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 안해원
하얀 바둑알이 박힌 발바닥으로 어미의 젖꼭지를 바투며 꼬물대던 녀석이, 노란 들판에 설 녹은 눈을 솜사탕처럼 보듬어 안은 듯한 털을 가진 녀석이, 까만 콧등에 별빛 모양의 샛노란 점을 가지고 있어 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 아침이면 영글지도 않은 발톱으로 현관문을 긁어대며 밥 달라고 바둥대던 녀석이, 문을 열고 나가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며 쓰다듬어 달라고 꼬리 치던 녀석이, 오늘 아침엔 네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조용히 누워있다 어렸을 적 새로운 길이라며 신나게 내달았던 신작로에서 신발도 없이 밤새 뜀박질하며 봄꽃을 먹었는지 빠알간 꽃물을 그득히 머금고 지치게 누워있다 아침 햇살이 몸에 덮인 새벽안개를 걷어내고 콧등의 별을 보여준다 시한부 2개월인 줄 알았다면 제 마음에 준비라도 했을 것을, 참척의 슬픔을 아는지 별이의 입에서 시들어가는 꽃잎을 어미가 삼키며 가슴에 담는다 이럴 거면 제 목을 옭아매었던 줄을 끊어내기 위해 왜 밤새 몸부림을 쳤을까? 별이라고 불러 밤하늘 별인 줄 알았나 보다 추운 겨울에 태어나 온 들판의 봄꽃인 줄 알았나 보다 마당 한 켠, 가을이면 가지마다 부러질 듯 별씨가 달리는 보리수 곁에 뿌리가 닿도록 묻었다 빠알간 보리수 열매가 문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별이는 마당에 내려와 마른 풀잎을 온몸에 붙인 채 뒹굴고 있겠지 "나 여기 있어요" 곰살맞게 옷깃을 흔들어 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