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다>
사타구니께가 간지럽다
죽은 형제 옆에서
풀피리처럼 울던 아기 고양이
잠결에 밑을 파고든다
그토록 곁을 주지 않더니
콧망울 바싹 붙이고
허벅지 안쪽을 깨문다
나는 아픈 것을 참아본다
익숙한 것이 아닌 줄을 알았는지
두리번거리다
어둠 쪽을 바라본다
잠이 들어서도
입술을 달싹인다
자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들의 꿈은 쓴가
더듬는 것들의 갈증 때문에
벽을 흐르는 물소리
그림자 밖에서 꼬르륵거리고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詩 허은실
아마 백번은 더 읽은 듯 하다.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박혀,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곁을 주지 않던 아기고양이가 잠결에 와서 내 사타구니께를 깨물더니 곤히 잠이 들어 꿈을 꾸는지 입을 달싹인다. 익숙하지 않은 곁을 두고 잠이 든 고양이의 꿈은 쓸까. 더듬는 것들의 갈증... 이란다. 타인을 더듬는 것들에게 갈증이 존재한다는 작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마음을 꺼내 놓는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 저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근데 요새는 시를 읽는 순간이 참 좋습니다. 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말이 없는 친구의 표정이며, 그 친구의 감상이며 시선입니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친구를 내가 혼자서 조용히 떠올리고 그의 짧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그 친구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하루를 떠올리며 가장 후회하는 시간은 바로,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던 하루의 어떤 시점입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내 마음이 많이 전달 된다는 것이 결코 아님을, 나이가 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깨닫습니다.
가끔은 옅은 미소가, 말없는 움직임이 그 친구의 의사이며 메시지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다다르면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인 것입니다.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시인의 상념과 말할 수 없는 고뇌를 보며, 급기야는 내가 처한 현실과 닮아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시는 계속 보아야합니다. 읽고 읽고 읽다보면 그러한 것이 보일 수도 있고, 비단 작가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독자만의 해석에 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내가 더듬고 있는 타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봅니다. 나도 모르게 내게 파고들어 늘 그러하듯 깨물며 잠드는 고양이가 있는지 떠올립니다.
그리고... 나는 그 고양이의 잠들며 입을 달싹이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지, 그 꿈을 궁금해 한적이 있었는지... 곰곰히 생각합니다.
그러다 깜짝 놀라, 내 지문은 아직 남아 있는지 들여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