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로 “목화의 성”의 뜻을 가지는 파묵칼레는, 처음엔 목화경작지가 많은가 보다 싶었는데, 실제로 석회퇴적물의 모양을 잘보니 “아, 이래서 목화의 성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에서 많이 보았다시피 작은 우물이 겹겹이 옆으로 또 아래로 이어지는 형상에서 웅덩이의 바닥은 하얀 도화지에 마치 거미줄이 아무렇게나 붙여놓은 듯 신기한 형상에 시멘트를 풀어놓은 듯 찐득한 석회질이 발에 묻어난다. 벽은 석회질이 퇴적되면서 엠보싱 화장지의 볼록볼록한 형상처럼 약 1, 2 cm정도 표면에서 불규칙적으로 나와있는 형상을 가져서 뭉실뭉실 뭉쳐진 목화솜처럼 보이기도 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리 보이는지? 겨울이라 물이 모자란 웅덩이들이 제법 많다.
파묵칼레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히에라폴리스”의 일부로 도시가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데 평지로 떨어지는 경사부가 하얀 석회퇴적층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도시가 폭포수 위에 떠있는 듯한 형상이다.
이러한 기이한 장관 때문에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이후부턴 맨발로만 출입이 가능해졌고 뜨거운 온천수와 유황가스 등으로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듯하다. 3세기부터 로마황제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대형 목욕탕이 생기고 유명해지면서 각지에서 몰려든 귀족들과 환자들이 머무르며 관광과 치료를 받은 곳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여기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도 많아 목욕탕 바로 앞에 약 1,100개가 넘는 석관이 즐비한 공동묘지가 위치하는데 단일 규모로는 터키 최대의 공동무덤이라고 한다. 유독 석관을 많이 사용한 로마시대에는 단순히 돌로 네모지게 만든 수준을 넘어 예술품의 경지에 이른 석관이 많다.
한 때 인구가 8만명으로 150,000명이 들어가는 원형경기장이 있었다니 거주하는 인구에 비례해서 경기장 규모를 정해 건설하던 로마의 방식으로 보아 크게 번성했던 도시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주차장에 내려 조금 걸어가니 거대한 돌들로 만들어진 성벽을 지나 드디어 입성을 한다. 좌우로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즐비하고 1354년경에 이 지방 전체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의 거의 절반 이상이 폐허가 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는데 19세기에 들어 독일의 고고학자인 카를프만에 의해 발견되고 발굴사업을 통해 부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착한 시간이 5시 경으로 일몰이 다가오면서 약간의 바람까지 부는 통에 걸어가는 마음에 조바심이 가득해지는데 약 5분을 걸으니 드디어 눈앞에 사진으로만 봐왔던 파묵칼레의 온천수가 찰랑대는 웅덩이들이 보이는데 하늘에는 페러글라이딩 한대가 지나가는 참 평화로운 풍경이다.
작년에 갔었던 남해의 다랭이논처럼 아기자기한 웅덩이들이 파란색을 내뿜으며 신비한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이제 신발과 양말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어 가이드 알리에게 건네주고는 족욕을 하러 간다. 온도는 약 35도 정도로 제법 따뜻하지만 추운 날씨로 물이 흘러가는 좁은 수로에서는 제법 뜨겁지만 석회우물로 가면 미지근한 정도다. 이곳은 아주 미끄럽기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조심해서 걷는 게 좋고 원하시는 분들은 호텔의 온천탕이나 폐허가 된 유적지에 온천수를 흘려 만든 훌륭한 목욕탕 (무너진 기둥들이 물속에 그대로 있는)에 가보는 것도 좋지만 겨울에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웅덩이 물은 미지근하고 사진을 찍으러 나가면 채 2분이 못가 추워 다시 뜨거운 물이 흐르는 수로로 뛰어든다.
현재는 호텔 등지에서 온천수를 많이 끌어다 쓰는 통에 실제 오른쪽 웅덩이들은 물이 가득하지 못한 상태였고 계속 물을 흘려주는 왼쪽 웅덩이들은 그나마 조금씩 흘러내리는 모습인데, 이제는 펌프로 퍼 올려 내린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사진들이 빛의 부족으로 그 색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어 아쉬운데, 낯에 가거나 여름에 가시는 분들은 반사되는 빛이 강하다고 하니 선글라스를 가져가고 발수건 하나 가져간다.
추위에 맨발로 구경하느라 시달렸는지 조금 일찍 도착한 호텔에서 우린 바로 라면 한컵씩 후딱 해치운다. 식사 후에는 호텔에서 온천욕을 하고나니 피로가 물밀듯 밀려오지만 난 사진 정리하고 짐정리한 뒤 맥주 한잔 하며 골아떨어진 아이들 얼굴을 보는데 체력은 점점 고갈되어 가지만서도 참 잘왔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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