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딱 하나 있다. 고현정이 보디가드였던 이정재가 죽은 후 의자에서 일어서며 무심코 '재희야 가자' 하던. 곧 재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의자에 주저 앉는 그 장면 그 대사는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참 인상적이어서,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정재의 작중 이름인 재희가 똑똑히 기억난다.
어제 잘시간이 되어 무심히 1층에 내려갔다.
지난 7년여간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는 물을 마시고 어딘가 잠들어있는 순심이를 깨워 쉬를 시키는 일이었는데, 나는 며칠째 물을 마신 다음 거실을 휘휘 둘러보고 나서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럴 때면 매일 아이들과 부비적 거리는 그 거실이 무척 낯설다.
슈타인즈 게이트란 애니에서, 주인공인 린타로는 과거를 바꾸는 기계를 얻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바꾼 과거로 인해 사랑하는 친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평행 세계로 넘어가 버리는 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은 거실인데, 순심의 부재만으로도 다른 평행 세계마냥 이질적이고 거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