여기서 내가 여전히 궁금한 건, 내 수많은 책 중에서 못을 이용한 살인은.....전혀 없었을 거에요. 아마도. 내가 기억 못하는 저 옛날에 쓴 습작 쓰레기 중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못을 92개나 사용한다는 소재는 전혀 다룬 적이 없어요. 말해봐요, 왜 여전히 그 살인마가 저의 책의 광팬이고, 제 책을 참고삼아 살인을 저지른다는 거죠? 어떻게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에요?”

그레이스가 큰 숨을 들이킨 후 말했다.

“FBI도 뉴스에서도 말하지 않는 게 하나 있어요.”

“오 설마...”

“그 못들 말인데요, 피해자 모두에게 같은 위치, 같은 간격, 똑같은 패턴으로 박혀있다는 건 이미 아시겠죠?”

“네.”

“저희 감식반이 못이 박힌 자리에 숨겨진 코드가 있지 않을까 찾아본 결과, 하나 건져낸 게 있어요.”

“그게 뭐죠....?”

“만일 이걸 보신다면....”

크리스가 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아아아-! 제게 희생자의 시체 사진을 보여줄 생각일람 말아요, 전 이미 커피를 여덟잔이나 마시고 와서 속이 느글거리니까.”

“.....이 못들은 어떠한 규칙으로 박혀있는데, 바로 모스 부호에요.”

“아.”

“그 모스 부호의 스펠링을 해석해보면....”

“뭐라고 써있죠?”

갑자기 비가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잘 봐라, 크리스.”

“그레이스 요원.”

“네 알아요.”

“이 세상엔 수 억만명의 크리스가 있어요.”

“알아요.”

“설마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제게 도움을 요청했을린 없지요.”

“네.”

“그럼 말해주시겠어요?”

“크리스의 스펠링이요.”

“스펠링?”

"시체에 쓰여있는 크리스는 C,H,R,I,S 도 C.R.I.S도 아니에요.“

“그럼?”

“C.R.E.S에요.”

“그럼 애초에 크리스도 아니라 크레스 아닙니까?”

“작가님이 처음 등단하신 해에 이탈리아에서 발행한 신문에 작가님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는 걸 아세요?”

“아니요. 제 데뷔가 이탈리아까지 들석일 일이었습니까?”

“제일 처음 내신 책의 주인공이 이탈리안이라는 설정이 있었어요.”

“아-.........마르셀. 그리운 친구로군요.”

“문제는 그 기사에요.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사실 작가님에 대해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고 기사를 썼었어요.”

“..........?”

“선생님의 이름 스펠링을 실수로 적은 거죠. 오타가 나서 ‘크리스 테론’이 아니라 ‘크레스 테론’이라 적은 거에요.”

“............”

크리스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졌다.

“잠깐 핸드폰을 꺼내 구글링 좀 해도 되겠습니까?”

“네. 얼마든지요. 분명 CRES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 필명을 쓰는 사람. 닉네임을 쓰는 사람들이 나올 거에요.”

“.................”

“작가님.”

“네. 네.”

“우연이라고 하기엔 좀 뭐해요. 이 범인은 확실히 똑똑해요. 이런 영리한 녀석이라면 단순히 정말 CRES라고 사람에게 원한이 있어 그런 메시지를 남겼을리 없어요...그런 대놓고 드러내는 짓은. 오히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은, 수사관들도 전혀 모를 한 해외 기자가 실수로 낸 오타를 통해서 자신의 미끼를 던져주는 방식이야 말로...”

“더 기품있겠죠.”

크리스가 대답했다.

“.....더 치밀하다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크리스가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떼었다.

“그 이탈리아 기자의 이름 혹시 아십니까?”

“네. 하지만 이미 연락을 해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어요.”

“괜찮아요. 그때 그 신문이 발행한 날짜와 기왕이면 그 페이지 전부를 구해다 주세요.”

“알겠어요.”

그때였다.

4

그레이스는 순간 무언가의 섬뜩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창문 너머로 한 덩치 큰 사내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이 타고온 밴 바로 옆이었다. 밴에는 자신과 함께 온 파트너 마크가 타고 있다. 마크도 그를 주시하고 있을까? 왜 나는 저 사람에게서 이상한 기분을 느낀거지? 저 사람은 누군데 우리를 쳐다보고 있지? 벌써 살인마가 등장했다? 그럴 리가?

그레이스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할 동안, 크리스가 종결을 내주었다.

“경계를 푸세요. 그가 제가 말한 사건을 도울 제 친구입니다.”

그 사내는 천천히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둔탁한 발소리. 기분 나쁜 움직임. 그레이스는 도저히 경계를 풀 수 없었다. 그녀가 프로파일러로 일하며 익혀온 직감이 말하길, 이 사내는 위험해라 말하고 있었다. 사내는 성큼 성큼 다가오더니, 대뜸 작가의 바로 옆자리가 아닌 바로 그레이스의 옆좌석에 앉을 듯이 우두커니 그녀의 옆에 섰다.

“.....그...요원님이 옆으로 좀 들어가주길 바라고 있군요.”

그레이스는그 말을 듣고는 두 눈을 크게 뜨며 크리스를 노려보았다. 크리스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침묵하며 테이블을 쳐다볼 뿐이었다. 사내에게서는 짙은, 기분 나쁜 향수 냄새가 났다. 학교에 다니는 선생들이나 쓸법한 고지식한 냄새였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가방을 무릎 위로 올리며 좌석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개의치 않는 듯이 낡은 코트를 젖히며 그 자리에 턱 앉았다. 사내는 그레이스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으며 작가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에 미동이 없다.

사내는 30년 전에나 쓸법한 브릿지가 두 개인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정말로 고지식한 사람처럼 보였다. 콧수염도 짙게 길렀지만 매우 단정했다, 무척 신경을 쓰며 기르는 게 틀림없었다. 턱은 수염을 깔끔하게 밀었다. 머리도 단정하게 스프레이로 고정시켰다. 눈은 선하게 축 쳐지고 눈망울이 매우 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제스쳐 등등이 전혀 그를 깔끔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했다. 나이는 대략 32에서 36사이. 그러나 그 옷차림과 안경, 콧수염 때문에 언뜻 보기엔 40대처럼 보였다. 일부러 자신을 좀더 성숙한 사람처럼 표현하려는 듯 했다. 마치 자신은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어필하듯.

어깨는 딱 벌어지고 덩치가 매우 컸지만 키는 조금 작았다. 아마도 크리스 작가가 184cm라면 그는 176cm정도 밖에 안될 것이다. 그러나 앉은 채로 보면 크리스보다 사내가 훨씬 더 커보였다. 작가는 뼈대는 좋으나 매우 빼빼 말랐고 사내는 살집이 좀 붙은 것 같지만 코트 안을 꽉 채운 단단한 근육이 비쳐졌다.

사내는 앉은 채로 계속 손을 테이블 밑으로 내린 체, 주문을 할 의향조차 없어보였다. 남들이 보기엔 선하고 착한 그 두 눈이 여전히 작가를 노려보고 있었고, 크리스는 한 마디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사내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이 사람이....”

그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작가님이 말하신....?”

“그렇소. 이번 수사를 도와줄 조력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레이스는 순간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그가 자신으로 고개를 돌려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는데, 목소리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굉장한 하이톤이었지만 말투가 딱딱했다. 복고풍 안경 너머로 그의 크고 공허한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레이스요원입니다.”

“제 이름은 줄리안. 줄리안이라고 불러주십시오.”

크리스가 헛기침을 또다시 했다.

“와줘서 고맙네. 줄리안.”

“작가님이 말하신다면 당연히 와야죠.”

이미 줄리안은 그레이스에게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쪽에겐 고마워해야겠군요. 음.....덕분에 접근근지명령이 잠시 해제되어 이렇게 작가님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네?” 그레이스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크리스를 바라봤다.

“그....당신의 상사와 제가 나눈 거래는, 만일 FBI가 힘을 써서 줄리안에게 내려진 접근근지처분이 잠시 해제해줄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제가 수사에 참여하겠다고요.”

“접근근지명령....이라뇨? 이 사람에게 말입니까?”

크리스가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유로 접근근지명령이 내려진 거죠?”

“제가 요청했습니다.”크리스가 대답했다.

“어째서?”

“왜냐면 그는 저의....”

크리스가 말을 잇지 못하자 줄리안이 이어 받았다.

“아주 열렬한 광팬이니까요. 물론 때로는 그것이 실수로 이어지기도 했지요.”

그레이스는 슬슬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조금씩 가늘어졌다. 크리스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네, 그는 저의 스토커입니다.”

그레이스가 크리스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옆에 앉은 줄리안을 곁눈질 한 후,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했다.

“접근근지명령이 내려질 정도라면...어느 정도 커다란 사건이나 계기가 있어야 했을 텐데요..?”

“저를 납치 후 강간, 살해하려했지요.”

크리스의 그 말을 들은 그레이스는 잠시 동안 말을 잃었다. 줄리안이 옆에서 다리를 떨기 시작해 좌석이 흔들려 진동이 그대로 그레이스의 엉덩이에 울렸다. 그레이스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만지더니 말했다.

“그럼 감옥에 있어야할 사람이잖아요.”

“우울증, 신경발작, 간질, 공황장애, 정신분열 등등이 앓고 있는 줄리안의 병명입니다. 덕분에 재판에서도 어느 정도 감형을 하는데 일조했죠.”

“왜 이런 사람을 이곳에 데려온 거죠?”

“왜냐면”

크리스가 텅빈 잔을 애써 입으로 갔다대며 말했다.

“그가 저보다 제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줄리안이 다리를 떠는 걸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그레이스 당신의 말대로 범인이 저를 타겟으로 향한 범죄를, 저에게 어떤 원한이 있든 아니면 제 책에 영감을 얻어 그런 짓을 저질렀든 간에....작가란 말이죠. 생각보다 자기가 써온 책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합니다. 이 책을 쓰고 저 책으로 넘어간 순간 그때의 기억을 정리하기 마련이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전 제가 5년 전의 쓴 책의 범인들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요. 그러나 줄리안은 다릅니다. 그는 제 책들을 정말 사랑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놓칠 모든 요소들, 소설과 비슷한 공통점들을 모두 찾을 수 있으리라 장담합니다.”

줄리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너무 위험합니다.”

“알아요.”

“언제 다시 작가님을 공격할지도 모르고요.”

“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은 얌전할 겁니다.”

“어떻게 장담할 수 있으시죠?”

“약속했으니까요.” 줄리안이 말하기 시작했다.

“작가님과 약속했습니다, 접근근지명령을 해제해주는 대신 이번 사건을 도와 범인을 잡게 해드리겠다구요.”

줄리안이 테이블 밑에 내려놓고 있던 손을 빼더니 마치 어린 소년인양 작가쪽으로 쭈욱 뻗었다. 두 손의 뺨이 하늘을 향하도록 모으더니, 똘망 똘망한 눈으로 작가를 쳐다보며

“그렇죠 작가님?”

이라고 물었다.

크리스가 잠시동안 창밖을 내다보다가 마지못해 냉큼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줄리안이 그의 손을 꽉 접더니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흔들었다. 크리스의 표정은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펐다. 크리스가 말했다.

“게다가, 그는 저의 보디가드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시죠?”

“그는 퇴역한 군인이거든요. 아프가니스탄을 세 번 정도 다녀왔죠.”

줄리안이 소리가 날 정도로 훗하고 씨익 웃었다. 그레이스의 표정이 처음과 다르게 어두워졌다.

“그는 너무 위험해요.”

“압니다. 하지만 FBI같은 고급 인력이 24시간동안 저를 범인으로부터 지켜줄 수는 없을 것 아닙니까? 범인의 표적이 저라는 것은, 저는 언제든지 살해당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당신, 지금 혹시 소지하고 있는 무기나 호신용품이 있나요?”

그레이스가 줄리안을 향해 물었다. 줄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도구는 필요없습니다.”

“이제 그만 손 놓아주겠나?”

크리스가 하하 웃으며 물었다. 줄리안이 그의 손을 놓아주기 전까지 총 10초의 정적이 흘렀다.

“제 맨몸으로도 작가님을 지킬 수 있어요.”

“상대는 망치로 사람의 몸에 92개의 못을 박는 사나이에요.”

“네. 하지만 절반 정도는 못으로 박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박은 후에 못으로 내리찍었겠죠.”

“....무슨 소리죠?”

줄리안의 말에 크리스와 그레이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마 범인은 높은 곳에서 피해자들을 떨어뜨렸을 겁니다. 물론 어떻게 다 같은 자세로 떨어지게 유도했는지는 모르지만요. 그러나 어쨌든 밑바닥에 못을 잔뜩 고정시켜둔다면, 그곳에 추락하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은 즉사와 동시에 절반 정도의 못이 박히게 되지요. 범인은 그것을 들어올려 이미 박힌 못을 망치로 좀더 박으면 되는 겁니다.”

“.......................”

그럴 듯한 접근이었지만 여전히 어떻게 피해자들의 몸에 못들이 같은 자리 같은 간격으로 박히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주위의 타박상 없이. 하지만 크리스는 조금 흥미가 생겼다.

“그렇군. 뭔가의 장치야. 뭔가의 장치로 피해자를 끌여 들인 후 그 장치에 박힌 못들로 즉사시켰다, 그리고 몸에 박힌 못을 망치로 몇 번 더 두들긴 거군.”

“이 부분은 본부에 보고해볼만한 추론이군요. 물론, 아이디어의 출처는 이 자가 아닌 작가님이 해주신 걸로 해야겠지만.”

“어쨌든 제가 도움이 되는 겁니까?”

줄리안이 씩 웃었다.

“..............몇 명이었죠?”

그레이스가 물었다.

“몇 명이나 죽였어요, 전쟁터에서?”

줄리안이 그레이스 쪽으로 고개를 아주 천천히 돌렸다.

“멍청한 질문이군요.”

“대답해드려, 줄리안.”

크리스가 줄리안쪽으로 흘깃 쳐다보고 말한 후 다시 바닥을 내려다봤다.

“........106명?”

줄리안이 하얀이가 전부 드러날 정도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레이스가 생각하기엔, 그 많은 숫자 중 아마 5명이나 6명 정도는 전쟁 중이 아닐 때 저지른 행위일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까지 지적하기엔 현재 너무 머리가 무거웠다. 그녀가 시간을 다시 확인한 후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다.

줄리안이 좌석에서 일어서 옆으로 비켜섰다. 크리스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혹시 제가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의 현장에 가서 이것저것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작가님. 가서 현장의 요원에게 제 이름을 대면 될 거에요. 그게 안 통한다면....여기있습니다.”

“오, 내 아이디 카드?”

“그럼 작가님, 사건을 도와주시기로 해서 정말 고맙고.....줄리안씨, 당신도 잘 부탁드려요.”

그녀가 줄리안을 지나쳐 빠져나갈 때 줄리안이 작게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이번 범인은 말이죠”

그레이스의 등골이 사늘해졌다. 줄리안이 말을 이었다.

“상대를 아주 아주 잘못 골랐어요.”

그녀는 빠르게 카페를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줄리안이 자신을 쳐다보며 킥킥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케이지콘입니다.
오늘은 그림이 아닌 자작소설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ㅋㅋㅋ 너~무 뜬금없죠?
사실 슬슬 그려둔 그림들이 다 떨어져나가기 시작하여...이런 식으로 포스팅 소재 돌려막기를 하는 중입니다.

이 소설은 제가 스팀잇에 입문하기 바로 직전에 쓴 습작입니다.
스팀잇 활동을 하기 전의 전, 뭔가 반복되는 웹툰 작업에 갇혀있으니 정체되어있는 것 같고, 그래서 무언가의 발전이나 변화를 일으켜보자는 마음으로 '뭐라도 글을 써보자!'해서 저의 개인 블로그에 연재를 시작했던 건데요.

이게 웬걸, 1화를 올리자마자 저는 스팀잇을 발견하게 되었고, 네....그 이후는 뭐....ㅋㅋㅋㅋㅋㅋ
스팀잇에서 아주 '정체'는 커녕 시간이 모자를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ㅋㅋㅋㅋ 그림 그리고 음반 작업(?)에 수많은 고마우신 분들과 교류하느라 바쁩니다 바빠@_@

해서 이 소설도 사실 1화 이후로 전혀 진행이 되지 못 했습니다-.-;;;;
그치만 정말 쓰면서도 재밌었습니다. 소재도 제 마음에 쏙 들었구요. 사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래서 읽은 작품수도 너무 적습니다. 트릭이라던가 기타 설정들이 진행될 수록 엉터리로 설계될 가능성이 아주 높네요. 그래도 이 스팀잇에서라도 연재를 해볼까 합니다. 물론 시간이 없다보니....ㅋㅋㅋ 2화가 과연 언제쯤 올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한 달....아니면 두 달 후가 될지도 모릅니다-.- 크흠; 기다리지 말아주세요.

소설은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그리면서도 취미삼아 했던 활동인데요, 그에 반해 생각보다 스팀잇에 공개할만큼 볼륨이 쌓인 글은 몇 없습니다. 애석하죠...흠....(그럼포스팅 돌려막기가 더 쉽게 됐을텐데)

그치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그림과 더불어 제 글도 포스팅을 해볼까 해요^^
무척 길면서도 부족한 글을 봐주신 분들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연재] 살인마, 작가 그리고 스토커(1화)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