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
"아버지, 왜 그러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흐흑."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형석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간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열한 살 형석의 힘으로는 억센 아버지의 한 팔도 당해낼 수 없었다. 아버지는 눈도 끔뻑이지 않고 발버둥치는 형석의 머리를 잡아끌어 집 앞 텃밭 한쪽에 볏짚을 쌓아 놓은 곳으로 끌고 간다. 아버지의 입술은 굳게 다물어 있었고 아무런 표정이 없다. 다만, 오랜 노동으로 단련된 검은 피부에서 나오는 듯한 거친 호흡이 형석의 얼굴에 소름끼치듯 차갑게 닿을 뿐이다.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살려주세요."
살려달라는 형석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묵묵부답으로 형석을 끌어 볏단 위로 내팽개친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형석의 머리채를 잡은 채 왼 손을 뻗어 쇠죽을 쓰기 위해 볏짚을 자르던 작두를 끌어당긴다. 한 손으로 끌기에는 무거운 작두가 아버지 얼굴처럼 아무 표정도 없이 손쉽게 끌려온다.
"아악!"
"엄마!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형석의 얼굴에는 눈물과 흙 묻은 볏짚조각이 뒤범벅이 되어 있다.
‘스윽.’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팔이 작두의 손잡이를 들어올리자 시퍼런 칼날이 보인다. 1미터가 넘는 작두날이 마치 차가운 웃음을 짓듯 따가운 태양빛에 반짝이고 이내 아버지는 형석의 머리채를 작두 날 아래로 잡아끌어 무릎으로 형석의 몸을 짓누르고 오른손으로 형석의 머리를 옆으로 돌려 눌렀다. 형석은 머리가 아파 왔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내려와 목을 잘라버릴 것 같은 작두날을 곁눈으로 보며 이미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는 허리와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팔에 눌린 머리의 통증은 의식하지 못했다.
"흐흑, 아…버…지."
"살려 주세요."
여전히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무섭게 형석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다. 작두 손잡이를 들어올린 아버지의 겨드랑이에서 역한 냄새가 흙냄새와 섞여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작두날에 움푹 패인 나무로 된 작두 대에 어느새 형석의 눈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붉게 충혈된 아버지의 눈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더욱 머리를 짓눌러 댔다.
"아버지, 아버지!"
형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는 아버지라는 말만 되풀이해서 나올 뿐이다. 다리와 팔이 마치 머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허둥대며 아버지의 등을 쥐어뜯고 있으나 그것은 이미 무의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스윽.’
"헉."
"……"
밤하늘 별똥별의 꼬리처럼 붉은 피가 사방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유리파편처럼 곳곳에 박힌다. 잘린 목덜미를 비집고 나온 힘줄이 피가 흥건히 묻은 채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떨구고 있는 작두 날 아래서 아직도 두려운 듯 부들부들 떨고 있다. 목이 잘린 채 사지를 떨고 있는 몸뚱이의 가슴이 뛸 때마다 잘린 목은 울컥울컥 핏물을 토해낸다. 표정없이 쳐다보던 아버지는 피묻은 얼굴을 옷소매로 닦으며 뒤돌아서고 있다. 형석의 눈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향해 부릅뜬 채 멈추어 있다.
"이놈의 자식, 빨리 안 일어나?"
"지금 한가하게 낮잠이나 잘 때냐?"
작대기로 허벅지를 찌르며 아버지가 형석을 깨운다. 눈을 비비며 얼어나는 형석의 등짝을 작대기로 후려갈기고는 노려보는 아버지의 눈엔 꿈에서 보았던 것처럼 핏기가 서려있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 잠깐 쪽마루에 누워 있으리라던 생각이 가물 해지며 잠들었던 모양이다. 형석은 매질을 당한 등이 후끈거렸지만 순간적으로 아버지가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반가움이라기보다는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인지도 모른다.
"버러지 같은 놈!"
"밥을 처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할 것 아냐?"
아무 말 없이 일어서서 걸어가는 형석의 뒷모습을 향해 아버지의 눈빛이 꽂히듯 박힌다. 오금이 저려 온다. 토요일이라 아버지가 일찍 집에 오시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 실수였다.
형석의 아버지는 평소에 말이 없다. 1미터 60도 안 되는 작은 키에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이 검은 피부 속에서 꿈틀거리면 이내 힘줄이 튀어나올 것 같은 몸과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손톱이 달려있는 것조차 신기할 정도로 갈라진 채 주먹을 쥐기도 힘들 것 같은 뭉뚝한 손,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어린 형석의 눈엔 늘 무섭게만 보였다. 단 한 번도 따듯하게 불러주거나 손을 잡고 다닌 적이 없는 아버지가 형석은 늘 미웠고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가 있는 공과대학 뒤편까지는 걸어서 40분 이상을 가야한다. 공과대학 뒤에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어 소를 먹이기에는 아주 좋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소를 끌고 가 공과대학 뒤편에 고삐를 박아 놓고 오신다. 형석은 벌써 배가 고팠다. 어머니가 밭을 매러 가시기 전 고구마를 삶아 상보로 덮어놓았지만 점심때마다 먹는 고구마가 냄새도 맡기 싫어서 한 개만 겨우 꾸역꾸역 먹고는 샘에서 펌프질을 해 물을 몇 모금 마셨을 뿐이다. 길가에 찔레꽃 어린줄기를 손을 잡아끊고는 가시가 달린 껍질을 죽죽 벗겨 나갔다.
‘눈물을 흘리는 걸까?’
찔레꽃 줄기에 가시가 붙어 있던 자리에는 유난히 물기가 가득 배어 나왔다. 형석은 벗겨진 찔레꽃 줄기를 질근질근 씹었다. 떫은 듯하면서도 씹을수록 단물이 입안에 가득 고여 들었다.
형석이네가 광주에 있는 J대학 사택으로 이사 온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형석이 6살 때, 전남 화순에서 형제 넷을 두고 살던 형석의 부모는 도회지로 나가면 그나마 먹고살기가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형석의 어머니가 절대 도회지로 가지 않으시겠다고 완강히 거부하시던 아버지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광주로 이사 온 후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말이 대학교 사택이지 그것은 블록을 쌓아 올려 대충 빗물이 스며들지 않을 정도의 미장을 하고 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방 두 칸에 외양간이 딸린 집이었다. 이곳에서 형석의 아버지는 농과대학교에서 심어 놓은 나무들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사택을 얻어 살 수 있었고 또한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학교 부속 농장에서 잡일을 하며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플라타너스가 양쪽으로 즐비하게 들어선 길, 형석은 찔레꽃 줄기를 오물거리며 황톳길에 가끔 솟아오른 돌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폴짝 폴짝 뛰어간다. 무성히 자란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그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간간이 비춘다. 형석은 이 길을 지날 때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500미터 정도 되는 플라타너스 길은 한 여름철에는 징그럽게 벌레가 뚝뚝 떨어지기도 하지만 봄에는 산들바람과 함께 연녹색 잎들이 하늘거리는 모습이 좋아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지 않는 이 길 한쪽에 누워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구름의 모양을 바라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하기도 한다. 특히 가을이면 커다란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지난가을에는 J대학교 후문 앞에 사는 영재와 이곳에서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누가 더 많이 잡는지 시합도 하고 떨어진 이파리를 한꺼번에 모아 서로 낙엽으로 묻어주는 무덤놀이도 했었다.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 위에 하얗게 피어난 눈꽃들이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곳이다.
멀리 공과대학이 보인다. 그 뒤로 접어들면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시는 소가 풀을 뜯고 있을 것이다. 형석은 갑자기 심술이 났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가족들과 동물원에 구경도 가고 삼삼오오 동네에 모여 구슬치기며 딱지치기를 하기도 하는데 형석은 늘 토요일 오후면 소를 매어 놓은 공과대학 뒤편에서 해가 기울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평일이면 중학교에 다니는 형원이 형과 함께 소를 데리러 오기 때문에 덜 심심하지만 토요일은 항상 혼자 와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소가 보인다. 형석은 항상 그 소가 '우리 소'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아버지의 소였다. 그랬다. 늘 형석의 아버지는 아들들보다도 소를 더 생각하고 날마다 외양간에 마른 볏짚을 깔아주고 철사가 빼곡히 달린 빗으로 온몸을 빗어 주었다. 부엌엔 형석의 몸이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커다랗고 시꺼먼 가마솥이 큰 방 아궁이에 항상 걸려 있는데 그것은 쇠죽을 쓰기 위한 가마솥이었다. 형석은 아직까지 그 가마솥에 어머니가 밥을 짓거나 다른 음식을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간혹, 저녁에 쇠죽을 쓰면서 쇠죽이 끓기를 기다렸다가 가마솥 뚜껑을 열고 그 위에 고구마를 몇 개 집어넣곤 하시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소가 먹을 주식에 우리가 먹을 간식을 곁들인 그런 꼴이기 때문이다.
형석은 아버지가 막내인 형석이마저도 홀대 하시면서도 소를 금쪽처럼 아끼시는 것이 늘 못마땅했다. 형석은 가지치기를 하고 난 후 치우지 않은 통통한 플라타너스 가지를 주워들었다. 아직 응달진 곳에 있었던 탓일까? 나뭇가지는 마르지 않아 생생한 풀 냄새가 났다. 형석은 길가에 자신의 키만큼 자란 개망초를 힘껏 내리쳤다. 여지없이 개망초는 풀썩 땅에 주저앉은 것처럼 고꾸라져 버렸다. 형석은 허공을 향해 휘두르며 소를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의 소는 무성히 자란 풀들을 양껏 뜯어먹고는 잠이 오는 듯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영감처럼 앉아 머리를 쳐들고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이 녀석!"
"제 까짓게 뭐라고 맨날 먹고 자고 빈둥거리기는…"
형석은 있는 힘껏 소의 엉덩이를 후려갈겼다. 갑작스러운 매질에 놀란 소가 깜짝 놀라며 거대한 몸집을 일으킨다. 얼마나 풀을 뜯어 먹었는지 배가 뱅뱅 하였다. 형석은 소가 일어서자 혹시 뒷발질 당할까 두려워 몇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어 소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음-매."
"치, 아픈 것은 아는가 보지? 네 녀석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라는 걸 몰라서 그래? 뒈져라."
형석은 더 큰 돌멩이를 주워들어 소에게 던졌다. 소의 목덜미에 정통으로 맞았다. 소는 무척 아팠는지 형석의 반대편으로 도망을 치지만 이내 고삐와 연결된 끈에 코뚜레가 당겨지자 멈추어 선다. 형석은 또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소의 머리를 겨냥했다. 마치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것처럼 소의 머리를 노려보며 온몸을 실어 소에게 던졌다. 벌름거리던 콧구멍 위에 정통으로 맞았다.
"음-매."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소가 날뛰기 시작했다. 앞발과 뒷발을 번갈아 몇 번 들더니 꼬리를 하늘로 일직선이 되게 힘껏 쳐들고는 형석을 노려보았다. 형석인 갑자기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고삐와 연결된 줄이 팽팽해지는가 싶더니 뾰족한 철근으로 된 고삐가 땅에서 쑥 빠져나왔다. 소가 형석을 노려보며 오른쪽 앞발로 땅을 파듯이 몇 번 구르더니 형석일 향해 달려왔다.
"으악!"
형석은 소리를 지르며 있는 힘껏 도망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소가 코를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형석은 근처 나무가 많은 곳으로 달렸다. 그곳은 조그마한 동산으로 제법 소나무가 많이 들어서 있는 곳이었다. 형석의 머리가 쭈뼛쭈뼛 일어서는 것 같았고 등에는 서늘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머리를 휘두르며 달려오는 소의 뿔에 받히게 되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돌아볼 겨를도 없이 있는 힘껏 숲 속을 향해 달렸다.
도망치는 형석이의 등 뒤를 여전히 소가 바짝 쫓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필사의 탈출과도 같았다. 한참을 정신없이 도망치던 형석이의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진 기분이 들었다. 형석은 그제야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형석을 쫓아오던 소의 고삐가 소나무 뿌리에 걸려있었고 바보 같은 소는 고삐에서 벗어나려고 소나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나 소가 돌면 돌수록 줄이 소나무에 감겨 갔고 이내 소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소나무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소나무가 흔들거렸다. 소는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뿔을 소나무에 갖다 대고는 긁어대기 시작했다. 호미로 무를 찍는 것처럼 소나무 껍질이 벗겨지더니 허옇게 속살이 드러나 보였다. 형석은 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까 형석이 던진 돌멩이에 정통으로 맞았던 콧등이 패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프냐?"
"……"
소는 핏기가 서린 커다란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형석인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는 상처가 난 소의 콧등에 오줌을 쌌다. 소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긴 혀를 내밀어 상처 난 코 위로 흘러내리는 오줌을 닦아 먹었다. 2년 전 봄, 이곳에서 아버지가 소의 코를 뚫었던 것을 기억한다. 소가 몸집이 커지면 사람의 힘으로 이기지 못한다고 아버지가 탱자나무를 잘라 낫으로 깨끗이 다듬고 몇 달간 말리더니 코 뚫기 며칠 전 말린 나무를 숯불에 이리저리 돌려가며 굽더니 둥그렇게 만드셨다. 그리고는 소의 코를 뚫는 날, 소를 이곳에 데려와 움직이지 못하도록 나무에 줄로 꽁꽁 동여 매 놓고는 검지와 엄지를 각각 소의 콧구멍에 집어넣어 무언가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미리 준비해 놓은 뾰족한 나무를 소의 한쪽 콧구멍에서 다른 쪽 콧구멍을 향해 밀어 넣으셨다. 금세 피가 번졌다. 뾰족한 나무가 콧구멍과 콧구멍 사이를 통과하자 아버지는 둥근 콧뚜레를 소의 코에 걸고 노끈으로 힘껏 묶었다. 어린 형석은 무섭기도 했지만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기에 무척 진지한 모습으로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소의 코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고 소는 아프다는 듯 연방 소리를 질려댔다. 아버지가 형석에게 소의 코에다 오줌을 싸라고 했다. 그러면 코를 뚫었던 곳이 덧나지 않고 깨끗이 아물도록 소독이 된다고 했다. 그날도 소는 긴 혀를 내밀어 형석의 오줌을 받아먹었었다.
소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늘은 벌써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왜 이제 오는 거냐?"
"아니?"
"소 콧등이 왜 이렇게 됐냐?"
아버지는 이미 어두워진 시간임에도 어린 형석이 어떻게 소를 끌고 왔는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소의 콧등에 난 상처부터 살펴보셨다.
"어떻게 된 거여?"
"저기…"
"소를 끌고 오는데 뭘 보고 놀랐는지 갑자기 날뛰더니 그때 다쳤나 봐요."
"그러길래 그렇게 소를 잘 돌보라고 이야기 허니까는…"
소를 외양간 바로 옆 마당에 매어 놓고는 형석은 부엌 옆에 있는 샘에서 손을 씻었다. 물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작년까지만 해도 샘이 집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서 저녁마다 어머니를 도와 물을 긷는 것도 형석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나마 이른 봄 이곳에 샘을 판 후로는 조금 편해졌다.
"아야, 이리와 봐!"
손을 씻고 있는 형석을 아버지가 득달같이 불렀다. 아버지는 벌써 작두 근처에서 쇠죽 쓸 채비를 하고 있는지 볏짚과 마른풀들을 섞어 가지런히 나누어 놓고 있었다.
"왜요?"
형석의 대답은 못마땅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쌀을 씻다 말고 돌아보며 아버지에게 얼른 가보라고 눈짓을 했다.
"오늘은 네가 좀 작두를 눌러라."
"썩을 놈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안 기어들어 오는 거여?"
"형들이 아직 안 들어오니 쇠죽 쓸 시간은 됐고 너라도 도와줘야 제 시간에 소를 먹일 것 아니냐!"
"내가 풀을 먹이고 신호를 하면 작두 손잡이를 힘껏 눌러라."
"예."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알았지?"
아버지는 쪼그려 앉아 형석일 올려 보았다. 아버지가 마른풀을 작두에 조금 밀어 넣자 형석이는 있는 힘껏 작두 손잡이를 눌렀다. 그러나 아버지의 양손으로 양껏 쥔 마른풀이 썩 뚝 잘라지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풀이 절반도 잘라지지 않았다.
"썩을 놈!"
"그렇게 약해 빠져 가지고 어디다 써먹겠냐?"
아버지는 썰어지다 만 나머지 풀을 밀어 넣으며 빨리 누르라고 채근했다. 형석은 이번에는 발을 구르며 온몸으로 매달리듯 작두 손잡이를 눌렀다.
"부-욱."
둔탁하지만 기분 좋은 소리로 조각난 볏짚과 풀들이 작두 반대편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
형석은 신이 났다. 아버지가 그렇게 경쾌하게 대꾸를 해주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마치 형석에게는 자신에 대한 칭찬처럼 들렸다. 이번엔 발을 힘껏 굴려 공중으로 뛰어올라 있는 대로 힘을 주어 단번에 여물을 썰어 내리라 다짐을 했다.
아버지는 또 볏짚을 밀어 넣고는 형석을 쳐다본다. 형석은 마음먹은 대로 힘껏 매달리며 작두 손잡이에 올라탔다.
"아악!"
갑자기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선혈이 한 움큼의 마른풀에 불붙듯 벌겋게 물들어 갔다. 형석이 순간적으로 들어올린 시퍼런 작두날은 망나니의 칼날처럼 섬뜩한 피가 묻어 있고 아버지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움켜잡고 풀 조각이 여기저기 널린 땅 위로 주저앉아 있었다. 떨어져 나간 엄지손가락이 잘린 볏짚 사이에서 몸서리를 치며 떨고 있었다.
"빨리, 빨리."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빨리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신음처럼 내뱉는다. 형석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지금의 상황을 어찌해야 좋을지 생각할 틈도 없이 무섭기만 했다. 오늘 잠깐 낮잠을 자면서 꾸었던 꿈이 순간적으로 형석의 머리를 스쳐간다. 아버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하얀 러닝셔츠를 찢어 엄지손가락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내 손가락 주위로 뭉쳐진 흰색 러닝셔츠에 붉은 피가 흥건해지며 모기를 쫓기 위해 불을 피우던 시커먼 땅 위로 뚝뚝 떨어진다. 어찌된 일인지 핏방울은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마치 기름처럼 엉겨 붙어 땅 위를 겉돌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형석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엄지손가락을 움켜쥐고 형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핏방울이 떨어질 것처럼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퍼런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아버지 손가락이…, 아버지 손가락이 잘라졌어요!"
어린 형석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쌀을 씻던 어머니는 황급히 부엌에서 달려 나오더니 손가락을 움켜잡고 엎드려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사색이 되었다.
"오메, 이 일을 어째?"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아버지의 손가락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형석은 사람의 손가락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나올 줄 몰랐다. 어머니는 주변의 쑥을 뜯어 입으로 몇 번 씹더니 다시 뱉어내어 싸매어진 러닝셔츠를 풀어내고 아버지의 손가락에 붙이기를 반복하더니 다시 자신의 옷을 찢어 꽁꽁 묶었다.
"형석아 빨리 담 넘어가서 택시 잡아라."
형석의 집은 J대학교 경계에 있었던 터라 외부로 나가려면 담을 넘어야 했다. 처음엔 빨간 벽돌담에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 그곳에 발을 넣고 넘어 다녔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사다리를 걸쳐놓고 넘나들었다. 물론 어린 형석과 형들이 학교 다니거나 어머니가 외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날은 캄캄해져 있었다. 형석은 재빨리 담을 넘어 신작로 가에 서서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자 초록색 포니 택시가 멈추어 섰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손가락이 잘렸어요!"
형석은 울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상황이 급박한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는 운전석에서 내려 형석이 달려가는 쪽으로 함께 달렸다. 벌써 아버지는 손가락을 움켜잡고 사다리를 넘어오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아버지를 부축해 어머니와 함께 태우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형석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택시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 어두운 집에 형석은 혼자였다. 큰형은 집을 나가 소식이 없는 꽤 오래되었고 둘째형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닌다. 그리고 셋째형인 형원이 형은 학교가 끝났을 것임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4월의 밤하늘엔 별이 유난히 반짝이며 마당 위로 모여 있었다. 집 앞 텃밭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목련 나무는 벌써 하얗게 꽃을 피웠다. 아버지는 집에 오시면 습관처럼 마른풀과 생풀을 모아 마당에 불을 피우신다. 그것은 꼭 모기를 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소를 위해서였다. 일찍 외양간에 넣으면 답답해한다고 소를 마당 한쪽에 매어 놓는데 소등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등에 같은 것들을 쫓아주는 연기를 내기 위함이었다. 형석은 걱정이 되면서도 무서웠다. 잘려나간 아버지의 엄지손가락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아무도 없는 집, 형석의 집은 아직 전기를 끌어오지 못해 호롱불을 쓰고 있었다. 형석은 안방에 있던 호롱불을 쪽마루에 가져와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딸랑 딸랑."
소가 텃밭 한쪽에 자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형석은 마른 볏짚을 한 아름 안아서 소 앞에 가져다주었다. 형석은 어쩌면 캄캄한 집에 소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이 아팠어? 미안해."
"딸랑 딸랑."
소는 긴 혀를 내밀어 형석의 손을 핥아주었다. 형석은 소의 콧등을 만져주었다. 아버지의 소, 형석은 처음으로 소가 함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소의 눈은 축축히 젖어 있었다.
“스르렁”
분명 가마솥을 여는 소리였다. 뿌연 연기가 벌써 방안에 가득 들어와 있고 부엌에서는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는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 쇠죽을 쓰는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어머니는 쇠죽을 쓰실 때 쇠죽이 끓기 시작하면 가마솥 뚜껑을 열어 긴 막대기로 한 번 뒤집고 다시 닫으셨다.
"오메 시상에,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왜 이런 일이 생긴다냐."
형석은 가만히 누워 부엌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형석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안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는 것이 왠지 죄스러워 툇마루에 잠든 형석을 누군가 안방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벌써 일을 나가시고 없었다. 한 편으로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맞을 매라면 빨리 맞은 것도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점심때가 다가올 것이고 점심때가 되면 아버지가 점심을 드시러 오실 거라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쳐간다. 괜스레 하얀 붕대를 싸매고 있는 아버지의 엄지손가락이 생각나면서 마치 형석의 손가락이 아픈 것처럼 눈살이 찌푸려진다. 여느 때 같았으면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형석은 도무지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야, 일어나!"
엎드려 있는 형석의 옆구리를 가볍게 차는 사람은 형원이 형이었다.
"어쩌다 그랬냐?"
"머저리 같은 놈! 넌 이제 죽었다."
슬며시 머리를 들어 바라본 그의 얼굴에 비굴한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너 때문에 우리만 고달프게 됐어 인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나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의 상처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이었다. 닥쳐올 일에 대한 공포감이었다.
"그만둬! 그렇지 않아도 놀란 얘를…"
"빨리 밥이나 처먹고 소 끌고나가!"
방문을 열어젖히며 어머니가 소리쳤다. 어머니는 항상 형석이 편이었다. 그것은 형석이가 막내이기도 한 까닭도 있었으나 언제나 어머니의 말에 대해서는 대꾸하지 않고 순순히 따르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은 유난히 포근한 햇살이 눈부시게 좋은 날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외양간에서 내어놓은 소가 마당 한쪽에 고삐가 묶인 채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등에가 가득히 소에게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었고 가끔 긴 꼬리로 툭툭 쳐가며 등에를 쫓고 있었다.
"가자!"
형원이 형이 소의 고삐를 잡고 당기자 소는 어슬렁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석은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형원이 형과 함께 들로 나가는 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 무렵이 되자 형석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아버지가 점심을 드시러 오실 것이기 때문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형석의 집 마당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탱자나무가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었고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으로 대학교에서 시시때때로 조경을 위해 옮겨다 심을 나무들이 종류별로 자리를 잡고 숲을 이루고 있었다. 형석은 툇마루에 앉아 멀리 탱자나무 울타리만 쳐다보며 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이기만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컹! 컹!"
툇마루 밑에 졸고 있던 메리가 인기척을 느낀 듯 재빨리 일어나 동구 밖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고 있었다. 틀림없이 아버지가 오시고 계셨던 것이다. 형석의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메리는 항상 가장 먼저 동구 밖까지 달려가 집으로 오시는 아버지를 맞이하곤 했다.
형석은 더욱 엄습해오는 불안감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든 하고 있어야 했다.
재빨리 외양간 옆에 세워진 쇠스랑을 들고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소가 오줌 싸고 똥을 싸서 눅눅해진 볏짚들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가끔 점심을 드시고는 외양간 바닥에 깔아 놓은 볏짚들을 갈아주곤 하셨기 때문에 형석은 그렇게라도 하고 있어야 아버지에게 잘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뭐하냐?"
등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외양간의 깔 짚이 더러워져서 갈아 주려구요."
형석은 아버지를 돌아보며 인사 대신 변명이라도 하듯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놔둬!"
아버지의 대답은 짧고 차가웠다. 아버지는 늘 소에 관한 일은 가능하면 직접 하시고는 하셨다. 그것은 아버지의 소에 대한 애정이기도 했지만 늘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야만 마음에 들어 하셨기 때문이었다.
형석은 말없이 쇠스랑을 옆에 세웠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옆을 지나 우물 쪽으로 가 손을 씻었다. 아버지의 옆을 지날 때 역한 땀 냄새가 형석의 코를 찔렀다. 손을 씻으며 형석은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어쩌면 어제의 일이 조용히 넘어가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아버지가 우물로 오셨다. 그리고는 윗도리를 벗었다.
"저리 가!"
아버지는 항상 그랬다. 말씀을 길게 하신 적이 없었고 말투 또한 매우 거칠었다.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윗도리를 벗는 것을 보시고는 득달같이 달려 나오시더니 엎드린 아버지의 등에 바가지로 찬물을 부어 주셨다.
엄지손가락이 잘린 손을 위로 올린 채 한 손으로 엎드린 아버지의 등에 연방 찬물을 부을 때마다 형석의 가슴에도 서늘함이 밀려왔다. 형석은 몇 걸음 뒤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월임에도 유난히 햇볕이 따갑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