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by 다이시지에
다이시지에는 중국계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영화 감독이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그의 첫 소설로, 중국 마오쩌둥 시대에 깡산골, 전기는 물론 시계가 뭔지도 모르는, 지역으로 "재교육"을 떠났던 그시대의 부르주아 청년 두명의 이야기이다.
(재교육: 하방이라고도 하는데, 국가권력의 관료화, 종파주의 및 주관주의를 방지하고 지식분자들을 개조하여 국가기구를 간소화 한다는 명분으로, 군간부들이나 지식층들, 그 자재들, 고등교육을 마친 지식인들을 지방이나 공장으로 보내어, 그곳 사람들과 기거하게 하면서 그들의 정신교육을 시키던 운동을 말한다. 쉽게 말해, 문화대혁명이라 불리는 이 대 변혁은, 국가에, 혹은, 국권에 독(?)이 되는 민중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없애고 독재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마오의 강력한 압제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입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하는...)
화자인 "나"와 "뤄"는 각각 유명한 의사와 치과의사를 부모로 둔 부르주아 계층의 자제들로, 부모들이 정부에 밑보이는 바람에 그만 재교육을 떠나게 된다. "하늘 긴 꼬리닭"이라는 시와 같은 이름의 촌락, 촌장의 독재아래 모든 노동과 질서가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문명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두사람은, 하루하루 고된 노동을 하며 견뎌내며 살아가다가, 그들과 같이 재교육을 떠나온 아이 "안경잡이"를 통해 그시대에 절대 금서였던 서양 문학서들을 읽게 된다. 발자크를 비롯한, 플로베르, 도스도예프스키 등의 소설에 매료되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문학의 색채와 매력에 푹 빠져있던 두사람이 이웃마을 재봉사의 딸 "바느질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중국 현대사의 한 시절, 최악의 금서를 손에 넣고, 그것 때문에 황홀해진 열일곱의 남자 아이들이 가지는 생각과 흥분이 있고, 그 두사람의 관계, 그리고 바느질소녀, 다시 그 세사람의 관계... 또한 다른 주변인들, 재봉사와 촌장... 발자크 소설이 이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이 소설의 가장 중심 모티브가 된다.
중국소설이 주는 장황함이나 복잡한 인물구조가 전혀 없다. 사실 작가가 중국인이긴 하나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만큼, 모든 문체나 분위기가 상당히 서구화 되어있고,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그것도 재교육이라는 말도 안되는 공산주의식 독재정치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가 이다지도 세련되고 매력적이라니... 아마 그 이유는 단 하나, 문화대혁명이라는 국가적인 대 사건을, 집단의 문제로 해석해서 연관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여기고,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발자크다^^. 발자크라니... 대학시절 나는 프랑스 문학에 심취했었다...기보담ㅋ 불문학도로서 제법 많은 양의 프랑스 고전문학을 접할 수 있었고, 그당시, 그동안의 내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닥치는대로 읽어대던 나에게, 프랑스 문학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충격이 있었다거나 하는건 아니었지만(왜냐면 서양문학을 통해서 독서에 빠져들었으므로), 한작품 한작품 읽을때마다 찾아오던 감상들은, 이렇게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마치 오래된 유행가를 들으면 그시절 그때가 조건반사처럼 따라 연상되듯이, 그시절 보았던 빅토르위고, 플로베르, 보들레르 등등의 이름을 되뇌기만 해도 나에게 새삼 펼치게 하는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있기에, 열일곱... 기억하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대다 못해 쿵쾅거리기까지 하는 그 시기를 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무지와 정치적 이기주의에 문학을, 정서를 억압당하고 원천봉쇄 당한 순순한 아이들의 가슴에...발자크라니... 그 충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를 간직하고서, 현재의 고통을 가득 안고 살아가지만, 아이들은 고통 속에 주저하거나 멈추지 않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느닷없이 찾아온 연애감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듯이, 처음에는 충격받고, 그다음은 꿈을 꾸었으며, 급기야는 삶 속에서 발자크를 만나고자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위험한 낙뢰를 견딘다.
'뤄'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미개한, 재봉사의 딸에게 발자크의 소설들을 이야기 해주며, 그녀의 머리와 가슴을 깨워주길 원한다. 실제로 그 소설들을 통해 무지하고 촌스럽던 바느질소녀는, 서양 사람들의 연애와 연애 감정에 매료당하는가 싶더니, 스스로 우물안에서 벗어나서 더 멀리 더 높이 내다보고자 한다. 그래서 도시로 떠난다. 내가 가진 아름다움으로, 지성을 더하고... 더 멋진 사랑을 하고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서... 그녀의 마지막 말을 통해 내 보잘것 없는 리뷰를 마감하고자 한다.
..(그 애가 말하길)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
그걸 이제야 알고는 길을 떠났다 바느질 소녀는... 그러나 그녀의 인생에서 너무나 빠른 시기에 적절하게 알았으니 다행이다.
너무 매력있고 예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