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집은 오랜만에 토론장이 되었다. 동생이 지난주 친구와 만나 홍콩 사태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이 화두였다. 홍콩 사태와 우리나라의 5.18 그리고 전두환 이야기가 나오며 나와 동생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고 고점을 향해 갈 때 쯤 아버지가 집에 도착했다.
나는 홍콩 사태는 시진핑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대하는 태도 중 하나이며 이들은 공권력, 더 나아가 군대를 이용하여 그들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 운동을 떠오르게 한다고 이야기 했다.
아버지는 주방에 담가놓은 술 한병을 꺼내 한잔을 마시더니 이야기를 꺼내셨다.
홍콩과 광주는 그 역사적 배경부터 다르고 상황 부터가 아예 다른 이야기다. 사실 광주 보다 오히려 부산과 서울이 민주화 운동을 활발히 했었지만, 전두환 정부는 그들을 김대중의 기반이기도 하고 부산과 서울 보다 진압하기 쉬웠던 광주를 선택하여 일을 버린 것이라고 광주는 희생양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당시 그 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 중 한명이다. 아버지 친구들은 길가에서 총을 맞아 사망하거나 크게 다쳤다. 아버지는 운이 좋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랑 나름 친했던 친구 분은 총에 맞아 사망했고 국립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아버지 친구 분 중에 아직도 팔에 총알이 박혀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국가유공자가 되서 나라로부터 조금의 돈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기의 친구, 형, 누나, 동생이 다치는데 어떻게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고, 그 당시 전라도에서 일어났던 만행들이 하나 둘 씩 밝혀지고 있는데, 아직도 전두환 및 당시 군부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다며 저렇게 살고 있다며, 또 그들을 우호하는 세력들이 스스로를 보수라며 주장하고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 웃기지 않냐며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친일, 군사독재, 등 아직도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한 적이 없다. 언제까지 이 것을 뒤로 미루기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성장을 외치며 우리의 역사를 가리기만 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역사를 과오를 청산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또 변절자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다. 아버지와 같이 데모를 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변절을 하였다고 한다. [아마 여기서 말한 변절이란 것이 지금으로 말하면 자유한국당 입당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 같이 데모를 했던 사람 들 중에는 후에 전라도 것들이라며 광주민주화 운동을 흠집냈던 사람들도 있었나 보다.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그 때 거기에 있었었냐며 그 사람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했고, 아버지와 친했던 사람이지만 그 이후로 아버지는 그 사람과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똑똑한 사람일 수록, 진실을 아는 사람일 수록, 변절하기가 쉽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으셨다. 그들이 남들보다 더 진실을 알기에 쉽게 변절한다며 더 많이 알 수록 가치관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광주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라던지, 광주는 이미 보상해준게 아니냐던지 , 지겹다 등의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셨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아직 역사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연 언제 역사 청산은 이루어질까
진실이 밝혀 졌음에도, 왜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숨기고 부정하는 것일까
중국 문화대혁명 때 수천만 명이 희생당하고 엄청난 피를 흘렸다. 이런 갈등, 이런 불화, 이런 피를 흘린 사건이 있었는데도 (책임자) 몇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한 사람도 처벌하지 않았으며, 등소평이 중심이 돼 그 원로들을 다 대접하고 활용했다. 거기에 비하면 광주 사태는 아무것도 아니다. - 95.10.5 경신회 모임에서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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