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석인 더 이상 밥을 먹지 못하고 김칫국물이 묻은 밥을 개미집 근처에 버렸다.
밥을 버린다는 죄스러운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개미들이 먹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펴주고는 도시락을 다시 가방 속에 넣었다.
평소 산에서 놀다가 내려갈 때는 갈대도 꺾고 잠자리도 잡으며 내려갔으나 오늘 어머니에게 죄를 지은 형석은 무척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제 오냐?"
"……"
"왜, 산에서 노는 게 재미없었나 보지? 이제 학교에도 안 가고 잘하는 짓이다!"
"……"
"엄마가 모를 줄 알았지?"
형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더욱이 쏘아보는 어머니의 눈초리를 보아 어머니가 이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 싹수가 노란 놈! 당장 회초리 만들어와!"
"잘못했어요, 엄마! 육성회비 때문에 그랬어요. 육성회비 안내면 선생님께 맞을 것 같아 무서워서 학교에 못 갔어요!"
"……"
어머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래! 그래도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선생님에게 맞은 것보다 엄마에게 맞은 것이 더 아플 거라는 건 생각 안 해봤냐! 가서 니가 맞을 만한 회초리로 만들어와!"
형석인 울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꿈쩍 않고 있었다.
"당장 회초리 만들어 오지 못해!"
형석인 뒤 안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소에 아버지가 산에서 땔감을 해 오셔서 쌓아두는 곳이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보통 장작을 쌓아 두지만 가을철까지는 산에서 죽은 나무나 잔가지를 지게에 지고 와 쌓아놓는 곳이다.
형석인 맞을만한 회초리를 찾기 시작했다.
양심상 너무 약한 것이나 반쯤 썩은 나무를 들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형석인 맞아도 많이 아프지 않으면서 쉽게 부러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는 잔가지가 부러져 있는 뾰족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밀어 부러뜨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형석아!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나쁜 짓이다. 분명 너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예."
"빨리 저기로 올라서!" 어머니는 부뚜막 위를 가리켰다.
형석은 큰 가마솥이 있는 옆쪽으로 올라서서 바지를 올리고 종아리를 내밀었다.
'철썩! 철썩!'
회초리가 종아리를 내려칠 때마다 형석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문질러 댔다. 바싹 마른 플라타너스 나뭇가지가 살갗에 부딪힐 때마다 형석은 뼛속까지 아파 오는 통증을 느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리고 일정한 속도로 회초리를 내려쳤다. 손으로 문지르다 손등이 맞기도 하고 손톱이 맞아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정신없이 아파 왔다.
어머니의 회초리는 멈출 줄을 몰랐고 형석인 울기 시작했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선홍빛 얼굴이 된 어머니는 상한 속이 쉽게 풀리지 않으셨던지 회초리를 모질게도 내리치시다가 형석이가 몸부림을 치자 형석이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형석은 어머니가 자신이 미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무섭게 매질을 하면서도 형석이의 눈을 외면한 채 때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악!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는 비로소 회초리를 부엌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사실, 맞으면서 형석인 어머니께 따지고 싶었다. 육성회비를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말이다.
그러나 형석은 맞으면서도 그 말만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놈아! 엄마가 육성회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것냐? 그래! 엄마가 어떻게 하든 내일모레까지는 육성회비를 만들어주마!"
"미친놈! 그렇다고 학교를 다 안가?"
형석은 울컥거리며 가슴 밖으로 밀쳐오는 숨을 참으며 부뚜막에 내려앉았다.
형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도 한동안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휴."
어머니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부엌 바로 앞에 샘으로 가서 손을 씻더니 양동이에 물을 퍼 담았다.
아마 쇠죽을 끓일 시간이 된 것 같았다.
형석은 그러는 동안에도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형석이의 바로 옆에 빨간 고무장갑이 있었다. 형석은 무심히 그 고무장갑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고무장갑 오른쪽 엄지 부분이 찢겨 있었다. 그러나 형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고무장갑이 찢어졌다고 말해주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작두에서 썰어 놓은 풀과 볏짚을 섞어 가마솥에 물을 붓고 어머니는 팔각 성냥 통에서 성냥 한 개비를 꺼내어 긋고 있었다.
아궁이에 넣어진 마른풀에 불이 붙은 성냥을 갖다 대자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작은 나뭇가지를 올려 입으로 불어가며 나무에 불을 붙이고는 한껏 나무를 아궁이에 밀어 놓고서 우두커니 앉아 불이 타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멀리서 메리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아버지가 오시는 모양이었다.
메리가 짖는 소리가 멈추자 자전거 바치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그리고는 이내 아버지가 부엌으로 들어오셨다.
"쇠죽 쓴가?"
"보면 모르요."
평소 말을 잘 안 하시는 아버지였지만 어제 일로 어머니께 미안했던지 말을 먼저 건넸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리 가! 왜 매운 곳에 앉아서 청승을 떨고 있냐?"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어머니의 퉁명스러움에 머쓱했던지 형석일 밀어붙였다.
형석은 고무장갑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부엌 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당신만 아무 일 안내면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것소?"
어머니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가마솥 곁에 있는 고무장갑이 열기 때문에 눌어붙을까봐 고무장갑을 치우려고 일어섰다.
"오메, 고무장갑이 왜 찢어졌다냐?"
"뭐? 왜 고무장갑이 왜 찢어져?"
아버지가 놀란 듯 쳐다보았다.
평생 동안 손으로만 빨래나 설거지를 해오시던 어머니는 며칠 전 작은아버지가 오셔서 사주고 간 빨간 고무장갑을 애지중지하시며 사용조차 안 하시고 계셨다.
"아침까지도 괜찮았는디, 왜 이렇게 됐을까?"
어머니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시더니 이내 형석일 쏘아 보았다.
"너 아까 여기 앉아서 고무장갑 만지더니 네가 그랬냐?"
형석은 깜짝 놀랐다.
"아뇨! 내가 안 그랬는데요?"
"너밖에 고무장갑을 만진 사람이 없는데 네가 안 그러면 누가 그래, 이 녀석이 거짓말하고 있네?"
"아뇨, 난 고무장갑 찢지 않았어요! 원래부터 찢어져 있었어요!"
"뭐, 원래부터 찢어져 있었다고? 그러면 분명히 엄마가 아침에 봤을 때는 멀쩡했는데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냐?"
어머니는 벌컥 화를 내셨다. 형석인 너무나 억울했다. 아까 맞은 곳이 아직도 얼얼한데 억울하게 누명까지 쓰게 생겼기 때문이다.
"아니라니까요, 전 안 그랬어요!"
형석은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버지가 소리치셨다.
"똑바로 말 안 해! 네가 그랬지?"
형석은 정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고무장갑을 만졌던 터라 고무장갑을 찢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제가 안 그랬어요! 믿어주세요, 정말 안 그랬어요!"
"이 녀석이 그래도 거짓말을 하네! 이 자식 안 되겠어…"
아버지는 부엌문 밖 오른쪽 담벼락 밑에 오줌통과 나란히 있는 지게를 바치고 있던 작대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바른 대로 말 안 해!"
"정말이에요, 전 안 그랬어요!"
'퍼억.'
순간 작대기가 형석의 어깨를 내려쳤다. 형석은 아찔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나무로, 그것도 아버지에게 맞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평소 무뚝뚝하고 등이 오싹할 정도로 차갑게 대하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매를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늘 두려워하던 아버지에게 커다란 나무막대기로 맞는 순간 형석은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아-악."
"아버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이 자식이 이제야 바른말을 하는군."
아버지는 작대기로 인정사정없이 아무 곳이나 내려치기 시작했다. 아픈 것도 몰랐다. 형석은 단지 이 상황이 너무나 무서웠다. 어쩌면 이렇게 맞다가는 죽을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석은 아버지 쪽으로 기어가 아버지의 바지를 붙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형석을 발로 걷어차고는 또 작대기를 내려쳤다.
"오메, 애 죽이것소!"
부엌에서 한동안 바라보던 어머니가 달려와 아버지의 팔을 붙들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형석은 그저 땅에 널브러진 채 엎드려 있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그래! 때릴 테면 때려 보라지…'
형석인 일부러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꾹꾹 참고 있었다.
"일어나! 잘못했다고 빌어!"
어머니의 목소리에 형석인 일어나 어머니와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미웠다. 무자비하게 작대기로 때린 아버지도 미웠지만 누명을 씌운 어머니가 더 미웠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샘에 가서 씻어!"
어머니는 말을 내뱉듯 하시고는 부엌으로 들어가셨고 아버지도 뒤를 따라가시더니 큰 가마솥 뚜껑을 열고 끓고 있던 쇠죽을 막대기로 뒤집고 있었다.
형석은 아무 말 없이 샘으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그러나 형석인 참고 연방 찬물을 얼굴에 부었다.
메리가 다가와 마치 측은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형석이가 수건으로 대충 닦고 마당 앞으로 나가 평상에 걸터앉자 메리가 쫓아와 빠끔히 얼굴을 들고는 표정없이 바라보았다.
자신만은 형석이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위로하듯 형석이의 무릎에 놓인 손을 혀로 핥아냈다.
형석은 커다란 메리의 목을 소리 없이 껴안았다.
"메리야…"
그제야 메리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댔다.
형석은 조용히 울고 있고, 가을 하늘은 오늘따라 유난히 붉게 형석이가 머무르며 집 쪽을 훔쳐보았던 동산 위에서 노을지고 있었다.
마치 충혈된 형석이의 빨간 눈동자처럼 둥근 해를 품고서…