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대화법

beoped(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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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산파술, 혹은 대화법, 혹은 문답법이라고 불리는 기술은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능력을 끌어내는 기법중 하나이다.

물론 이 대화법은 긍정적으로는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지만, 부정적으로는 그 사람의 무지를 깨우치는 역할을 하여 자존감 높았던 당대의 학자, 정치인들을 기분 나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대화법이 아테네의 많은(?) 사람들을[고위 정치가들?] 불쾌하게 했고, 그것이 결국 그의 사형 판결을[당시 아테네는 투표를 통해 판결을 결정했다.] 정당화 했다. [참고로 그는 그의 재판을 담당한 501명의 배심원 중에 281대 220표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의 사형 판결은 361명의 동의를 받았다. ]

소크라테스의 철학의 원칙은 소위 "무지함의 지" 로 불린다.

자네는 스스로는 지혜가 있으며 여러 가지 것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야. 그러한 자신의 무지함을 알아야 하네

그는 이러한 무지함을 질문을 통해, 자가당칙의 방법으로 깨닫게 했다. 그의 방식은 당대 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반발을 샀다. [그와 대화를 한 사람들은 자가당착에 빠져 그들 스스로의 무지함을 폭로당한 것에 대해 분노하였다. 또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방식은 당시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지지를 받았고, 그러한 흐름은 그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

당시 아뉴토스란 한 보수 정치가는 메레토스라는 젊은 시인으로 대리자로 하여 소크라테스를 고소했다. 그렇게 그는 유죄 판결을 받고, 그 후엔 사형 판결을 받고 결국엔 독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사실 아테네에는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에, 그에겐 사형 보다는 도편추방제를 선고받고 아테네를 떠날 수 있었는데, 소크라테스를 두려워한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은 그가 아테네를 떠나도 아테네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거라 생각하여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독약을 받기 전에 외국으로 도피 할 수 있었으나, 그리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영혼 불멸과 사후세계를 믿었기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음은 영혼을 육체에 해방시키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담담히 독약을 받고 침대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 끝으로 실제 소크라테스는 뚱뚱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