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화
형석은 꽃집 아주머니 집의 대문을 정신없이 두들겼다.
“쾅! 쾅! 쾅!”
"아줌마! 아줌마!"
한참을 두드렸음에도 대문과 안댁이 먼 꽃집 아주머니 집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꽃집 아주머니는 어머니보다 세 살이 많았지만 같은 친목계를 하는 계원이었고 특히,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시는 분이셨다.
꽃집 아주머니의 집은 정원이 넓고 그 안에 빼곡히 꽃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꽃집아줌마네'로 불리고 있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두드리다 보니 바로 대문 옆에 초인종이 있는 것을 알았다.
형석인 초인종을 있는 힘껏 눌렀다.
"딩동, 딩동딩동."
"누구세요?"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다소 신경질적인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희 엄마가 죽어가요!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초인종 스피커에서 꽃집 아주머니의 딸인 듯싶은 여자가 꽃집 아주머니에게 무어라 하며 수화기를 바꾸어 주는 것 같았다.
"누구냐?"
"예, 저 J대학 사택에 사는 형석이에요! 엄마가…, 엄마가…"
"뭐? 알았다. 잠깐 기다려라!"
잠시 후 대문이 열리며 꽃집아줌마가 뛰어나왔다.
"어디야, 어디? 집에 있냐?"
"예."
꽃집 아줌마는 상황이 긴박함을 알고 얼마나 급하게 뛰어나오셨는지 웃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달려가며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그날따라 담장을 넘어 채 3백 미터도 되지 않은 거리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형석인 담을 넘어 먼저 어머니가 계시던 큰 방으로 들어갔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밥상은 찌그러진 채 어머니 옆에 엎어져 있었고 어머니는 반찬을 잔뜩 뒤집어쓰고 머리에서는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엄마! 엄마!"
형석인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며 어머니를 불러 보았다.
그러나 흔들어도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방안엔 이미 흥건하게 피가 고여 있었고 점액질처럼 가장자리는 검은 기름처럼 변해 있었다.
신발을 벗지도 않고 들어온 형석이의 신발에 피가 묻어 여기저기 발자국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
형석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죽으면 안 돼! 안 돼…, 흐흑."
얼마 후 담장을 겨우 넘어온 꽃집 아줌마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오메, 이게 뭔 일이여!"
처참한 광경을 지켜본 꽃집 아줌마는 그만 방바닥에 피가 묻어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털썩 주저 않아 버렸다.
"시상에, 어떻게 사람을 패도 이 지경이 되도록 팬 단가!"
꽃집 아주머니는 형석에게 담 너머 연립주택에 사시는 통장 아저씨를 모셔 오라고 했다.
형석은 재빨리 움직였다. 만약 통장 아저씨가 집에 없다면 큰 낭패였기 때문에 형석은 지체하지 않고 담을 넘어 통장 아저씨의 집으로 갔다.
"아야, 형석이 에미야? 정신 차려라!"
꽃집 아주머니가 형석이 어머니의 얼굴에 찬물을 적신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며 흔들고 있었다.
"끄-응."
움직였다.
아직 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꽃집 아주머니는 우선 낡은 장롱 속에 있는 면내의 바지를 찢어 형석 어머니의 머리를 감싸주었다.
"뭔 일이요?"
형석인 얼마 후 통장아저씨와 함께 들어왔다.
통장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뭐 하요? 사람이 죽게 생겼구만, 빨리 업으시오!"
꽃집 아주머니가 소리치자 통장은 멈칫거리더니 이내 쓰러진 어머니의 팔을 잡아끌어 들어 올리며 등을 가져다가 댔다.
꽃집 아주머니가 어머니의 엉덩이 쪽을 받쳐 들고 형석이도 어머니가 업히는 것을 도와주었다.
업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담을 넘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담을 넘으면 바로 옆에 신작로가 있지만 담을 넘지 않고 학교 안쪽으로 가면 언제 차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담을 넘어가 봅시다!"
통장은 어머니를 업고 힘들게 담 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형석은 재빨리 담 밑으로 가서 통장아저씨가 담을 쉽게 넘을 수 있도록 큰 깡통을 뒤집어 놓았다.
겨우겨우 꽃집 아주머니가 뒤에서 받치고 통장아저씨가 있는 힘을 다하여 담을 넘었다.
이미 통장아저씨의 어깨에는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고 점점 무거워지는 무게 때문에 벌써 이마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통장아저씨의 등에 업힌 어머니의 피가 뚝뚝 떨어져 하얀 눈밭에 꽃잎처럼 물들어 갔다.
"어이, 용제! 용제!"
마침 담을 넘자마자 이 지역에 용달차를 끌고 다니며 버린 음식물을 수거하여 돼지를 먹이는 용제 아저씨가 있었다.
"빨리 태워줘! 아주머니가 죽게 생겼어!"
"뭔 일이다요?"
"그건 나중에 묻고 빨리 뒤에 실은 구정물 통이나 내려봐!"
용제 아저씨는 재빨리 뒤에 실어 놓은 구정물 통을 내려놓고는 화물칸 바닥에 눈이 묻은 가마니를 털어서 다시 깔았다.
통장 아저씨가 어머니를 그 위에 눕히고 꽃집 아주머니가 그 위에 올라타 어머니를 붙잡고 있었다.
"여기 있어라!"
꽃집 아주머니는 형석일 따라오지 못하게 하였다.
혹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를 대비해 어린 형석이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덜덜거리며 시동이 걸리고 용달차가 출발을 했다.
형석은 멍하니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화물차 짐칸에 아무렇게나 실린 돼지처럼 어머니는 피가 묻은 채로 그렇게 실려 가고 있었다.
형석은 다시 담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우선 큰 방에 들어가 걸레로 방을 닦기 시작했다.
'어-엉 엉.'
형석은 통곡했다.
어머니의 피가 흥건하게 고여 말라가고 있는 광경도 너무 처참했지만 설마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비닐장판에 달라붙은 피는 잘 닦이지 않았다.
형석은 피가 무서웠다. 어머니의 머리에서 나오던 빨간 피는 검게 변해 있었고 방바닥을 닦아내던 걸레와 형석의 손에도 어느새 비릿한 냄새의 붉은 피가 물들어 있었다.
형석은 방바닥을 닦다 말고 갑자기 외양간 쪽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매일 닦고 만지고 고이 한쪽에 세워 두었던 작두를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작두를 펼쳐내었다.
형석은 욕이 나왔다. 평소에 욕이라고는 해보지 않았던 형석이었지만 작두를 보니 저절로 욕이 나왔던 것이다.
"이 염병할 놈의 작두!"
형석은 외양간 한쪽 벽에 훈장처럼 걸려 있는 쇠스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작두날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어린 나이였지만 쇠스랑쯤은 늘 어머니의 밭일을 도와주며 썼던 물건이었다.
"탕."
불꽃이 튀었다.
쇠스랑이 작두날에 부딪치자 순간 불꽃이 튀고 예리하게 날이 서있던 부분이 형석이 쇠스랑을 내려칠 때마다 움푹움푹 들어가 버렸다.
"아아아 악."
형석인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아버지가 미웠다. 죽이고 싶었다.
아버지의 작두가 미웠고 아버지의 소가 미웠다.
정신없이 쇠스랑을 작두날에 내리치고 나자 나무받침 부분은 패여 있었고 작두날은 마치 톱날처럼 변해 있었다.
형석의 눈동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람은 많은 피를 보고 나면 제정신을 잃는다고 한다.
전쟁터에서도 처음엔 모두가 무서워서 앞도 보지 않고 총만 내밀고 쏘지만 옆에 있는 전우가 피를 흘리며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 제정신을 잃고 적진으로 뛰어든다고 한다.
형석인 쇠스랑을 들고 외양간으로 갔다.
형석이의 손에 묻었던 피가 쇠스랑의 손잡이에 묻어 미끈거렸다.
외양간 문을 쇠스랑으로 내리쳤다.
“퍽!”
나무로 만든 외양간 문은 한쪽이 쉽게 쪼개져 버렸다.
문틈 사이로 아버지의 소가 멍청한 눈만 껌벅거리며 되새김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는 소리에 놀라는 것 같았다.
형석은 외양간 문을 발로 걷어차고 쇠스랑으로 몇 번을 더 찍어 내리고는 외양간 문을 아예 뜯어내어 버렸다.
그리고 소에게 다가갔다.
형석은 마치 소가 아버지인 양 노려보았다.
"그래, 이 새끼! 니 머리에서도 피를 한 번 흘려봐!"
형석의 눈동자는 이미 흰자위로 덮여 있었고 쇠스랑을 잡은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순간, 형석인 있는 힘을 다하여 쇠스랑을 들어올렸다.
"에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