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전 오늘 3월 1일, 카오산 로드에서
안녕하세요 @brianyang0912 입니다.
2017년 기준 140만명의 한국인이 태국을 방문하고 여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에 거주중인 교민의 수는 2016년 12월 기준 2만명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국은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이긴 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태국어학과가 있는 학교는 단 두개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산외국어 대학교, 이 두 대학교를 제외하면 태국어학을 전공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타 외국어에 비해 낮기 때문에 태국어를 소수어라고도 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태국어를 보시면 지렁이가 꼬불꼬불 지나간다고 생각을 하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은 꽤나 국제화된 나라입니다. 수많은 국제기구의 헤드쿼터이기도 하며, 지리적 여건으로 아세안관련 회의가 열릴땐 방콕에서 컨퍼런스를 진행합니다. 사회 인프라가 주변국들보다 낫기 때문이죠.
이러한 것들 때문에 저는 많은 기회를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태국어를 못해도 각종 컨퍼런스에 통역으로 참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또 웃긴게 영어를 하는 한국사람이 태국엔 소수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페이를 받으며 통역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일례로, 전문 통역을 하는 친구는 나이대가 대부분 20대 초~중반인데, 수요는 많아지는데 공급이 낮아지자 이 친구를 찾는 각종 기관들이 많아지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 친구는 총리급 회담에도 통역으로 들어갑니다.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도 않았고, 관련 자격증도 없는데, 이러한 기회로 고위급 회담 등에 통역으로 들어가면서, 매달 수백만원~수천만원을 벌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나이대가 되면 태국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했던 사람들은 태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취업을 하게됩니다. 그렇게 취업을 하면서, 자연스래 이런 통역일에선 멀어지게되고, 새로운 새내기(?)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죠.
정말 많이 부족하지만, 저 또한 이러한 통역 기회가 많아 이런저런 일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태국 프리미어리그 프로축구팀에서 통역을 했던 일이죠. 오늘은 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파타야 유나이티드는 원래 태국 2부리그에 있는 팀이었으나, 한국 감독의 활약으로 1부리그로 승격된 팀입니다. 구단이 돈이 빵빵하며, 태국 1부리그의 최강팀인 므앙텅 FC과 같은 소속의 팀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젊은 유망주들은 파타야유나이티드에서 경력을 쌓게하며, 그 이후 므앙텅으로 승격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습니다.
파타야 유나이티드는 잠시 한국에서 유명했기도 했는데요, 김남일씨와, 김태영씨가 파타야유나이티드의 코치 부임을 한다고 하면서 부터 뜨거워졌기도 했죠. 그리고 사실 상 계약이 성사 단계까지 갔고, 김남일씨와 김태영씨는 현지 사정을 보기위해 태국으로 날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무슨이유때문인지, 후문으로 들은 이야기는 현지 상황이 열약하여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결국 김태영씨와 김남일씨의 파타야 유나이티드 코치 부임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리그에 있던 팀을 1군으로 승격시켜준 감독이 한국감독이었으므로, 구단주는 한국감독을 크게 신뢰하고, 계속해서 한국감독과 코치를 찾은 듯 합니다.
그렇게 새로 부임한 감독님과 코치님이 바로 이 두분이죠.
전 당시 태국에서 계절학기 수강중이었고, 아는 분을 통해 우연히 구단에 통역으로 들어가게됩니다.
▲ 므앙텅 FC 의 전용구장
사실 상, 제가 당시 구단 전담 통역이었습니다. 전담 통역이지만, 구단에서 필요로 할때만 통역을 하는 일이었고, 페이는 태국에선 큰 페이였으나, 이동거리가 멀어 사실 상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다고 하기 보다는, 경험을 위해 일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파타야유나이티드의 구장은 파타야에 위치해 있습니다. 경기장 위치는 태국 프리미어리그 내 강팀인 촌부리와 가까운 거리였지만, 파타야 유나이티드의 자체골수팬들을 보유하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은 파타야가 아닌 쨍와타나에 위치한 므앙텅구장에서 했습니다. 구장안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고, 구장에서 대략 1키로 떨어진 거리에서 훈련을 진행하였습니다.
대략적으로 하루에 통역을 하는 시간은 2시간 정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매일 있는 선수들의 훈련에서 감독님이 지시하시는 말을 태국어 또는 영어로 통역하여 태국 코치에게 전달하면, 태국 코치가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죠.
그 외의 시간은 감독님과 코치님의 태국 생활 적응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도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김남일씨와, 김태영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몸은 와서 코치와 감독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구단에서 준비한 생활여건이 많이 부족했었죠. 잘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제가 구단측에 여러번 이야기를 해야 고쳐지곤 했습니다.
사실 상 저는 통역으로 구단에서 정식 고용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별도의 복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모셔온 감독님과 코치님에겐 별도의 복지가 있었습니다. 우선, 가장 큰 복지는 기본급에 경기 승리시 나오는 수당이었습니다. 정확한 금액은 비밀로 하게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으로 약 30평 정도 되는 방 3개짜리 방이 제공되었습니다. 원래는 개인실을 써야하나, 구단측의 사정으로 감독님과 코치님은 한방을 쓰게 됩니다. 경기장이 방콕이 아닌 쨍와타나라는 방콕 외각에 위치해 집값이 저렴했지만, 예상보다 집이 크고 좋아서 저는 놀랏었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별도의 자동차가 제공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구단에서 제공된 차이며, 이 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었죠.
경기는 1주일에 한두번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한창 시즌일때와 컵 경기가 병행될때에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경기가 있곤 했는데, 태국이란 나라가 크다보니 원정경기시 이동거리가 꽤 길었습니다. 치앙마이나 치앙라이 등 아주 먼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시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이 때 저는 따라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홈구장에서 진행된 경기같은 경기엔 제가 함께 갔죠.
홈구장까진 대략 1시간~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선수들이 모두 이동을 하며, 하루 전에 미리 파타야에 도착을 해 훈련을 합니다. 파타야에서의 훈련은 파타야유나이티드 구장에서 진행되며, 감독님의 오더로 훈련이 지속됩니다. 그리고 1박을 하는 경우에 선수들은 꽤 괜찮은 호텔에서 숙박을 합니다. 시설이 괜찮았었습니다.
사실 상, 경기 진행중에 제 역할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선수대기실에서 그날의 전략에 대해 이야기 할때 통역을 하곤 했었습니다. 팀내 태국 선수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용병들이 있었고, 한국 선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영어로 전달을 하고, 그 영어로 전달 한 내용을 태국 코치는 다시 선수들에게 태국어로 전달하고, 다시 영어로 설명하곤 했죠.
훈련같은 경우는 위에 말씀드렸다 싶이 므앙텅 구장에서 약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별도의 야외 훈련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훈련은 야외 훈련과 실내 체력단련으로 이루어지며, 감독님의 재량으로 이루어 집니다. 1군이 경기를 위해 지방으로 원정경기를 나갈때면, 홈에 남은 선수는 코치님이 진행하는 훈련으로 대체되는데, 감독님이 진행하는 훈련보단 좀 더 스무드한 트레이닝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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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구단 내 감독님이 하시는 대부분의 일을 대리해서 했습니다. 모든 훈련은 감독님이 진행하시지만, 의사전달 등의 일은 제가 진행하였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 전달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단 매 훈련 전에 감독님이 훈련할 내용을 태국코치와 미리 상의를 하기위해 미팅을 합니다. 그 미팅에 저도 들어갑니다. 미팅에 들어가서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태국 코치한테 제가 전달을 해야 합니다. 이게 첫번재 미션입니다.
하지만, 감독님이 한국말로 하시는 이야기엔 많은 축구용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씩 축구용어를 모르면 감독님께 물어보곤 했었는데, 이 때 참 어려웠었습니다.
또한, 경기 후 파타야 유나이타드가 승리하거나, 경기 전 매체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있을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그 인터뷰를 담당해서 진행을 합니다. 때론, 감독님과 같이 앉아서 감독님께 질문을 말씀해드리고, 그 말씀해주신 내용을 통역으로 제가 말하곤 했습니다. 태국의 프리미어리그 자체가 엄청 크거나, 주목받거나 하지 못해 대서특필되거나 하진 않지만,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면 재미있곤 했습니다.
2002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 우리는 모두 하나되어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응원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국이 축구로 단합되긴 했으나, 2002년 만큼의 열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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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열정과 응원을 통역일을 하면서 되 찾았었습니다. 실제 그라운드에서 경기가 진행될때, 그리고 이 경기는 태국에 방영되는 경기입니다. 파타야 유나이티드는 솔직히 태국 프리미어리그에서 ToP급의 팀은 아닙니다. 대략 중하위 레벨의 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앙텅과 연관된 구단이며, 많은 유망주들이 많은 팀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은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매번 고군분투 하시는데, 경기가 잘 안풀리면 상기된 모습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을 넣을때면, 그리고 승리할 때면 모두가 모두 기뻐했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기가 끝나면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타임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을 누비면서 팬들을 보는 그 즐거움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대게, 홈구장에서 경기가 끝나면 구단 전용 버스로 방콕으로 다시 복귀를 합니다. 그리고, 그날 경기에서 승리를 하면 정말 뜨거운 분위기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고, 그날 경기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좀 조용한 버스틀 타고 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에서 수판부리를 3:1 로 꺽은 후, 팬서비스!
아쉽게도 당시 쓰던 핸드폰이 갑작스럽게 부숴지면서 많은 사진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한두장의 사진이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단의 통역사로 일했던 것은 참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현재 파타야유나이트드의 성적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1부리그에 있죠. 지금 당시 한국 감독님은 한국으로 귀국하셨고 지금은 다른 감독님이 감독역할을 수행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저도 구단과 연락을 그만두었기에 더이상의 사정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밤의 꿈처럼 당시 기억은 새롭고 아직도 설레입니다. 감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알수 있엇던 시간이었고, 감독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선출로써 인천유나이티드의 최고 전성기에 뛰신 분이었습니다. 감독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저는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경유지로 가는 비행기에 있습니다. 로마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방을 빼고나니 뭔가 시원섭섭 하더라구요. 물론, 새로운 시작을 해야 겠지만, 지난 시간들에 이미 적응을 해서그러니, 새로운 시작이 설레거나, 기대되기보다는 두렵습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도 그곳의 이야기를 자주 전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방부터 구해야겠네요 :) 그리고, 올해 목표는 태국어로 정했습니다. 가서 맘잡고 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