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갈등 중 절반은 장난감때문이다.
장난감 사 달라고 땡깡피우고, 장난감 정리 안해서 혼나고, 장난감 양보 안 하겠다고 친구랑 싸워서 또 혼난다.
그럴 때마다 장난감들을 전부 처분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내가 어렸을 땐 언니, 오빠, 동생들이랑 같이 밖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대부분이고 집에 있는 장난감은(내 기억으로는) 바비인형 한 두개, 종이인형들이 다 였던 것 같다.
물론 요즘은 혼자인 아이들이 많고 장난감, 교구 시장도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서 비교는 안되지만 이정도로 과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릴 적 좋았던 추억을 남겨주는 것이나 선물 받은 내 아이가 기뻐하는 표정을 보면 분명 장난감이 주는 이익도 있다. 선물 받은 것도 있지만 내가 욕심나서 산 장난감도 있고 아이에게 댓가성으로 장난감을 사준 적도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은 반성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의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장난감, 퀄리티에 비해 말도 안되는 고가의 장난감들, 정체불명의 조악한 싸구려 뽑기 장난감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유럽 어느 나라의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물려준 장난감이 최고 가치있는 장난감이라고 하는데, 너무 쉽게 원하고 너무 쉽게 얻고 너무 쉽게 버리는 환경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아이에게 장난감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친구들 집에 가보니 많은 게 아니었다. 정리가 필요했다. 어느 순간 싫증난 장난감은 공동육아를 함께 하는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낡은 장난감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밖에 나가서 놀 땐 장난감 생각을 잘 안하는 것 같다. 외출할 때 굳이 챙겨간 장난감도 잊고 정신 없이 노는 모습을 보면 장난감보다는 경험이 훨씬 아이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난감은 가지고 노는 방법과 용도가 정해져 있어서 한계가 있다. 숲에 가면 자연 장난감이 널려있다. 가지고 노는 방법은 무한대이다.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줄 땐 솔직히 엄마인 나는 별로 재미가 없다. 정확히 말해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엄마가 놀아주는' 느낌이고, 숲에서 놀면 '엄마가 같이 노는' 느낌이다.
숲에서 놀 때 훨씬 더 흥미롭고 기억에 남는다. 내 몸이 느끼고 움직여서 경험한 것이라 그런걸까. 숲에 가면 피부로 공기도 느껴지고 계절이 가진 고유의 향기, 풀소리, 벌레소리도 귀로 느껴진다. 숲은 어른에게도 즐거운 놀이터이자 장난감 천국이다. 이 사실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아이를 통해 알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숲에 나갈 수 있는 날이 많이 줄었다. 아이의 당연한 즐거움이 빼앗기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미안하다.
경험은 아이를 자라게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고 한다.
어떤 장난감일까 고민하는 것 보다 어떤 경험일까를 생각하는 엄마가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