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 지금, 계속 사라예보에 머물 필요성이 없어졌다.
이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지금 그동안의 노트북 소동으로 정신이 황폐해져 버렸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
그런데 교통비가 어마어마한 이상 숙박비를 줄여야 한다.
그러려고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야간 버스를 타는 것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멀리 가려고 한다.
그리고 자전거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터키 이스탄불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루트는 남쪽이 되어야 한다.
기왕이면 버스비가 싸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을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곳은 코소보 프리슈티나다.
밤 10시에 출발해서 10시간 걸리고, 교통비가 20유로밖에 안 되는데, 남쪽에 있다.
다른 지역으로 가면 시간도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적어도 30유로 이상이다.
무엇보다도 코소보와 세르비아 국경지대는 위험한 지역으로 명시되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 힘든 곳 같다.
어차피 차를 타겠다면 기왕이면 자전거가 가기 힘든 곳을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차를 탄 보람이라도 있게.
마음의 결정을 했다. 티켓을 끊었다. 이제 돌릴 수 없다.
이제 여기에서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번화가도 돌아본다.
백화점에 들어가 보았다.
지하에 가보니 오락실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내 마음의 고향. 반갑게도 발판이 5개인 국산 리듬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해 보고는 싶지만 여기까지 와서 오락실에서 주목받기는 싫다.
아무도 이 게임을 만지지 않는 이상 플레이 하는 것 자체가 주목받기 때문에.
그리고 한 번 하는데 1유로를 넣으라니.
카운터에 2마르카를 가져가면 1유로로 바꿔 주는데 그 짓 하는 것도 귀찮다. 그냥 나왔다.
오락실 밖에는 이번에 신제품으로 나온 전동 안마기 판촉 행사가 한창이다.
그저 앞을 지나가고 있을 뿐인데 나를 갑자기 붙잡는다.
다른 때라면 무시하겠지만 너무 할 일도 없어서 한 번 응해 보기로 한다.
“1초에 30번 진동하면서 당신의 피로를 싹 풀어드려요.
그리고 부위에 따라 앞에 촉을 갈아 끼울 수 있고요.
그리고 봉 끝에 빨간 불 보이시죠? 적외선이 나와요. 몸에 아주 좋습니다.”
아저씨. 저 이거 한국에서 많이 봤어요. 설명 더 안 해주셔도 되요.
“아, 예.”
“근데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이요.”
“어이쿠, 멀리서도 오셨네. 그럼 이거 꼭 사가야 되겠네요.”
“왜요?”
“부모님 효도 선물로요.”
“허허허...”
허허허... 부모님이 원채 이걸 좋아 하시겠다.
지금 그리고 내 자전거에 짐 넣을 곳도 없는데, 무슨.
그런데 외국인한테까지 이걸 팔려고 하는걸 보니 왜 이렇게 재미있지?
내 뒤에서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하더니
예쁜 여자 판촉원이 혈침봉을 들고 와서 내 어깨를 마사지한다.
어이쿠~ 시원하다.
여행하면서 근육 뭉치면 누가 풀어줄 사람 없어서 정말 뭔가 찝찝했는데
남이 풀어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저기요?”
“네?”
“이 여자 얼굴을 봐서라도 꼭 구매하셔야 합니다.”
푸핫!!!!!
이대로 더 있다간 이 여자한테 전신안마 당하고 강제구매하게 생겼다. 잘 둘러대고 떠야지.
“이거 얼마에요?”
“단돈 99마르카에요! 50유로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에요. 오늘만 가능한 가격입니다.”
“언제까지 하죠?”
“11시요. 6시간 남았네요.”
“6시간동안 생각하고 올게요.”
“네~! 이 미녀들을 봐서라도 꼭 다시 오세요!”
네. 저 4시간 뒤에 버스타고 여기 뜹니다.
이곳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보스니아 커피를 마셔보는 것.
지나가면서 카페는 많이 보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지,
너무 더워서 뜨거운 것을 손에 대기 힘든 등,
그런 환경들 때문에 한 번도 입에 대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늘, 떠나기 직전에 한 번 맛을 보고 가려 한다.
적당히 번화가 초입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보스니아에서 커피를 시키면
희한하게 생긴 주전자에 원두와 물을 같이 펄펄 끓여 빈 잔과 함께 내 온다.
맛이 정말 독특하다.
약간 초콜릿 향이 나는데 맛은 매우 맑다.
이런 맛과 함께라면 보스니아식 된장질도 할 만하다.
내 옆에는 딱 봐도 여행자로 보이는 건장한 분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점원이랑 대화가 잘 되는 걸 보니 이곳 사람 혹은 크로아티아 사람 같다.
나도 좀 점원이랑 노가리 좀 까고 싶은데.
길거리를 바라보면서 혼자 공상에 빠져 있을 때 옆에 계신 분이 말을 걸어 왔다.
“저기, 여행자분?”
“예?”
“혼자 오신 것 같은데 이야기나 하죠.”
이 이후 과정은 이름 묻고 국적 묻는 등, 매번 똑같으니 생략하겠다.
쓰는 것도 지겹다.
“아직 학생이신가요?”
“예. 휴학하고 비는 시간에 자전거로 유럽 일주를 하고 있죠.”
“혹시 크로아티아 오셨었어요?”
“어이쿠, 거기에 한 달 있었어요.”
“영광이에요. 제가 크로아티아 사람이라서요.”
“여행오셨나요?”
“아뇨. 전 직장인이에요. 전 산업 안전장비 회사에서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죠.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이 많아요. 사업차 왔다가 여행도 하는 거죠.”
“뭔가 멋진데요?”
“참 행복하죠. 지금 이 비싼 사과 한 입 베어 물은 스마트폰도 회사에서 나왔고,
요금도 회사에서 내 줘요.
이동하는 것도 회사에서 내 주고 호텔도 회사에서 잡아주기 때문에 잠자는 데 돈도 안 쓰죠.”
“그렇게 이것저것 다 받는데 봉급은 얼마나 나오나요?”
“한 달에 10000쿠나 [2백만원] 받고 있어요.
크로아티아 평균 임금의 2배를 받죠. 그래서 전 제 직업에 매우 만족합니다.”
“더 벌고 싶지 않으세요?”
“글쎄요? 전 여기서 더 욕심이 나진 않네요.
그저 처자식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만 벌 수 있다면 전 만족해요.
이제는 여기에서 출장 횟수만 좀 줄었으면 좋겠어요.”
“왜요? 전 세계 다 다니고 좋잖아요?”
“아뇨. 제가 지금 다녀봐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다에요.
이 주변으로만 다녀요. 이 직장 잡고 여기 사라예보만 10번 넘게 왔어요.
이제 가정도 있는데 와이프와 아이들하고 같이 있고 싶어요. 그것 빼고는 아주 만족해요.”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월급은 약 300만원이라고 한다.
실제 600만원 받는 분은 이 봉급에 만족할까?
“이렇게 넉넉하게 버니 여행 온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뭘 대접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여 친구를 만들 수도 있죠. 전 참 제 직장이 너무 좋아요.”
“저도 좀 그렇게 만족할 만한 직장을 얻었으면 좋겠네요.”
“할 수 있어요. 지금 집에서 전화가 왔네요. 잠시만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나눈 뒤 나에게 전화기를 건네준다.
“제 와이프와 아이들이에요. 한 번 말해보세요.”
스피커 너머로 화목함이 들린다.
<이전 포스팅>
CHAP2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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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2_32 보스니아 - 나의 노트북은 어디에? | 한국에서 노트북 공수해오기, 그 결과는?!
CHAP2_31 보스니아 - 연애운이 더럽게도 없는 아이 | 저를 따라하시면 즐거운 솔로생활이 펼쳐질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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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2_27+28 보스니아 - 유고의 향수 | 엑스터시 | 그들이 암울한 인생을 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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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2_16 크로아티아 - 아무나 얻어 자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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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2_14 크로아티아 - 테라네오 락 페스티벌 3 | 아침에 대놓고 그짓을 하는 사람들 | 음악 앞에선 국경이 의미가 없다
CHAP2_13 크로아티아 - 테라네오 락 페스티벌 2 | 크로아티아 전통술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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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