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발음 하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지난 1편에서 간략히 언급했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무도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다면>을 읽어 보시기 바란다. 이번 글에서는 영어 발음이 아주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영어 발음 고수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작은 팁을 알려주고자 한다. 물론 이 팁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단숨에 발음 고수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발음 고수가 되는 길에 첫걸음을 내디딜 수는 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말과 달리 영어에서는 강세가 중요하며, 음의 높낮이나 말소리의 크고 작음이 큰 역할을 한다는 얘기는 지난 시간에 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영어에서는 음의 길고 짧음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말에도 음의 길이에 따라 뜻이 바뀌는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얼굴에 있는 ‘눈’은 그냥 짧게 [눈]이라고 하지만, 겨울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길게 [눈:]하고 발음해줘야 한다. 우리가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은 [발]이고, 햇빛을 가리기 위해 문에 걸어 놓는 것은 [발:]이다.
영어 단어는 발음의 길고 짧음에 굉장히 민감하다. 모두가 단어의 장단음을 지켜서 발음하기 때문에, 그걸 무시하고 발음하게 되면 상대방이 못 알아듣거나, 다른 단어로 오해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날 수 있다. 분명히 R도 열심히 굴렸고, 어려울 게 없는 단어인데도 원어민이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다면 자신이 단어의 길이를 제대로 신경 써서 발음하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슅]하고 말하면 원어민은 shit이라고 말한 줄 알고 “이런, 제길.”하고 욕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사실 당신이 하려던 말은 침대 sheet나 종이 한 장 (a sheet of paper) 혹은 액셀 시트(Excel sheet)였는데 말이다. Shit은 [슅], sheet은 [쉬잍]이라고 해줘야 한다. 아래에 나오는 단어들의 발음을 비교해보자.
sheep (양) [쉬잎] - ship (배) [슆]
eat (먹다) [이잍] - it (그것) [잍]
heat (열) [히잍] - hit (때리다) [힡]
seat (자리, 좌석) [씨잍] - sit (앉다) [씥]
green (초록색) [그뤼인] - grin (웃다) [그륀]
이렇듯 R이나 f 등 기본적인 발음뿐만 아니라, 단어의 강세나 음의 길이까지 신경 써서 발음해준다면 발음 고수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k는 [ㅋ] 발음이 나고, g는 [ㄱ] 발음이 난다는 건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자기가 아는 규칙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만하는 순간 당신에게도 ‘깨씹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어느 외국인이 한글을 배울 때 겪었던 일이다. 한글은 뒷글자가 ‘ㅇ’으로 시작하고, 앞글자에 받침이 있으면 그 받침이 뒤로 넘어가며 발음이 된다. ‘발음’은 [바름]으로, ‘맛있다’는 [마싣따]로 발음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규칙을 알고 있었던 한 외국인이 친구들과 고기를 먹으러 갔었는데, 한참 맛있게 고기를 먹다가 야채가 떨어지자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이모, 여기 깨씹 더 주세요!”
깨씹?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깻잎’이었다. 하지만 ‘깻잎’이 [깬닙]으로 발음된다는 걸 몰랐던 그는, '깻'에 있는 ‘ㅅ’ 받침을 뒤로 넘겨서 - 그것도 된소리로 바꿔서 - [깨씹]이라고 말해버린 거다. 한글을 아니까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외국인의 실수담이 그리 낯설지 않은 건 왜일까? 알파벳이 내는 발음은 다 안다고 자만하다 보면 누구라도 이런 ‘깨씹 사태’를 겪을 수 있다. 아는 알파벳도 두드려보고 발음하자.
단어들 중에는 생김새와 딴판으로(?) 다른 발음이 나는 경우가 있다. 아래에 있는 단어들은 z가 [z] 발음이 아니라 우리말의 [ㅈ]과 비슷한 발음이 난다. 우리말로 표기하는 데 한계가 있긴 하지만, 거의 우리말 [ㅉ] 발음이 난다고 보면 된다. 이런 단어들은 모두 외래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pizza와 mezzo는 이탈리아에서, zeitgeist는 독일에서 건너온 말이다.
pizza (피자) [핏쩌]
mezzo(중간 정도의) [메쪼우]
zeitgeist (시대정신) [짜잍가이ㅅㅌ]
양들만 침묵하는 건 아니다. 스펠링 중에서도 침묵하는, 묵음인 것들이 있다. Know(알다)나 knife(칼)에서 맨 앞에 있는 k가 발음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의외로 이런 단어들이 꽤 있으니 항상 잘 확인하자. 예전에 ‘찬장’이라는 뜻의 cupboard를 보고 ‘컵보드’라고 발음했던 적이 있다. Cup도 아는 단어고, board도 아는 단어니까 당연히 ‘컵보드’라고 발음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이 단어는 p가 묵음이다. 여러분은 나처럼 지레짐작하지 마시고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꼭 들이시길.
a) 단어 첫 글자가 묵음인 경우
knob (문 손잡이) [납]
gnaw (갉아먹다) [너어]
honor (영광) [아너]
psychology (심리학) [싸이칼러쥐]
b) 단어 끝 글자가 묵음인 경우
climb (오르다) [클라임]
column (기둥) [칼럼]
corps (단체, 부대) [커어]
c) 단어 중간이 묵음인 경우
receipt (영수증) [리씌잍]
hasten (서두르다) [헤이쓴]
doubt (의심하다) [다웉]
salmon (연어) [쌔먼]
aisle(통로) [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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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서는 ‘아’는 어디에 와도 항상 ‘아’ 발음이 나지만, 영어에서는 a가 단어에 따라서 ‘아, 애, 어, 에이, 에어’ 등으로 다양하게 발음된다. 우리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a 다르고 a 다르다”고나 할까.
a) ‘아’로 발음되는 경우
arm [아암] army [아미]
b) ‘애’로 발음되는 경우
apple [애쁠] agony [애거니]
c) ‘어’로 발음되는 경우
around [어라운ㄷ] among [어멍]
d)‘에이’로 발음되는 경우
age [에이쥐] agency [에이전씨]
e) '에어'로 발음되는 경우
area [에어리어] ariel [에어리얼]
하나의 알파벳이 단어에 따라 여러 개로 발음되는 경우는 꽤 많다. 위에 언급한 a도 그렇지만, 주로 모음들은 단어에 따라 다양하게 발음이 변한다. 그런데 자음 중에서도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아니, 한 알파벳인데 두 개로 발음되는 것이 있다. G는 뒤에 a, o, u 모음이 올 때는 대개 [ㄱ] 발음이 된다. 하지만 뒤에 e, i, y 모음이 올 때는 때에 따라서 [ㄱ]이 되기도 하고 [ㅈ]이 되기도 한다.
a) G가 a, o, u 모음 뒤에서 [ㄱ]과 [ㅈ]으로 발음되는 경우
gas (가스) [개ㅅ]
go (가다) [고우]
guess (추측하다) [게ㅅ]
algae (조류, 해조) [앨쥐]
b) G가 e, i, y 모음 뒤에서 [ㄱ]과 [ㅈ]으로 발음되는 경우
get (얻다) [겥]
gene (유전자) [지인]
girl (소녀) [걸]
giant (거인) [자이언ㅌ]
gynecologist (부인과의사)[가이너칼러지ㅅㅌ]
gym(헬스클럽) [쥠]
영어 발음을 좋게 만들어줄 사소한 팁, 그 마지막은 바로 “소리 내어 읽기”이다. 영어를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차마 못 들어줄 발음이라 민망하기도 하겠지만 의외로 꽤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소리를 내어 읽으면 자신이 그 단어의 발음/강세 등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바로 확인이 되니까.
영어 실력에 비해 발음이 안 좋은 사람들은 대개 영어를 눈으로만 읽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아는 단어도 많고, 빠른 시간 안에 독해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발음을 연습하지 못해서 그렇다. 읽고 해석해야 할 영어 기사가 넘치겠지만, 토익이나 토플 시험을 보려면 빠른 시간 안에 눈으로 읽고 요점을 잡아내는 게 중요하겠지만, 영어 발음을 좋게 하고 싶다면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발음이 뭣이 중헌디? 하는 분이 계시다면 아래 예문을 살펴보자.
유재석 씨 사인을 받고 싶어요.
그 소방관의 사인은 과로사였다.
연예인은 공인인가, 사인인가.
감독이 도루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누구나 읽으면 뜻은 다 안다. 하지만 발음을 해봐야 ‘사인’의 정확한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 발음에 따라 뜻이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첫 번째와 네 번째는 [싸인]이라고 발음해야 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사인]이라고 발음해야 한다. 씌어 있는 글씨는 똑같은데, 발음에 따라 단어의 뜻이 바뀌는 것이다. 이를 극명하게 대비해보고 싶다면 네 개의 문장을 모두 [사인]이나 [싸인] 중 하나의 발음으로만 읽어보자. 굉장히 어색할 뿐만 아니라, 말 뜻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눈이 알고 있는 단어를 입도 알게 하자.
영어도 마찬가지다. 발음 그까짓 거, 하고 넘어가다 보면 막상 외국인과 만나 대화를 할 때 말 뜻이 통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니 독해가 가능하다고 해서, 단어의 뜻을 안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지 말고 반드시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하자. 언어는 눈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듣고 따라 말해야 한다. 소리 내어 읽으려면, 당연한 얘기지만 사전을 찾아서 발음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사전을 찾아보라는 말은 듣기 시리즈와 발음 시리즈 글을 올리면서 계속하고 있는 얘기라 지겨울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계속 같은 말을 한다는 건 이게 그만큼 기본적인 것이고,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바로 물어보고 확인해줄 원어민 친구가 상시 대기하고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사전을 끼고 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알아낸 정확한 발음으로 매일 10분, 단 5분이라도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이 글에서 지금까지 언급한 것들은 말 그대로 정말 ‘사소한 팁들’이다. 영어 발음에 관해서만 말하래도 책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고, 강의를 하려 해도 한 달 분량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나온 사소한 팁들이라도 잘 활용한다면 당신의 영어 발음도 한 뼘쯤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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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의 영어 이야기] #06. 영어 듣기 실전에 적용하기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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