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3
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분 다 세상을 떠났다. 애초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투병하고 있었기에,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을 일찍 했고그 뒤 내가 태어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또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거기다가 어머니는 나에게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해주시지 않았고, 가끔 외삼촌이 오고 이모할머니네 댁에 가서야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알았던 것은 외할아버지네 집이 명문가였다는 것, 그 정도였다.
오늘 외증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외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게 됬다.
나의 외가는 양반 명문가였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의 집안도 일단 양반집 집안이라고 하나, 결국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농촌 마을의 지방유지(?) 정도인 것 같다. 나의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고, 농촌에서 벗어나 서울로 올라왔으니가... 농사를 지어서 라고 해야하나, 솔직히 조선시대에 양반은 1프로 였고 오늘날 다 양반의 후손 이러는 것들은 근대화 되고 족보를 사고 팔고 한 것에서 온 거니까, 족보를 산 건 아닐까 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조상님들 시제도 하고[나도 몇번 불려나갔다.] 할 것들은 다 하긴 하는데, 잘 모르겠다. 시제 때 보면 누가 우리가문 족보를 샀더라 이런 이야기들도 듣고 했는데, 뭐 잘난 것도 없어 보이는데... 과거에 양반이었으면 뭐하나 지금 다들 힘들게 사는데... 아무튼 예전에 나의 조상들이 궁금해 그나마 정보가 많은 친가 쪽 조상들에 대해 조사를 해본 적이 있다. 역사에 남았던 분들이 있긴 했지만, 결국 유배를 가고, 사약받고 이런 이야기들만 나왔다. 권력과는 먼 그런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외가쪽 집안들은 권력과 가까웠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두 양반집 자제의 첫째 였다.
특히 외할아버지네 가족은 일제시대에도 불구하고 종로에 집과 땅이 있었다고 한다. [듣기에는 관료였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친일파와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곤 했다. 이에 대해 어머니께 친일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으니 그런게 뭐 의미가 있냐고 하셨다. 친일파 사전 이런데에 있지도 않을거라고, 친일파 정도 됬을 정도면 지금 이렇게 살았겠냐며.. ]
외할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재산은 외할아버지의 고모가 관리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나, 재산을 다 날렸다고 한다. 결국 외할아버지는 동생들과 모두 흩어지게 되고 [고아원으로 갔다고 한다. ] 외할아버지는 이런저런 일 이후에 결국 먹고 살기 위해 버스 운전을 하셨다고 한다. 항상 술을 달고 사셨고, 신세한탄을 하시며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다.
외증조할머니는 양반집 유수의 첫째 딸이었고, 외할머니는 그런 외증조할머니의 첫번째 딸이었다. 어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외증조할머니의 친가에 간 적이 있다고 했는데, 엄청난 집이었다고 한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나,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많이 사랑했다고 한다. 없는 살림에도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부족한 것 없이 먹이고 입히셨고, 자기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내가 태어날 때 나와 엄마를 돌보셨다고 한다. 정작 본인이 암투병으로 돌아가실 때에는 어머니가 아닌 외증조할머니를 불러 간호를 부탁했다고 했을 정도로 어머니를 고생시키지 않도록 애쓰셨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이 태아났을 때, 외증조할머니가 어머니를 산후조리하고 나와 동생을 보살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족은 아버지를 따라 전국 각지로 이사를 떠나게 되었고, 그렇게 외가와 차츰차츰 멀어졌다가, 중고등학생 때야 분당으로 이사오면서 다시 외가와 가까워졌다.
이모할머니와 교류를 시작하며, 종종 외증조할머니네 집에 들리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증조할머니네 집에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일어났다. 돈과 가족과 욕망에 관련된 사건들... 외가가 가지고 있던 땅값이 오르고, 자식들은 사업한다고 돈을 빌려다 쓰고, 등등... [이모할아버지가 나의 외가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 같다. ] 막장 드라마에 나올만한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이 외가에 터졌다.
결국 외증조할머니는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쫒겨나게 되었고.... 자식들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한 3-4년 쯤 됬나 자식들 집에서 지내다가, 5달 전쯤 요양원에 들어가셨고 결국 이렇게 돌아가셨다.
돌아가기 마지막에 누군가 자기를 찾아왔다고, 죽을 때가 됬나보다고 하셨다고 한다. 특히 나의 외할머니를 찾으셨다는데, 찾으시면서 아 외할머니 죽었지 하면서... 외증조할머니 역시 남편을 일찍 보내고 자식들도 보내고 [외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한 5-6년 전에 외할머니의 첫째 남동생-[나에겐 어떤 이모할아버지인가?] 가 돌아가셨다. 또 외할머니의 동생을 어렸을 때 잃으셨다고 한다. ] 고생하면서 사셨다. 어떤 말투였는지 모르겠으나, 증조할머니께서 자신이 참 힘들게 고생하면서 살았다는 말을 하셨다고...
오늘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술을 마시며 외증조할머니에 대한,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장례식장과 병원을 싫어하신다. 어머니 역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이른 나이에 보내셨으니, 또 두 분 다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가셨으니까... 게다가 어머니의 친한 친구 역시 정신병원에 입원 등등...]
원래 우리가족 모두 장례식장에 가려고 했는데, [가면 끝까지 있지 않을까?] 어머니께서는 내가 장례식장에 가는걸 원하시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설날, 아무래도 친가에 제사는 지내러 가지 못할 것 같고, 장례식 다 끝나고 나면 설 연휴도 끝이 날 것 같다. 어머니 직장에서는 외손녀라 따로 유급휴가(?) 이런게 나오지 않기에, 그냥 휴가를 냈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번 소식을 듣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나 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두분 모두 한참 젊었을 때 돌아가셨으니, [이미 어머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었다.] ..
아무래도 어제 찾아가 볼껄 못간게 마음에 걸리시나 보다.
ㅠㅠ
아, 이 지금 내 생각을 보존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감정, 심정을 블록체인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