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멋있는 행동’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대학시절, 기대하던 딸이 좋은대학을 못가서 엄청나게 실망하셨던 부모님께서는, 등록금만 대 줄테니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해라... 라는, 야속한 말씀을 하시고, 진심 그 다음 학비는 대주지 않으셨다. 쌍둥이 오빠와 동시에 대학을 들어가 학비 부담이 컸던 것도 있었겠지만, 공부 잘하던 딸이라 자랑하고 내심 기대하던 두분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괘씸죄까지 더해져, 나는 진심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고 알바를 뛰어야 겨우 학비를 메꾸고 생활비를 벌어 쓸 수 있었다.
교수님이 소개시켜주셔서, 계속 과외 알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때 수능시험에 제2 외국어로 불어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내가 속성으로 가르친 적이 있었다. 보통은 저녁에 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 쯤 집에 먼저 가서 어머님이 준비하신 다과를 먹으며 한 삼십분 이상을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 아이 집에 있는 엄청난 양의 책들에 압도 당해 그 책들을 하나 둘 집어들고 책을 읽기 시작 한 것이, 이렇게 내가 책과 그 시간을 즐기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요런 집에서 살고싶다.
이미 그때 나는 하루키에 빠져 하루키 말고는 글을 읽을 수가 없다는 말을 지껄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내가 겉멋이 들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학교가 마음에 안들었으니 당연히 같이 공부하는 애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써클에 가입해서 한동안은 정말 술만 쳐마실 때도 있었다. 마치 난 너네들과는 달라 라고 말하는 것이 책을 읽는 행위였다. 그러던 나에게 그 아이의 집은 나의 그런 허영심을 채워주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몇십분 머무르다가 나중에는 한 두시간을 먼저 가서 그집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고, 다행히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이신 어머님은 그런 나를 예뻐하시고, 책이 읽고싶으면 언제든지 와서 읽으라고 하셨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 집 서재의 한 칼럼을 차지하고 꽂혀있던 ‘폴 오스터’ 의 작품들, 그리고 그것들을 들고 읽어나가며 느끼던 그 모든 감정들이 오늘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들으며 되살아났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이동진 작가가 말하듯, 내가 폴오스터를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녔던 것은 사실은, 폴오스터가 좋다고 말하는 나 자신을 좋아했던 시절에 대한 내 추억이었다. 지적 허영심의 발로에서 나온 그런 말들. 그래서 나는 작년 한국에서 책을 주문할 때 나름대로의 프로젝트를 계획했었다. 리뷰를 뒤늦게 쓰고 공유하는 지금, 어린 마음에 읽어냈던, ‘폴 오스터’, ‘오르한 파묵’, ‘하퍼 리’, ‘보르헤스’ 등등의 글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보고 글을 써보자...
그렇게 주문해서 가져온 책들... 은 사실 아직 내 집 어딘가에 먼지를 맞으며 쌓여있다ㅋ. 얼마전에 폴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읽긴 했지만,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내놓기 손부끄러워 그냥 쓰는걸로 만족했고, ‘하퍼리의’ [파수꾼]도 읽고 메모만 해 둔 상태다. 나는 어떻게 그때 이 어려운 책들을 쉽게 쉽게 읽어냈을까...
팟캣 빨간책방에서 소개한 책은 이제 안읽을거라 생각했는데, 소개하는 책이나 내가 고르는 책이나 항상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같은 책이다. 이번 방송에서 다루는 책이 바로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이다. 이거.
오늘 1부 방송이 있고 다음주에 2부 방송을 하는데 그 전에 다 읽어볼 생각이다. 진심 폴 오스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내 자신이 좋았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의 글을 좋아했는지. 그리고 같이 주문한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어봐야지. 주문만 해놓고 손도 안댄 책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오늘의 글을 끝낸다. 젠장, 또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