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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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by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소설에 있어 줄거리를 요약한다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작업이다.
이야기의 영속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줄기로 된 이야기가, 빛줄기처럼, 물줄기처럼 죽~ 죽~ 뻗어 나가다가, 중간 중간 툭, 툭, 소리내며 끊기고 그 끊어진 부분의 빈틈을, 예의 그 ‘기묘함’으로 채운다.

물줄기의 물리적인 표면처리가 그 기묘한 부분에서는 마치 수은기둥을 잘라 붙여 놓은 것처럼, 흐물거리며 볼록 솟아 있듯 그 이야기의 영속성을 ‘하루키식’으로 지킨다.

그래서 하루키의 이야기는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하는, 분명한 이분법으로 독자들을 가른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현현하는 이데아>, <전이하는 메타포>의 두 권의 책이 챕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데아 : 플라톤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항구적이며 초월적인 실재를 뜻하는 말이다. 근대에는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 곧 ‘관념’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첫번째 챕터, <현현하는 이데아>는 주인공인, ‘내’가 아내와 헤어진 후 지방을 떠돌다가 정착해서 살게 된, 유명한 화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칩거하다 요양병원으로 가며 비워진, 시골 산골의 집에서 이데아인, ‘기사단장’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기사단장은, 이 소설속 주요 모티브인, 바로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 속 ‘돈나 안나’의 아버지이다. 희대의 바람둥이 돈 지오반니가 돈나안나에게 반해 그녀의 약혼자로 위장해 그녀를 범하려다 아버지에게 들키자, 결투 끝에 그를 죽이고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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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화가인 주인공 나는, 화가의 집 다락방에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그의 걸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고, 놀랍게도 그림 속 장면은 오페라 돈지오반니를 표현한 한 장면임을 이해한다.

집 뒷뜰의 잡목림 사이에서 밤마다 같은 시간에 기이한 방울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리자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나는, 역시 소설 속 중요 인물인, 건너편 골짜기를 맞대고 화가의 집과 마주한 저택에 사는, ‘멘시키 와타루’라는 백발의 신사와 그 사당을 파헤치고, 그 안에서 깊은 구덩이를 발견한다.

구덩이 안에 있던 방울을 집으로 가져온 날 부터, 기사단장은 ‘이데아’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그는 시공간에 의해 존재하는 형태가 아닌 완전한 이데아의 형태,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나 실재하지 않는 관념의 형태로서 그가 선택한 인간에 의해서만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그가 선택한 사람은 바로 나와, 멘시키가 생물학적으로 딸이라 의심하는, 내가 파트타임으로 그림을 가르치는 학원의 학생인 ‘마리에’라는 소녀이다. 기사단장의 발현은, 정해진 시간이나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가 필요할 때 불쑥불쑥 나타났다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아무 의미 없는 발현으로 보일지 모르나, 기사단장의 역할은 바로,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 속에 내재하는 ‘가능성’과 ‘실제’, 그리고 그 사이에 유영하는 ‘혼돈’의 영역을 이어주고, 그 이질적인 ‘수은주’같이, 비영속성의 줄기를 ‘영속성’의 주체로 변환시키는 작용을 한다.

즉, 금속성분의 이야기 영속성 속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점 하나가 이동을 위해, 수은 성분으로 연결된 곳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전이하는 메타포> 에서 마리에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리에의 가족은 물론, 멘시키와 나도 적잖이 당황한다. 그 열쇠를 쥔 쪽은 바로 이데아, 기사단장이다.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존재한다. 기사단장, 기사단장을 찌르는 돈 지오반니, 그 광경에 놀라는 돈나안나, 역시 놀라는 근위병인듯 보이는 사내, 그리고 오페라에는 등장하지 않는 미지의 인물, 나는 그를 ‘긴얼굴’이라 칭한다, 이 땅속에 구멍을 뚫고 얼굴만 내밀고 놀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데아인 기사단장처럼 현실세계에 ‘메타포’로 등장한다.

메타포 : 은유. 어원적으로는 전이(轉移)의 뜻이며 ‘숨겨서 비유하는 수사법’이라는 뜻이다. ‘A는 B와 같다’는 식의 비유가 아닌, 오히려 ‘~같다’는 비교를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A는 B다’는 식의 어법을 말한다. 어떤 언어표상을 그 본래의 의미와는 별도로, 전화(轉化)된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본래 표현되어야 할 내용을 간접적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마리에의 실종에 의문을 품고, 이데아인 기사단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는 지극히 추상적인 표현으로 메타포의 도움을 받을 것을 이야기한다.

메타포라니... 세상에 메타포라니...

이데아를 등장시키고, 그와 함께 아마다 도모히코의 걸작 속에 인물을 대거 등장 시키더니, 작가는 메타포(metaphore)라는, 이데아에 준하는 인물들이 이끄는 ‘공간’을 만들어서, 그들을 그 속에다 옮겨놓는다. 메타포이니, 말도 안되는 소리가 아니다.

그래서 바로 ‘긴 얼굴’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데아의 모습으로 나온 기사단장은, 도드라지는 물리적인 하나의 점을 영속성을 지닌 이야기 줄기의 일부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하고, 그 작업을 끝낸 후 ‘의식’을 통해 소멸되고, 나머지 인물들은 메타포의 형식으로 현실에서 제어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보내어 제 역할을 하게 하고, 바로 그 ‘긴 얼굴’은, 이도 저도 아닌 가이던스(guidance)의 역할을, 현실과 비 현실의 경계에서, 마치 그림 속에서 땅 속도 위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기묘한 얼굴을 내밀고 있듯이, 그만큼의 역할을 하기위함인 것이다.

곧 ‘도구’에 불과한 인물이다.

아마다 도모히코의 병실에서 메타포인 ‘긴얼굴’을 만난 나는, 기사단장이 제안한 일종의 ‘의식’을 마친 뒤, 메타포가 알려준 길로 들어선다. 그 곳에서 ‘이중메타포’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메타포 속 인물들, 뱃사공과 그림속 인물인 돈나안나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잡목림 속 나와 멘시키가 발견한 그 동굴 속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마리에는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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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은 ‘기묘함’에 설득 당하지 않으면 절대 즐길 수도, 심지어는 끝까지 읽어내기 힘든 소설이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이데아’와 ‘메타포’는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이데아와 메타포라니... 너무나도 흥미롭다. 그 사이에서 나의 위치 선정이 중요하다. 판단할 것인가, 그대로 그 수은으로 변환된 이질감 속에 퐁당 빠져 하루키가 가는 방향으로 헤엄칠 것인가.

이번 이야기는 여러모로 [1Q84]와 겹친다. ‘이데아 - 메타포 - 구덩이’는 현실 세계의 나와 마리에가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모든 장치들이 된다.

마치 [1Q84]에서 두개의 서로 다른 달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듯이 말이다.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공 ‘나’는 당연히 ‘덴고’로 읽히고, 소녀 ‘마리에’는 영락없는 ‘후카에리’다.

여전히 이번에도 매력 넘치는 인물들을 만들어 냈다. 주인공 나와 멘시키, 마리에를 비롯해, 마치 ‘나 방금 화장실 다녀왔어’ 라고 말하듯,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유즈’, 천재화가의 아들로, 나와는 같은 미대 동기인 ‘아마다 마사히코’, 그리고 마리에를 돌보는 이모 ‘아키가와 쇼코’까지...

어렵지만 참 매력적이다. 하루키는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소설은 젊고 강렬하다. 그래서 아직은 마음이 놓인다.

아저씨~ 노벨문학상 못받으면 뭐 어때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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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여전히 그의 소설에서 음악은 중요하다. 이번에 내가 즐겨 찾아들은 음악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흘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이다. 유튜브로 찾아보다 보면 관련된 음악들이 많이 나오는데, 꼭 다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곡들이 정말 많다.

여전히 애정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또하나의 역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