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KBO 전설의 팀 "해태 타이거즈" - 1편

batman8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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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요즘 평창 올림픽이 한창인데 응원들 열심히하고 계신가요?ㅎ 여건이 된다면 직접가서 응원을 하고싶지만 추운걸 안좋아해서ㅠ 하지만 스포츠는 현장에서 봐야 제맛이죠 ㅋ
그래서그런지 아직도 1달넘게 남은 2018 프로야구가 더욱더 기다려집니다. 양현종 선수가 2017년 마지막 공을 던지고 양팔을 번쩍든순간이 어저께같은데 벌써 3달보름이지났네요.. V11! 현재 기아타이거즈 선수들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심히 올시즌 준비를 하고있다하죠.. 스프링캠프에대한 포스팅은 다음에 하기로하구요~,
저의 첫 포스팅은 기아타이거즈의 전신 전설의 팀. 해태 타이거즈에대해 포스팅을 하려고합니다!! 포스팅을 하기위해 여러자료들을 찾아봤는데 타이거즈 골수팬이라고 자칭했던 제가 몰랐던 이야기도 많아서 신기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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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해태타이거즈라는 팀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보겠습니다.
민주화 열기로 뜨겁던 1980년 개통령 두환이는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위해 프로야구팀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때에 무슨노메 프로야구냐는 말이 많았지만 개통령 두환이 말에 복종해야하는 부하들은 각지역을 돌며 프로야구팀 유치를위해 발벗고 뛰어다닙니다. 먼저 MBC청룡(서울지역), 삼미 슈퍼스타즈(인천,경기,강원 지역),OB 베어스(대전 충청 남북도), 삼성 라이온즈(대구 경북), 롯데 자이언츠(부산 경남) 이렇게 모기업을 기반으로한 지역 프로야구 5개팀이 만들어지게됩니다. 하지만 힘든 살림살이와 민주화운동으로 두환이에대한 반발이 심했던 광주 전라남북도에서는 프로야구팀을 창단할 기업을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 광주지역의 대표기업이던 금호그룹이 야구팀을 창단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 무산되고, 또다른 기업인 해태의 박건배 회장이 후배였던 일명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을 선임한다는 조건으로 드디어 광주 전라도 지역에도 프로야구팀이 탄생하게 됩니다.

  • 1982년 1월 30일 해태타이거즈 프로야구팀 공식 출범.
    실업 야구로만 펼쳐지던 한국야구는 1982년 3월27일 6개팀으로 이루어진 프로야구가 개막하게됩니다. 이때 해태타이거즈는 6개팀중에 가장 적은 15명으로 경기를 치르게되는데 첫경기는 28일 부산 롯데전, 홈 무등야구장 첫경기는 29일 MBC청룡. 하지만 개막후 김동엽 감독은 당시 코치 유남호 등과의 불화로 13경기(5승8패)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게되고, 결국 조창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성적 전기4위, 후기4위 38승 42패로 해태타이거즈의 첫 시즌을 마치게됩니다.이때 창단멤버가 그유명한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차영화 김일곤등이 있습니다그해 겨울 구단주인 박건배 회장은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코끼리 김응룡 감독(전 한일은행 실업팀감독)을 선임시키며 해태타이거즈의 전설을 써나갈 준비를하게됩니다!!
    --# 김성한 (1982~1995)
    우리들에게 오리궁둥이로 유명한 김성한 선수는 투타 분업이돼있는 현시대의 프로야구에서 있을수없는 진기록을 쓰게되는데 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한시즌기준 투수로 10승 타자로 13홈런, 10도루,타점왕69개, 3할타율로 최초 10승-10홈런-10도루, 최초 20홈런-20도루, 최초 30홈런, 등 프로야구 원년 최초의 기록들을 써나갑니다. 또한,시즌 MVP 2회 (85',88')1루수 골든글러브 6회(85',86',87',88',89',91'), 올스타전 선발출전 10회, 미스터올스타(92')
    한국프로야구에서 지명타자없이 9명만으로 한경기를 치른게 딱 2차례있는데 이 2차례가 김성한 선수가 투타를 겸하며 투잡으로 뛰었던 경기입니다.한국의 베이브루스급 활약으로 해태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김성한 선수라고 봅니다.

--- 1983년 구단 첫 우승! V1
해태타이거즈의 감독을 맡은 김응룡 감독은 팀의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기위해 엄청난 훈련을 겨울내내 시키며 강한 타이거즈의 정신을 뿌리내리게합니다. 82년의 해태가 타격의 팀이었다면 83년에는 투수력의 양적 질적 향상으로 프로야구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해 전반기 1위를 확정한 해태타이거즈는 후반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됩니다.팀의 4번타자 김봉연 선수의 교통사고. 결국 전기1위였던 해태는 4위로 밀려나 후기 1위팀인 MBC청룡(전 LG트윈스)을 한국시리즈에서 만나게 됩니다. 김봉연 선수는 사고당시 동승자가 사망하는 큰 사고였음에도 치료후 300바늘을 꿰멘 자국을 가리기위해 텃수염을 기르고 후반기 복귀, 한국시리즈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큰공헌을 세우며 시리즈MVP까지 차지하게됩니다. 아마도 김봉연 선수의 부상 투혼이 해태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되어 83년 우승을 하지않았나 싶습니다.

  • 해태타이거즈vs MBC청룡 전통의 라이벌 탄생
    1983년도 한국 프로야구 통합 순위표
    순위/ 팀-100경기 / 승 / 패 / 무
    1위 MBC청룡 55 43 2
    2위 해태타이거즈 55 44 1
    3위 삼미 슈퍼스타즈 52 47 1
    4위 삼성 라이온즈 46 50 4
    5위 OB OB 베어스 44 55 1
    6위 롯데 자이언츠 43 56 1
    ===
    위 순위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MBC청룡과 해태타이거즈는 1패와 1무승부 차이밖에 안날만큼 두팀이 팽팽한 시즌을 치른걸 알수있습니다. 83년은 LG트윈즈(전 MBC청룡)vs KIA타이거즈( 전 해태타이거즈) 전통의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MBC청룡의 감독은 원년 한달간 해태감독이었던 김동엽 감독이었습니다.
    1위를 차지한 전반기 가장 중요한 경기가 있었는데요. 삼미 슈퍼스타즈를 상대로한 광주 홈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김성한의 완봉승 경기는 전반기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우승할수있었다는 경기로 유명합니다.

--- 해태 에이스 #이상윤 부활 1982년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이상윤은 부상을 털고 복귀한 83년 46경기 / 229.1이닝/ 2.67 평균자책/ 20승 /7패/ 178 탈삼진/ 을 기록하며 타이거즈의 원조 에이스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때 유명했던 장명구(삼미 슈퍼스타즈)박철순(OB베어스) 와 함께 원년 프로야구 3대 투수로 불리게 된 해이기도합니다.

-- 1983년 한국시리즈는
후반기 1위로 마친 MBC청룡의 우세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타이거즈는 에이스 이상윤의 호투와 짜임새있는 공격력으로 MBC청룡의 투수들을 거세게 밀어부치며 김종모의 선제 타점으로 시작한 타이거즈는 적시에 타점을 뽑아내며 손쉽게 7:4 첫 포스트시즌을 치른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시리즈 1차전을 가져오게됩니다. 당시 무등경기장의 적은 관중석때문에 1차전만 광주에서 열리고 이후 2차전부터는 잠실구장으로 옮겨 치르게 됩니다. 1차전에서 무서운 타격감을 뿜어대던 타이거즈는 2차전에도 이어지며 8:4로 2차전마저 가져오게됩니다. 시리즈전적 2승0패로 우위를점한 타이거즈는
2차전 선발투수로 나와 승패를 기록하지못한 재일교포 주동식 투수를 하루를 쉰뒤 3차전에도 선발투수로 등판 5회까지 역투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첫 언더핸더 승리투수가 됩니다. 주동식의 다음으로 오른 이상윤은 9회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타격에서는 콧수염을 기르고나온 김봉연의 3점홈런 포함 혼자서 팀의 5타점을 뽑아내며 3차전도 5:3 승리 시리즈 전적 3승으로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1승만을 남겨둔체 4차전을 맞이하게됩니다.
1~3차전에 많은 안타를 때린탓인지 4차전 타이거즈의 타자들은 15회 연장까지 단 1점만을 뽑아내며 1:1 무승부를 거둬 우승의 축배는 5차전으로 미루게됩니다.
이미 2번의 선발투수로 나온 주동식은 5차전에도 등판 또다시 역투하며 한국시리즈 2승째를 거두게되고 뒤이어 오른 이상윤이 9회까지 마무리 8:1 승리를 거두며 시리즈전적 4승1무 압도적인 시리즈로 해태타이거즈는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의 첫 금자탑을 쌓는 동시에 타이거즈 왕조의 서막을 올리게 됩니다!


!- 1983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한후 기념 촬영하는 해태타이거즈 선수들 (사진 출처: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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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식어버린 타이거즈 타선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디펜딩 챔피언으로 시작한 1984년은 투-타의 부조화로 ,4위에 머물게됩니다.
-1984년 통합 순위표 팀당 100경기
순위 팀 승 패 승률
1위 OB 58 41 1 0.586
2위 삼성 55 45 0 0.550
3위 MBC 51 48 1 0.515
4위 롯데 50 48 2 0.510
5위 해태 43 54 3 0.443
6위 삼미 38 59 3 0.392


1984년에도 에이스는 이상윤 투수였습니다.40경기 211.2이닝/ 10승 13패/ 2.85평균자책/ 128탈삼진/(, 하지만 팀의 1선발투수가 211.2 이닝동안 평균자책점이 2점대인데 10승 13패를 하고 1번타자였던 김일곤은 시즌 출루율이 3할을 겨우 넘겼다는걸보니 얼마나 타선이 빈약했는지 짐작이 됩니다. 팀타율은 0248 *(5위) 유일하게 김종모 선수가 규정타석 3할을 넘기며 골든글러브 수상을 받아 타이거즈 팬들의 위안이 되었을거라 생각드네요.
타격에서는 부진했지만 84년은 깜짝 스타가 등장한 해이기도 하는데요. 바로 #방수원 선수의 등장입니다. 1984년 5월 5일 어린이날 삼미 슈퍼스타즈를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투수가 0개의 피안타 완투승) 대기록을 기록하며 당시에 무명선수의 대기록은 먼나라 일본 미국에서도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입니다. 방수원선수는 9이닝동안 30명의 타자를 무안타, 볼넷3개,탈삼진6개,플라이7개, 땅볼 14개로 대기록을 세웠는데요 그해 1승 8패로 유일한 승리로 남아 더욱더 기록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이후 방수원 선수는 이후에도 총8시즌을 뛰며 18승을 거두게 됩니다.

한국프로야구와 타이거즈 역사에 대기록을 남긴 방수원 선수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원래 그의 본명은 방승환이고 방수원이란 이름은 2살 아래 동생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릴적 동생이 미아가되면서 이후 동생 사망신고를 하는데 실수로 방승환을 사망신고하면서 이후 동생의 이름인 방수원으로 살아가게 됬다고합니다. 야구선수로 활동하던 1983년 잠실구장에서 어릴적 잃어버린 동생과 극적으로 만나게되었고 이후 동생은 방득원이란 이름을 쓰게 됬다는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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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해태타이거즈-1편을 마칩니다. 다음편은 통합우승 4연패의 시발점이된 1986년~ 주요 선수들 이야기 등 포스팅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