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랑게빈? 랑주뱅? // Feat 마리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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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hastic differential equation 을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통계물리를 공부한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Langevin equation 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폴 랑게빈, Paul Langevin-불어식 발음 폴 랑주뱅 은 뛰어난 물리학자로, 피에르 퀴리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늘은 Langevin equation 이나 그의 다른 업적들에 대한 것이 아닌, 그와 퀴리 사이의 스캔들을 하나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는 한 때 프랑스 사회에서 엄청난 핫 이슈가 된 문제고 심지어 퀴리 부인의 노벨 화학상까지도 영향을 주었던 그런 문제이다.

앞서 서술한 것 처럼 랑게빈은 피에르 퀴리의 학생으로써, 그와 물체의 상자성, 반자성에 대한 연구를 했다. [피에르 퀴리는 방사선 연구 이전에 결정학과 자성체 연구의 전문가였다.]

피에르는 젊은 나이에 (1906년, 47세) 교통사고[당시에는 마차가 교통수단이었다.] 로 숨을 거두었다. 피에르는 랑게빈의 학문적 스승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스승이었고, 그의 죽음은 랑게빈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런 그가 스승의 부인인 마리 퀴리를 위로하면서,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됬다.

바로 마리 퀴리과의 염문설

랑게빈은 학자로써, 교수로써 뛰어났지만, 가정생활은 불행했다. 아내, 처가와 항상 싸웠기에 불행했다. 불행한 가정생활과 정신적 스승을 잃은 그는 자연스럽게 마리퀴리와 친해졌고,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고 만다.

1910년 그들은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주로 편지를 통해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1911년 그들의 이런 비밀 연애는 결국 드러나게 되었고, 언론사를 통해 폭로되고 만다. 이 스캔들은 당시 프랑스에 엄청난 문제가 되었는데, 인터뷰를 한 랑게빈의 장모 의 중심으로 "단란한 프랑스 가정을 파괴한 외국 여자" 란 프레임으로 프랑스 사회가 난리가 난다. [마리퀴리는 폴란드 출신이다]


마리 퀴리-위키

[저기서 말하는 가십거리가 바로 이 스캔들이다]. 1911년, 마리퀴리가 노벨화학상에 내정되었다. 노벨위원회는 마리에게 노벨상을 거절하라는 편지를 보내지만 마리는

노벨상은 과학자의 사생활이 아니라 업적에 주어지는 것이다

며 노벨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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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ㅋㅋㅋ]

여담으로 랑게빈과 퀴리 가문의 인연은 계속 된다.

마리퀴리의 첫째 딸 이렌의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랑게빈이고

그들의 손자들은 결국 결혼했다.

학창시절, 랑게빈 방정식을 배울 때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해줬으면 좀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ㅋㅋㅋㅋ

[랑게빈 방정식은 확률을 기술하는 방정식이다. 물리적으로는 브라운 운동을 확률적으로 기술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Stochastic 확률론이 열리기도 한다. 또는 통계물리나 통계학 관련 수업에서 이 방정식이 등장하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