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패션계의 조용한 혁명가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브랜드 스토리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있는'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디자인은 착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단순함과 우아함 그리고 완벽한 재단으로 유명하다. 현대적이고 화려하지만 절제되고 차분한 스타일로 기술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 남성복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끼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세기 후반의 남성복과 여성복에 조용한 혁명을 가져온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피아첸차 출생인 아르마니는 처음에는 가족들의 바람대로 의사가 되기 위해서 밀라노대학 의과대학에 진학하였으나, 의학에 뜻을 품지 못하여 그는 2년 후 학업을 포기했다.
1954년 우연한 기회로 리나생티 백화점의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는 일을 하게 된 아르마니는 이후 백화점 광고 판촉부의 보조, 사진사를 거쳐 남성복 바이어로 백화점에서 근무했다. 패션계에서 일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패션 분야의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패션계로 나가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고객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안목을 갖추게 되었다.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요소를 습득했고, 단순함과 실용성에 근간을 둔 그의 패션 철학을 세우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한국배우 최초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쇼 초대에 참석한 배우 이병헌과 조르지오 아르마니
백화점에서 근무하던 아르마니는 남성복과 여성복을 만들던 사업가 니노 세루티의 눈에 띄어 패션 바이어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변신하게 되었다. 1961년 당시 새로운 라인의 남성복브랜드 '히트맨'을 준비하던 니노 세루티는 '히트맨'을 위해 일할 보조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사람이 아르마니다. 아르마니는 정식으로 패션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창조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본 니노 세루티는 그를 한 달동안 공장에서 트레이닝을 시킨 후 곧바로 디자인을 맡겼다.
'히트맨'은 일반 남성복에 쓰이던 것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와, 차가운 컬러를 사용했다. 또한 전통적인 슈트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구조들을 생략하고, 어깨의 패드를 줄였다. 단추와 포켓의 위치를 옮겨달아 기존의 남성 슈트를 딱딱한 느낌을 여유 있고, 편안하며 젊어 보이는 스타일로 변화시켰다. 1970년 니노 세루티에게서 독립한 아르마니는 '힐튼', '로에베', '웅가로', 에르메네질도 제냐'등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1974년 남성복 컬렉션, 1975년 여성복 컬렉션을 발표하며 친구이자 동료인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함께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설립했다.
1975년 부유층 고객들을 겨냥한 아리마니는 첫 컬렉션에서 남성복처럼 재단한 블레이져 슈트 여성복과 기존의 남성복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진 남성 슈트를 동시에 발표하여 화제를 모았다. 당시의 여성복은 눈에 띄게 화려하거나 우아한 색상, 주름장식과 다양한 액세서리들로 사회활동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여성복으로 블레이져 슈트를 디자인하여 여성들에게 활동성과 권위를 부여하였고, 남성복에 있어서는 딱딱한 어깨패드와 불필요한 다트를 제거하고 심지와 안감을 최소화하여 여유 있고, 편안한 느낌을 줬다. 그가 발표한 실용적인 디자인의 재킷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아르마니는 남성과 여성의 '파워드레싱'룩을 주도 하며, 패션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파워슈트or 파워드레싱의 이미지
이후 이탈리아 최대 의류 생산업체 GFT 그룹과 계약을 맺으며 성장발판을 마련하였고, 1976년 뉴욕 바니스 백화점을 통해 해외진출 성공 가능성을 봤다. 197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지눌을 시작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더욱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아메리칸 지골로'의 주인공 리처드 기어가 슈트를 입으면서 다시 한 번 흥행을 하게 되었다.
이후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젊은 층을 겨냥한 '엠포리오 아르마니'와 스포츠웨어'마니', '아르마니 진', '아르마니 주니어'등을 런칭했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나는 아틀리에가 아닌 백화점에서 출발하였고, 고객과 직접 부딪치면서 옷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찾을 수 있었으며, 그것이 나의 인생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라고 하였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접근한 방식과 다랐던 그는 '모델을 위한 옷이 아닌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든다.'라는 그의 패션철학과 함께 그는 완벽한 핏을 만들어 냈다.
1985년 세르지오 갈레오티가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위기가 왔다. 매출이 급감하고, 직원들이 떠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일을 도맡아 활약한 아르마니가 있었기에 아르마니를 지켜낼 수 있었다. 최근에는 다양한 사업을 확장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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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 일을 시작으로 니노 세루티의 도움으로 디자이너까지 된 아르마니의 이야기.
우리에게는 누구도 지니고 있지 않는 '재능'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분명히 재능을 뽐낼 수 있는기회가 올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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